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은 순환하는 계절에서 청춘을 상징한다. 매미가 짝짓기를 위해 7년이란 인고의 시간을 견뎌 매섭게 울어대는 것처럼 말이다. 맹렬히 찾아왔다가 어느새 달아난 찰나의 젊음을 흔히 여름에 비유한다. 제20회 전주국제영화제 한국경쟁 부분 상영작 <굿바이 썸머>는 찬란한 계절 여름을 섬세하게 다룬 영화다. 다시 맞이할지 모르는 여름, 누구보다 평범하게 하고 싶은 것을 해보는 것. 시한부 선고를 받은 현재(정제원)가 이 여름이 끝나기 전에 하고 싶은 일이다.
현재(정제원)는 고3이고 시한부를 인생이지만 누구보다도 열심히 공부한다. 현재와 친구인 수민(김보라)은 어느 날 현재의 좋아한다는 고백을 듣고 망설인다.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모르냐고, 대학 가면 다 보상받을 수 있다고, 그때 해도 늦지 않는다고 거절한다.
현재는 곧 죽는다는 이야기를 누구에게도 하지 않는다. 한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도 아니며, 아프다고 말하는 건 미안한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친구 지훈(이건우)은 어떻게 알았는지 관계의 의심까지 해가며 다시는 보지 말자고 한다. 현재의 상황은 수민에게도 전해진다. 수민은 고민한다. 내가 쓰레기인 것 같아 몹시 괴롭다.
영화 <굿바이 썸머>는 흔이 생각하는 하이틴 로맨스물이 아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도 첫사랑에 대한 떨림도 제대로 알지 못한 철부지 십 대의 마음을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다. 시한부라고 꼭 시간을 의미 있게 써야 할까? 버킷리스트를 만들어 꼭 해보고 싶은 일을 하는 일만 의미 있을까? 한정된 시간을 어떻게 쓸지는 자신이 선택하는 것이다.
현재는 유난 떨지 않고 지금을 오롯이 즐긴다. 언제 끝날지 모를 더위, 짧고 강렬한 여름은 찰나다. 너무 더워 세상이 녹아버릴 것 같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추위가 오면 잊는다. 현재의 죽음을 알지 못했던 수민에게 현재는 잊힐지도 모를 여름의 한 조각이었다. 하지만 죽음을 알고 난 후 잊을 수 없는 그 해 여름이 되었다.
어떤 사실을 알고 만나는 것과 모르고 만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 봤다. 시한부 인생은 좋아한다는 고백도 할 수 없는 것인가? 남겨진 사람의 슬픔과 죄책감을 생각하지 않은 이기적인 처사일까? 아직 해보지 못한 일이 많은 십 대들을 통해 누구도 경험한 적 없는 죽음을 논하는 <굿바이 썸머>는 멀리서 일상을 포착한다.
<안녕, 헤이즐>처럼 감성에 젖어 죽음을 일부러 부정하고 이겨내려 하지 않아서 오히려 신선했다. 현재가 시한부를 알리지 않은 건 그냥 덤덤히 하루를 이어가고 싶어서 일지도 모르겠다. 누군가에게 불쌍한 아이로 영원히 기억되지 않고, 겨울 지나 봄이 오고 으레 오는 여름처럼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받아들여 주길 원한 것뿐이다. 그 처연하고 싱그러운 마지막 미소는 또 다른 성장의 의미로 다가온다.
누구에게는 잦은 롱테이크가 과하고 지루할지 모른다. 하지만 천천히 오랫동안 10대의 일상을 들여다본 적이 있는지 묻고 싶다. 누구나 처음이라 두려운 죽음의 공포보다 묵묵히 오늘 하루를 살아가는 일상이 중요함을 수민을 향한 현재의 고백으로 대신한다.
평점: ★★☆
한 줄 평: 시한부는 다 똑같은 삶을 살아야 할까? OST가 인상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