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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혜령 Jun 28. 2019

<13년의 공백> 배우 '사이토 타쿠미'의 감독 데뷔작

© 13년의 공백, blank 13, 2017,사이토 타쿠미,



진중한 연기자인 줄만 알았던 '사이토 타쿠미'의 꽤 괜찮은 연출작을 봤습니다. <13년의 공백>은 배우 '사이토 타쿠미'의 감독 데뷔작입니다. '하시모토 코지'의 실화를 바탕으로 각색했으며, 감각적인 연출은 플래시백에서 진가를 발휘합니다. 전자음으로 사용해 그리움과 불안한 감정을 고조시키는 분위기, 전반적으로 톤 다운된 색채가 어느 쪽에도 감정을 보태지 않고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돕습니다.  마치 고인에게 조의를 표하는 듯 말이죠.

<어느가족> 이 생각나는 장면


도박에 빠진 무능력한 가장, 빚독촉에 가족들은 하루라도 맘 편히 저녁을 먹지도 못합니다. 그런 어느 날, 돈 받으러 찾아온 남자들에게 가장 치욕적인 말을 듣게 됩니다. 아버지 마사토(릴리 프랭키)는 담배를 사러 간다며 나간 후로 13년간 돌아오지 않습니다.


그 후 엄마는 가장이 되어 새벽에는 신문배달 밤에는 업소에 나가며 뼈빠지게 아이들을 키웁니다. 힘든 시기를 겪고 장성한 두 아들은 13년 만에 아버지의 소식을 듣습니다. 위암 말기로 3개월 밖에 시간이 없다는 것. 형과 엄마는 병문안 갈 생각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코지(타카하시 잇세이)는 왠지 가야 될 것만 같습니다.


내 장례식에는누가 올까?



<13년의 공백>의 인상적인 면은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에서 보여준 영민함이 느껴진다는 겁니다. 전반부는 일본 가족 영화 특유의 잔잔한 분위기로 흐르지만 중반 부 'Blank 13'이란 제목이 뜨면서 급변화를 맞습니다.


그 과정이 블랙 코미디로 그려지는데요. 웃지도 울지도 않는 가족들의 진지함과 대비되며 웃음을 유발합니다. 영화는 가족들과 함께하지 못한,  증오만 키웠던 13년의 공백을 장례식에 온 조문객들의 이야기로 채웁니다. 죽은 자는 말이 없습니다. 다만 그를 추억하는 자만이 있을 뿐입니다.



13년 동안의 공백을 조문객에거 듣는다


찾아오는이 없는 아버지의 초라한 장례식. 옆 장례식과 확연히 차이 나는 규모와 조문객입니다. 마치 그 사람의 가치를 보여주는 듯해 씁쓸해집니다.  듬성듬성 한눈에 파악되는 조문객과 고인에 대한 추억을 소환하는 시간을 갖는 중입니다. 과연 이 사람들과 아버지는 무슨 인연이었을까. 짐작조차 되지 않습니다.


하나둘씩 자기와 아버지 마츠다의 사연을 이야기하는 조문객들.  가족에게는 쓰레기였지만 남들에게는 세상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약간의 배신감도 듭니다.  13년의 공백은 생각보다 크고, 상처 또한 깊었습니다.


릴리 프랭키의 출연만으로도 충분한 가치의 영화


아들에게 보여 줄 공마술을 꾸준히 연습하고, 자기보다 더 못한 사람을 위하고, 없는 살림에 돈을 빌려주기도 했으며, 죽어가면서도 아픈 사람에게 희망과 용기를 잃지 않는 착하고 좋은 사람이었답니다. 그리고 글짓기 상을 탄 코지의 <꿈의 구장>을 간직한 아버지란 사실도 새롭게 알았습니다.


그동안  아버지가 싫었지만 조금은 좋아질 것 같고 이해도 되는 부분입니다. 아마 코지가 결혼해 한 아이의 아빠가 된다면 또 다른 깨달음을 얻으리라 믿습니다.


영화 <13년의 공백>



영화가 끝나고 문득, 내 장례식에는 누가 올까 궁금해졌습니다. 나를 기억하는 사람은 있을까요? 나와의 어떤 인연으로 마지막 배웅길에 나선 걸까요? 사실 옆 장례식은 겉만 번지르르했지 고인을 추억할 진심 어린 곡소리도 돈으로 때운 인스턴트였습니다. 장례식에 오는 사람을 보고 그 사람의 인생을 평가하기도 한다면 실패한 인생일지도 모를 일입니다.


사람은 두 번의 식에서 인간관계가 드러납니다.  하나는 결혼식, 또 하나는 장례식입니다. 전자보다 후자가 더 의미 있다 생각합니다. 행복한 날을 축하하기보다 그 사람의 마지막을 함께한다는 건 어떤 위로보다 값진 망자를 위한 예의일 테니까요.



평점: ★★★☆한 줄 평: 배우 사이토 타쿠미의 저력 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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