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혜령 Mar 17. 2019

<이민자> 아메리칸 드림의 헛된 희망과 애환

© 이민자, Lowlife, The Immigrant, 2013, 제임스 그레이



영화 <이민자>는 1920년대를 배경으로 자유과 기회의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던 세 사람의 엇갈린 운명을 다루고 있습니다. 제66회 칸 영화제 공식 경쟁작으로  고전적인 아름다움이 흘러넘치는 '마리옹 꼬띠아르'와 메소드 연기의 교본 '호아킨 피닉스', 상업영화의 독립영화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제레미 레너'까지 매력 넘치는 세 배우의 조합이 인상적인 영화입니다.


엘리스 섬에서 바라본 자유의 여신상



이 모든 관계는 폴란드에서 뉴욕 앨리스 섬에 당도한 '에바(마리옹 꼬띠아르)'를 통해 시작됩니다.  여동생과 드디어 미국에 건너왔고 입국 절차만 받으면 이모가 사는 집으로 갈 수 있는 기회가 코앞인 상황 불안과 행복이 동시에 찾아옵니다.



실제 엘리스(Ellis) 섬은 뉴욕항이며 미국의 입국관리에 관한 시설들과 이민국의 각종 설비가 있습니다. 각종 질병이 있는 자들을 구금되어 입국 불허가 판정을 받았죠. 자유의 여신상이 있는 리버티 섬까지는 0.5km로 에바가 그토록 가고 싶어 하던 곳이것만 가지 못하는 곳. 미국의 겉과 속이 다른 이면을 상징하는 장치로 쓰였습니다. 이는 에바가 자유의 여신상을 맡게된 클럽의 상황과도 다르지 않다고 할 수 있죠.


이민자가 이민자를 약탈하는 부조리


결국 동생은 폐질환이 의심된다며 입국이 거절되고, 에바 마져도 위기에 처합니다. 누구나 이런 상황이면 이성을 찾을 수 없을 겁니다. 그때 해결사처럼 나타는 '브루노(호아킨 피닉스)'는 기다렸다는 듯이 에바를 낚아채 거처와 일자리를 마련해 줍니다.


한 번만 보면 반하지 않을 수 없는 수려한 외모덕에 기구한 운명을 살 수밖에 없는 여인. 그 외모가 오히려 독이 됩니다. 누구나 성공할 수 있고 행복을 누릴 수 있다는 아메리칸 드림은 순수했던 에바가 점차 피폐해지면서 실체를 드러나죠.



언제나 호아킨은 옳다! 반면 제레미 레너는.. 아닌..



그곳에는 젠틀한 미소 뒤에 숨은 교묘한 호스트 브루노(호아킨 피닉스)가 있었습니다. 그는 클럽에서 여성들을 거느리며 쇼를 보여주고 있는데 경쟁상대가 많는 사람입니다. 1920년대는 영화의 부흥 시기입니다.  영화에 밀리지 않기 위해 새로운 얼굴과 강력한 프로그램이 필요했죠.



또한 자신의 사촌인 '올란도(제레미 레너)'의 마술공연까지 경계해야 했습니다. 성공한 보이나  늘 불안한 그도 사실 이민자 출신입니다. 클럽 여성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지만 정작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혐오의 대상이 되는 아이러니를 호아킨 피닉스의 쓸쓸한 뒷모습에 담아 내고 있습니다.



마이롱 꼬띠아르는 흑백 고전 영화에서 튀어 나온 듯 고혹적이다



영화 <이민자>는 모두가 꿈꾸는 행복과 자유가 어쩌면 허상임을 우아하게 보여주는 고전영화 같습니다.  무성영화에서 튀어나온 듯한 에바의 표정연기는 적은 대사량에도 불구하고 설득력 있습니다. 동생을 위해 삶을 포기한 언니의 처연함이 그대로 노출됩니다. 이때문에  절박함을 이용해 사리사욕을 채우고자 한 브루노는 에바에게 필수불가결 고리죠. 살기 위해 자기보다 약한자를 등 처먹는 일을 서슴지 않는 인간, 수많은 악행을 저지르고도 살기 바란다면 그것이야말로 악행일까요?


감독 '제임스 그레이'는 영화에 개인적인 경험을 투영했습니다. 자신의 증조부가 미국에 이민와 겪을 일을 참고했다고 합니다.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는 사람들의 고군분투라는 평이한 줄거리가 진중한 감정에 울림을 주는 이유입니다.


기구한 인생을 산 에바.. 동생과 행복했을까?



인간은 누구나 삶의 의지를 갖습니다. 살기 위해 발버둥 치고, 살기 위해 어떤 희생도 불사한다. 에바는 삶을 위해 미국에 왔지만 죽음에 가까워집니다. 바라던 목표를 이루는 데는 실패했을지언정 새롭게 생긴 목표를 달성한데 만족해야 했습니다. 에바는 과연  행복하게 살았을까요?


이민자란 단어는 '우리'라는 틈에 끼지 못하는 소수자 모두를 지칭합니다. 우리는 언제나  소수자이며 이민자죠. 차별을 아니하고 차이를 인정하는  자세, 지배자가 피지배자를 착취하지 않고 연대하는 힘. 마지막 장면에서 모든 것을 눈물로 용서한 에바의 모습으로 대변됩니다.





평점: ★★★

한 줄 평: 아직도 끝나지 않은 아메리칸드림..




매거진의 이전글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 남자 위에 있는 여자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