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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혜령 May 21. 2019

<돈키호테를 죽인 사나이> '테리 길리엄'이 돌아왔다!

17세기 사는 돈키호테와 21세기 사는 산초의 기묘한 여정

돈키호테를 죽인 사나이,El hombre que mato a Don Quijote, 2019 , 테리 길리엄



정신 줄 살짝 놓고 봐야 보이는 영화가 있습니다. 기괴하고 기묘하기로 유명한 '테리 길리엄' 감독이 돌아왔으니까요. 이 영화를 완성하기 위해  (1989년) 30여 년이 걸렸고,  제71회 칸영화제 폐막작으로 선정되었습니다. 믿고 보는  '아담 드라이버' 연기는 물올랐고, '조나단 프라이스'는 돈키호테 그 자체였습니다. 두 사람의 연기 배틀이 참 재미진 영화이고, 매너리즘에 빠진 토비는 곧 '테리 길리엄' 자체라고 봐도 무방하죠.




30년 동안 돈키호테 역에 '장 로슈포르'와 '존 허트'가 작고했고, 토비 역에 '조니 뎁', '이완 맥그리거'를 거쳐 '아담드라이버가 되었으니. 제작 구상과 제작비 불충분, 자연재해, 영화제 출품과 개봉의 난항 등 영화 한 편이 관객과 만나기까지 지난한 과정을 거친다는 명제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현실과 초현실의 무경계, 이게 바로 돈키호테!



영화 <돈키호테를 죽인 사나이> 스틸컷



영화는 영화 속에 영화, 소설, 연극 등 액자 구성을 자유자재로 넘나듭니다. '미겔 데 세르반테스'의 고전 《돈키호테》를 모티브로 만들어졌죠. 또한 19세기 미국인이 6세기 아서 왕의 시대로 모험을 떠난 이야기 《아서 왕 궁전의 코네티컷 양키》를 재해석하기도 했습니다.  때론 꿈인지, 상상인지,  헛것이 보이는지 관객조차 포기하도록 만드는 이런 초현실성이  영화의 매력입니다.  왜냐고요? 주인공이 돈키호테잖아요.

17세기를 사는 돈키호테와 21세기를 사는 토비.. 아니 산초





테리 길리엄의 영화를 딱 세 편 봤습니다. <제로 법칙의 비밀>, <파르나서스 박사의 상상극장>, 그리고 곧 개봉하는 <돈키호테를 죽인 사나이>까지. 이 영화 말고도 다른 영화를 본 관객이라면 대충 분위기를 짐작할 겁니다. 현실과 환상의 경계가 모호해 잠시 한 눈 팔다가 서사를 놓쳐버릴 수 있으니까 정신 붙들어 메야 함을요. 깜빡 졸았다고요? 그래도 괜찮아요. 어차피  꿈속에서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도 드라마틱 하게 전개되는 법이니까요. 꿈꾸는 듯한  133분 여행을 떠나볼까요?





토비가 쏘아 올린 작은 공

'조나단 프라이스'는 돈키호테 그 자체다



성공한 CF 감독 '토비(아담 드라이버)'는 보드카 광고를  위해 스페인의 작은 마을에 왔습니다. 돈키호테를 컨셉으로 하는데 영 마음에 들지 않고 겉돌기만 합니다. 예전만큼의 열정과 영감이 사라진 토비는 무료한 나날을 보내던 중 한 집시에 의해 10년 전 졸업영화 DVD를 보게 됩니다.  다시금  열정을 찾아보고자 무작정 영화 촬영 마을로 찾아갑니다.





10년 전 토비는 '라만차의 사나이'를 위해 자신만의 돈키호테를 찾아헤맸습니다. 고군분투 끝에 독특한 외모에  구둣방 노인 '하비에르(조나단 프라이스)'를 돈키호테로 캐스팅하게 되죠. 이 영화는 비전문 배우의 자연스러움과 작품성을 인정받아 토비에게 명성을 안겼고,  토비는 성공했습니다.  금의환향도 잠시, 자신이 다녀간 후 달라진 마을 사람들의 삶을 목격하게 됩니다.




기묘한 여정에 관객도 동참하게 된다



"예술가는 잔인해야 하고, 미쳐야 해."



노인은 진짜 돈키호테라 믿으며 17세기에 살고 있고, 15세 소녀의 인생은 파탄 났죠. 이에 토비는 속죄하듯 미쳐버린 노인과 산초가 되어 여정을 떠나게 됩니다. 자의든 타이든 말입니다.


왜 산초였을까요? 산초는 돈키호테가 미쳤음을 알지만 약속한 부와 명예 때문에 동행하게 됩니다. 토비 또한 현실을 알지만 현실에서 잃어버린 무엇을 환상 속에서 찾을 수 있을 거란 기대감 때문일 겁니다.


더불어 관객은 둘만의 모험에 기꺼이 동참합니다. 곳곳에 위험이 도사리고, 말도 안 되는 황당무계한 일들의 연속. 그 속에서 사랑과 전쟁도 이어갑니다. 133분 러닝타임 동안 다양한 시도와 영화적 허용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17세기와 21세기를 씨실과 날실로 이은 영화는 무슬림의 지배를 받기도 한 스페인의 독특한 문화적 배경, 고전의 재해석, 열정의 상실과 매너리즘 극복, 예술의 무경계, 그 와중에 이민자의 삶까지 다루고 있습니다.



때론 돈키호테처럼 무모함이 필요한 때도 있다


굉장한 TMI 영화지만 미워할 수 없는 건. 삶은 때론 미칠 것 같이 우울하고, 지나치게 행복하며 풍자와 날선 유머가 없다면 죽은 거나 마찬가지기 때문입니다. 상상과 몽상이 사치가 되어버린 현대인에게 꿈을 위한 진정한 용기가 무엇인지 묻고 있는 영화기도 하니까요. 그렇습니다, 살짝 미쳐야 즐겁습니다. 유머와 풍자, 슬픔이 없고 즐거움만 가득하다면 과연 파라다이스라 말할 수 있을까요?



영화 <돈키호테를 죽인 사나이> 제목은 이중적인 의미입니다. 문학의 캐릭터 돈키호테를 죽이고 진짜 돈키호테가 된 사나이와 성공을 위해 타인의 인생을 망쳐버린 한 남자의 이야기일지도 모르죠.



스페인 속 이슬람

덧, 영화에서 배경이 스페인인데 이슬람 문화는 뭔가 의아해 할 수 있습니다.  8세기에서 15세기까지 스페인의 그라나다에서 이슬람 문화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스페인은 아프리카에서 온 무어인의 지배를 받았는데, 그때 남겨진 이슬람 문화를 찾을 수 있는 곳이 많고, 알람브라 궁전이 그 결정체라 할 수 있죠. 그리고, 정말 마지막으로 (사담이지만) '아담 드라이버' 너무 섹시한 거 아닌가요?



평점: ★★★★☆

한 줄 평: '테리 길리엄'이 써 내려간 오디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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