사랑하는 아내 세라(레이첼 브로스나한)가 런던 출장 중 테러 공격으로 사망에 이르자 남편 찰리(라미 말렉)는 깊은 실의에 빠진다. 찰리는 CIA에서 일하지만 타인을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일 수 있는 킬러가 아니었다. 현장에서 정보를 기밀하게 빼내는 스파이는 더더욱 아니었다. IQ 170의 탁월한 두뇌를 가졌으나 왜소한 체격과 총 한 발 쏘지 못하는 겁쟁이였다. 그저 빛도 들지 않는 컴컴한 지하 5층에서 컴퓨터와 씨름하며 정보를 찾아내는 암호 해독가였다.
손 놓고 있을 수 없던 그는 억울한 아내의 죽음을 파헤치기 위해 두뇌를 풀 충전해 범인을 찾아낸다. 그러나 정보를 듣고도 상관은 진상 조사를 거부하며 침묵한다. 이에 분개한 찰리는 조용한 복수를 실행에 옮긴다. 범인을 찾았지만 직접 응징할 방법이 없어 발만 동동 구르던 때, 재능을 발휘해 어두운 과거를 캐낸다. 이를 볼모로 자신에게 특수훈련을 시켜 달라고 요구하고 교육관 헨더슨(로렌스 피시번)과 만나 특별 교육을 받게 된다.
하지만 현장 경험이 전혀 없는 사무직은 방아쇠조차 제대로 당기지 못했다. 핸더슨은 직접 복수를 포기하라며 진심 어린 조언을 건네지만 포기를 모르던 찰리는 행동을 이어간다. 아마추어라도 자신만의 방식으로 테러 집단을 응징할 수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결국 특수훈련 중 자신이 사제폭탄 제조에 특출난 재능이 있음을 알아채고 아내의 복수를 위해 홀로 먼 길을 떠난다.
범생이, 언더독, 초짜, 사무직의 반란
영화 <아마추어>는 기자 출신의 스파이 추리 소설가 로버트 리텔의 소설 《아마추어》(1981)를 리메이크한 두 번째 작품이다. 같은 해인 44년 전 찰스 재롯 감독의 <격정의 프라하>로 한차례 영화화되었다. 냉전 시대 제작된 탓에 테러 집단은 다분히 이념과 정치적인 이유로 아내를 납치하고 살해했지만, 2025년 버전에서 좀 더 복잡한 이유가 얽히며 각색되었다.
현대 문물을 적극적으로 이용한다. 스마트폰으로 할 수 있는 건 뭐든 하는 건 당연지사. 유튜브를 통해 문 여는 법을 따라 해 아파트 잠입에 성공하거나, 범인을 추적하는 단서로 SNS 게시물을 분석해 위치와 성향을 알아낸다. 드론이나 딥페이크로 조작하는 건 식은 죽 먹기다. 해킹으로 정보를 얻어내는 모습은 익숙하면서도 흥미롭게 진행된다.
전반적으로 빠른 템포로 속도감을 높여 화려한 맨몸 액션이나 총격 액션 등을 자제했다. 범인과 육탄전을 벌인다거나 총을 쏠 수 없는 성격 탓에 치밀한 두뇌 싸움이 거듭된다. 파워 J 성향의 찰리는 모든 것에 계획을 세우고 틀어졌을 경우를 대비해 플랜 B까지 준비하며 착실하게 실행에 옮긴다.
완벽한 설계란 무엇인가를 몸소 보여준다. ‘제이슨 본’이나 ‘제임스 본드’의 DNA를 이어받지 않는 지능형 캐릭터가 2025년 <아마추어>의 주요 뼈대이자 차별점이다. 제임스 하위스 감독은 CIA로부터 기술 자문까지 받아 가며 이미 가능한 기술임을 확인받았다고 전해진다.
라미 말렉의 섬세한 연기 중심
영웅이 아닌 평범한 사람, 언더독의 반란이 조직에 어떤 반향을 줄 수 있는지 영화적 허용과 재미로 러닝타임을 채우는 지적 영화다. 가진 건 하나 없이 세상에 던져졌지만 지능, 우연, 조력자라는 삼박자가 들어맞아 최종 목표까지 도달한다. 마치 게임의 퀘스트를 깨듯 더 세고 무서운 존재를 향해 거침없이 진격한다. 거기에 런던, 파리, 마르세유, 마드리드, 이스탄불 등 세계 여러 도시를 누비며 추적하는 과정을 담아 로케이션의 풍부한 눈요기까지 만끽하기 충분하다.
아내 사랑이 남달랐던 남편은 자책하데도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매번 같이 출장 가자던 제안을 한 번도 들어준 적 없고, 도착했다는 아내 전화를 일 때문에 금방 끊어 버리고, 죽음의 순간에도 같이하지 못했다는 미안함과 상실감이 큰 편이다. 아내의 환영은 도시를 옮겨 갈 때마다 느닷없이 찾아와 때때로 남편을 괴롭힌다.
이 모든 심리적 고민과 아픔을 절제된 감정으로 표현한 ‘라미 말렉’은 <보헤미안 랩소디>의 프레디 머큐리를 말끔히 지워내는 데 어느 정도 성공했다. 눅눅하고 쿰쿰한 사무실에 틀어박혀 목 끝까지 답답하게 채운 와이셔츠와 넥타이를 매고 일에 열중하는 모범생, 소심남, 사랑꾼 그 자체로 변신했기 때문이다. 아내가 선물하려던 퍼즐처럼 복잡하고 섬세한 인물을 복합적인 얼굴로 그려냈다.
<빠삐용>, <보헤미안 랩소디>, <007 노 타임 투 다이>, <오펜하이머>에 출연해 확고한 이미지를 쌓았다. <아마추어>에서는 제작자로 변신해 캐릭터 빌드업부터 전반적인 부분에 관여해 연기 외의 자질까지 더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