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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혜령 Mar 25. 2019

<우상> 당신의 우상은 무엇인가? (개인적 해석 포함)

© 우상, 偶像, Idol, 2018, 이수진



<한공주> 이후 5년 만인 이수진 감독 신작 <우상>은 한석규, 설경구, 천우희라는 이름만으로도 압도되는 영화입니다. 영화를 보고 나면  단순한 줄거리를 극도로 꼬아버린 느낌이 들 겁니다. 각자의 목표를 위해 치닫는 상황은 거미줄처럼 얽혀있고, 거미줄이 설령 끊어졌다고 해도 기워 붙여 시작되는 치킨게임인 셈입니다.


세 인물은 한 영화에서 섞이면 안 되며, 섞일 수 없는 인물들입니다. 영화가 끝나도 좀처럼 관객은 의문을 멈출 수가 없으며 영화는  은유와 상징을 통해 질문을 던집니다. 당신의 우상은 무엇이냐고 말이지요.



영화 <우상>


유력 도지사 후보, 털어서 먼지 하나 나오지 않는 구명회(한석규)에게 최대 위기가 찾아옵니다. 아들의 뺑소니로 나락으로 떨어질지도 모를 상황,  아들의 인생보다 정치인생이 중요했던 구명회는 아들을 자수시킵니다. 여기에 또 한 명의 아버지가 등장합니다.  피해자 부모  유중식(설경구)은 신혼여행 중이었던 아들이 싸늘한 시체로 돌아오자 오열하고 말죠.


그런데 유중식은 같이 있던 여자를 못 봤냐고 묻습니다. 분명 구명회는 아들에게서 목격자가 없다고 들었는데 어떻게 된 일일까요? 사라진 며느리 최련화(천우희)는 어디에 있는 걸까요? 지금부터 구명회와 유중식은 최련화를 찾아야만 합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매력적인 인물은 구명회였다



영화는 세 인물이  믿는 '우상'을 좇아갑니다. 구명회의 우상은  권력과 명예입니다.

 친절한 미소 뒤에 숨겨진 욕망의 칼끝이 서늘한 드라마가 있는 인물입니다. 깜빡이를 오른쪽으로 켜고 왼쪽으로 돌아가는 전략적인 사람이죠.  어느 것 하나 부족함 없는 그에게 치명적인 약점은 아들의 사고입니다. 일은 점점 커지게 되고 해서는 안 될 일까지 직접 처리하고 맙니다. 구명회의 대사처럼 믿을 사람이 없거나 사람을 못 믿거나 한 상황, 지금 대한민국의 상황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소시민이자  현실적인 인물이다


우중식의 우상은  가족이란 허상입니다.

지적장애를 가진 아들의 성욕구를 해결해주는 아버지이자 아들과 함께 평범한 가족을 꾸리고 싶은 사람입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인물의 목을 따라는 사주가 나왔다며 힘도 돈도 없지만 행동으로 보여주는 진정성을 가진 인물입니다. 유일하게 구명회와 최련화를 이어주지만 자신이 그토록 바라던 우상의 실체를 알고 무너지는 인물이죠. 가장 안타깝고 현실적입니다.



천우희 배우가 나오면 영화의 성격이 바뀌는 것 같다


최련화의 우상은 대한민국 국적 취득입니다.

 영화는 스릴러라는 장르에 맞게 긴장과 궁금함을 더합니다. 극의 서스펜스를 불어넣는 인물은 최련화입니다. 영화의 중후반부에 등장해 두 인물과 밀리지 않는 아우라를 과시합니다. 하얼빈에서 언니와 필사의 탈출 과정에서 사람을 죽였고 이는 련화를 궁지로 몰아넣기도 합니다.


련화는 태어날 때부터 축복받지 못한 순탄치 않은 삶을 살았습니다. 그래서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괴물이 되었습니다. 걸리적거리면 뭐가 되었든 제거하는 단호함을 가졌죠. 항상 자신의 존재를 스스로 증명해야 하는 가련한 인물이지만 가장 폭발적이고 저돌적입니다. 무엇보다 영화의 혼란을 가중하는 맥거핀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당신의 우상은 무엇인가?



영화 <우상>은 한 마디로 규정할 수없이 복잡합니다. 치밀하고 촘촘한 서사는 인물들의 말로만 전해질뿐 뚜렷한 이미지로 형상화되지 않습니다. 레퍼런스를 벗어난 하얼빈 사투리는 자막이 필요할 정도로  해석 불가능한 상태였는데요.  때문에 더욱 정황만 가득한 상황이 불친절합니다. 관객은 관람 내내 관계나 상황을 짐작하고, 유추하고, 추리해야 할 겁니다.


최근 본 한국 영화 중에서 가장 많은 서사를 가지고도  복잡한 미로 속에 들어와 있는 듯 어리둥절했던 영화입니다. 일단 듣기 평가가 잘 안됩니다. 배우들의 대사 전달력이 많이 떨어집니다. 이는 의도한 것인지 녹음의 문제인지,  사투리 때문인지 모르겠습니다.


