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는 구십넷 흐트러짐 없이 단정한 모습, 고집스럽고 확고한 신념. 세월이 흘러도 무뎌지지 않는 분노에 오히려 침착함으로 화답하는 조용한 투사. 그 이름 김복동을 기억한다. 공장에 일하러 간다는 말에 따라나선 길이 이렇게 험난할 줄 몰랐다. 영화 <김복동>은 92년부터 올해 1월까지 27년 동안 걸어온 할머니의 발자취다.
조용한 투사 김복동을 기억하라!
2019년 7월 4일 기준 위안부 생존 할머니는 총 스물한 분이다. 우리에게는 남은 시간이 없다. 힘든 몸을 이끌고 일본 주요 도시로 세계로 순회강연을 다니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할머니는 2018년 9월 암 투병 중에도 불구하고 '화해. 치유 재단 즉각 해산'을 위한 1인 시위도 벌였다.
자기관리가 철저한 할머니는 부적처럼 그날의 행사에 따라 장신구를 달리한다. 직접 맞춘 나비 목걸이, 불교 표식이 있는 진주 목걸이, 의미 있는 반지들을 끼고 외출을 감행한다. 마치 전사가 전투에 나서기 전 태세를 갖추듯 매사에 본인 의지에 따라 행동하고 명쾌하게 행동하신다. 외향적이고 정갈한 모습을 유지하려는 할머니의 태도가 오프닝에 투영되어 있다. 손을 오래도록 씻는 특별한 행동은 과거를 씻어내고 싶었던 바람이 아니었나 싶다.
할머니의 증언은 그때의 기억을 다시 떠올려야 하는 고통이었을 거다. 군중이 사라진 후 쓸쓸하고 외롭게 삶으로 돌아가야 하는 일의 반복이다. 할머니의 소원은 일본에 사과받는 것만이 아니다. 다른 누구도 아닌 내가 해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한일 관계를 넘어 전쟁 없는 세상을 염원하고, 인류 공동의 문제임을 인식하도록 하는 것이다.
평생 동안 타인의 고통과 아픔을 위해 힘썼지만 정작 당신의 아픔은 위로받지 못했던 할머니에게 부끄럽지 않아야 한다. 처음에는 할머니 혼자였지만 지금은 우리가 되어 큰 위로를 드린다. 타다 한 줌의 재가 된 나무처럼 주름진 얼굴, 쓸어들이고 싶은 작은 등, 메마른 피부가 세월의 흔적이 말해주는 듯하다. 고통과 분노를 곱씹어 평화를 만들어간 김복동, 그 이름을 다시금 기억해야 할 이유다.
지금, 우리가 이 영화를 봐야 하는 이유
무엇보다 영화 <김복동>을 꼭 봤으면 좋겠다. 올해 1월 김복동 할머니는 떠났지만 늘 함께하는 듯하다. 위안부 피해자라는 타이틀 보다 더 폭넓은 여성인권운동가, 평화인권운동가의 여정이 기록되어 있다. 할머니가 살아생전 이루지 못한 일은 사죄 말고도 몇 가지가 더 있다. 전쟁의 피해가 이어지고 있는 재일조선학교에 장학금을 지원하는 일, 우간다 내전 성폭력 피해 여성이 모여사는 터를 만드는 일, 그리고 김복동 센터 건립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자료 아카이빙이다.
누구보다 우리가 정확히 알아야 한다. 그것부터가 시작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다음 세대에게 교육하지 않는 일본과 반대로 더욱 교육에 힘써 알려야 한다. 할머니들에게 전해 들은 것들을 다음 세대가 똑똑히 기억하도록 힘써야 할 것이다. 일본이 가장 무서워하는 것은 우리가 아직도 잊지 않고 있다는 점이기 때문이다.
할머니는 '나는 용서할 준비가 되어 있다'라고 말한다. 살면서 수많은 좌절과 실망을 반복하셨다. 원망과 한숨이 김복동을 잠식해간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내가 살아 있는 증거다'라고 말한다. 살면서 미안하다는 말을 듣는 게 이렇게 어려운 일임을 실감한다. 그냥 미안하다고 한 마디만 하면 될 것을 일본은 2015년 한일 합의 이후 모든 것이 해결되었다고 말한다. 무엇보다도 불가역을 이유로 뻔뻔하게 굴고 있다. 일본의 경제 보복과 국제사회에서 전쟁국가 이미지 감추기는 여전히 현재 진행 중이다.
영화는 <자백>, <공범자들>, <그날, 바다>를 잇는 다큐버스터다. 한지민 내레이션, 윤미래 엔딩곡 참여, 제20회 전주국제영화제 초청작이다. 영화 상영 수익 전액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사용될 예정이다.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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