도무지 세 인물이 어떤 일을 벌일지 예측하기 힘들었지만, 144분이랑 긴 러닝타임 동안 럭비공 같았던 세 인물이 하나로 모일 때 나타나는 전율은 상당합니다. 대한민국 국민들의 우상이라 여기는 동상의 머리가 날아갈 때 느끼는 충격과 잔인성이 15세 관람가가 맞나 싶었던 영화입니다.




※여기서부터는 스포일러부터 개인적인 해석을 더했습니다※




영화 <우상>


덧, 영화는 여전히 의문투성이입니다.  풀리지 않는 질문은 또 다른 시나리오를 준비해도 좋을 떡밥입니다. 캐릭터별 과거 이야기나 앞으로의 삶도 충분히 시퀄, 프리퀄로 만들어도 좋겠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우중식의 아들 부남이는 누가 죽였을까요?


확실한 신분이 필요했던 련화와 성적 욕구를 풀 대상이 필요했던 부남은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신혼여행을 왔고 아빠와 떨어져 온 여행이 낯설었겠죠. 좋아하는 낙엽을 하나씩 놓으며 마음을 진정시켰을 겁니다. 이내 잠이 들었고 복잡한 마음의 련화는 잠깐 산책을 나갔을 겁니다.


그때 련화를 사기로 고소한 절름발이 남자와 마주칩니다. 그는 련화를 찾아 백방으로 다녔는데 수소문 끝에 이 호텔도 찾아냈습니다. 련화는 실랑이 끝에 그 남자를 절벽에서 밀었을 겁니다. 마치 자살한 것 처럼 위장한 살인으로 말입니다.


우식이 부남을 확인하러 왔을 때 먼저 본 물에 빠진 시체, 즉 절름발이 남자는 련화가 죽였을 겁니다. 태연하게 호텔로 돌아왔지만 부남은 사라진 뒤였고, 부남은 숲을 헤매다 구요한의 차에 치이게 됩니다. 구요한은 아직 살아 있는 부남을 태워 집으로 데려왔던 거죠. 결과적으로 부남은 구명회의 아들 구요한이 죽인 겁니다


영화 <우상>은 많은 상징이 들어있다


구요한은 영화 속에서 두 번 웃는데, 한 번은 아버지 구명회에게 "아빠 차잖아, 아빠가 들어가"라고 말합니다. 구요한은 이미 아버지의 본성을 알고 있었을 겁니다. 가족은 구명회의 욕망을 이룰 부수적인 존재이기도 한데, 몇 년간 찾아오지도 않다가 급할 때 어머니에게 일처리를 맡기는 모습으로 알 수 있습니다. 어머니는 "안 보면 남이더라. 피 섞였다고 다 가족 아니야"라고 뼈 있는 말을 하합니다.


련화는 언니와 국경을 넘을 때 사람을 죽였습니다. 죽임을 당한 사람은 복수를 위해 킬러를 고용했고,  태백 양계장 근처에서 봤던 남자가 바로 이후 련화의 마사지 업소를 찾는 사람입니다. 두 개의 상자를 가지고 다니는 것은 하나는 련화 하나는 언니 수련의 것인 거죠.


영화를 통해 연변과 하얼빈 사투리가 다름을 확실히(?)


구명회는 정치인이 되기 전 중국에서 사업을 하던 아버지를 따라 중국에서 한의사 학위를 취득합니다. 그래서 중국어를 할 수 있었고 련화를 납치해 대화도 할 수 있었죠. 왜 하필 련화의 발가락에 주사를 놓았음에 대한 해석은 죽이려는 의도는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한의학을 공부했기 때문에 약물을 구할 수 있었을 테고, 혹시라도 발견될 시 흔적을 최소화하기 위한 장치가 아닐까 싶습니다. 약물은 사건의 전말을 알 수 있는 진술 유도제라 생각합니다.


구명회는 화상을 입었지만 희망을 주제로 연설합니다. 그때  구강구조가 무너져 내려 외국어처럼 들렸던 언어는  한국어가 아닐까 싶습니다. 프롬프터에 비친 언어는 한국어였으니까요. 한 인터뷰에서 한석규는 이수진 감독이 개 짖는 소리를 내달라는 주문을 했으나 히틀러의 연설을 참조한 애드리브라고 합니다.  결론적으로 각자의 우상을 쫓았지만 목표를 이룬 사람은 구명회 뿐인 겁니다.



세 인물은 각자의 우상을 향해 달려간다


마지막으로 광화문에는 세종대왕과 이순신 장군의 동상이 있습니다. 대한민국 국민에게 상징적인 존재, 즉 두 우상 중에 왜 이순신 장군 동상의 머리일까요? 이수진 감독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순신 장군 동상 크기가 더 큽니다"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평점: ★★★★

한 줄 평: 우상을 좇아가는 치킨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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