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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장cine 수다

<우리집> 아이의 눈으로 본 어른의 세계

by 장혜령
IMG_20190818_090557_108.jpg 우리집, The House of Us, 2019, 윤가은



영화 <우리집>은 아이들을 통해 듣는 우리집의 민낯이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는 가족도 속을 들여다보면 모두가 조금씩 곪아 있다. 우리집이 제일 문제인 듯싶다가도 다른집 얘기 들어보면 더한 문제가 드러난다. 못 잡아먹어 안달인 사람처럼 지지고 볶다가도 또 언제 그랬냐며 아무렇지 않아 하는 것도 우리집이다. 즐거운 우리집, 바람 잘 날 없는 우리집에도 행복이란 해결책이 올까?



가족(家族)보다 더 나은 식구(食口)

영화 <우리집> 스틸컷


어른들의 세계는 복잡 미묘하다. 아이들의 세계처럼 단순 명쾌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나네는 부모님이 허구한 날 싸운다. 그때마다 조마조마한 하나는 부모님의 이혼이 일생일대의 고민이다. 그야말로 위태로운 해체 직전의 가족, 가족이 모두 모여 밥 한 번같이 먹기가 힘들다. 하나는 막내지만 막내티가 나지 않는다. 맞벌이로 바쁜 엄마를 대신에 벌써부터 집안일에 선수이기 때문이다. 부모님이 싸울 때마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요리하며, 식탁에 둘러앉아 밥 먹기를 고대하는 아이다. 끼니마다 그 순간을 기대하지만 좀처럼 밥 먹기는 쉽지 않다.


농경기 사회였던 한국인에게 '밥'은 한 끼를 떠나 공동체를 묶어주는 힘이었다. '한국인은 밥심'이란 말이 나온 경위도 이에 있다. '우리 언제 밥 한 번 같이 먹자'라는 말은 너와 내가 친하다는 경계를 흐트러트리는 말이고, '밥 먹었어?'라는 말은 그간의 안부를 묻는 인사다. 즉, 하나가 노래 부르는 '다 같이 밥 먹자'라는 외침은 가족을 하나로 모으는 하나만의 주문인 셈이다.



영화 <우리집> 스틸컷


오프닝부터 싸우기 시작하는 부모님 사이에서 불안한 눈동자를 굴리던 하나는 밥 먹고 가라는 말이 먹히지 않는다. 하지만 유미와 유진을 만나 음식을 해먹이면서 그간의 갈증이 충족된다. 아이들은 밥 먹자는 소리에 언제 그랬냐는 듯 모이고, 어떤 음식을 해줘도 맛있다고 칭찬한다.


가족과 식구는 같으면서도 다른 개념이다. 한자로 가족(家族)이란 한 지붕 아래 모여하는 사람을 말하고, 식구(食口)란 음식을 같이 먹는 입을 말하기 때문이다. 때론 물보다 진하다는 혈연보다 밥 한 끼 같이 먹는 사이가 더 큰 유대감을 형성하기도 한다. 같이 살며 잠은 자지만 밥은 따로 먹는 현대인들의 익숙한 초상이다. 바빠서 얼굴 볼 시간도 없어 유대감이 사라진 현대사회의 단면을 영화는 아이들의 눈을 통해 필터링한다.




이혼과 이사, 결사반대! 아이들이 뭉쳤다

영화 <우리집> 스틸컷


한 편, 같은 동네사는 유미네는 잦은 이사가 고민이다. 적응할만하면 이사 가는 통에 몸과 마음 모두 지쳤다. 유미네 부모는 도배 일을 하는데 며칠씩 아이들만 놔두고 지방으로 일하러 다닌다. 유미네 부모는 초반 하나가 부러움에 쳐다본 물놀이 가던 가족의 뒷모습으로 그려질 뿐 등장하지 않는다. 덩그러니 유미와 유진만 존재하고 부모는 부재한다. 삼총사는 서로 힘든 일은 도와주고, 굶주린 배도 채워준다. 셋은 식구가 되어주고, 가족의 따스함을 채운다. 오므라이스, 비빔면,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으면서 보듬어주기도 하고 싸우기도 한다.


누구네가 더 큰 문제를 갖고 있는 걸까? 함께 살지만 못 잡아먹어서 안달인 가족, 떨어져 살지만 전화로 연결되어 있는 불안한 가족. 조각난 하나네는 좁디좁은 방 한구석마저도 허락되지 않는다. 곧 이사를 가야 하기 때문이다.


영화 <우리집> 스틸컷

영화는 가족을 비유하는 '우리집'이란 단어 속에 많은 이야기를 담았다. 번듯한 집은 마련되었지만 서로 섞이지 못하는 가족이 있는가 하면, 가족 간의 사이는 좋지만 집하나 구할 수 없어 떠도는 가족이 있다. 이 두집을 내내 비교하며 어느 한 쪽의 문제도 흔해빠진 고민이라 치부하지 않는다. 여전히 따스한 색감과 동그마니 쳐다보는 아이의 얼굴을 비추며 잊고 있던 유년시절, 아이의 고민을 들려준다.


결국 집이 있으나 화목하지 못한 가정과 화목하나 집이 없는 가정이 집을 탈출하면서 새로운 연대가 시작된다. 종이로 만들어 금방 부서지기 쉬운 집을 함께 해체하며 고민도 떠나보낸다. 아이들은 텐트라는 가짜 집에서 잘지언정 ' 이사 가도 우리 언니 해줄 거지?!'라며 묻는다. 또한 '내가 지킬 거야, 우리집도 너네집도. 뭐든 하다 보면 되지 않을까?'라며 당찬 포부도 드러낸다.


이는 겉으로 그러난 1차적인 문제의 해결책을 찾아 나선 적극적인 동심을 짓밟는 어른들의 2차적인 행동을 되돌아보게 한다. 해결한 듯싶었지만 미완의 봉합으로 끝나고마는 마지막 식사 장면으로 극대화되고야 만다. 꼬인 가족의 문제는 스스로 풀어야 함을 보여주고 있는 듯하다.



영화 <우리집> 스틸컷


<우리들>의 윤가은 감독의 신작이자 <우리들>, <용순>, <홈>, <살아남은 아이>를 만든 영화사 '아토(ATo)'의 다섯 번째 작품이다. 윤가은 감독은 이번에도 아이들의 시선으로 어른들의 문제점을 스스럼없이 이야기하고 있다. <우리들>과 <우리집>은 '아이들의 시선'에서 어른들이 느끼는 세계관이 연결되어 있다. 따뜻하고 명랑한데 마음 한구석이 시린 영화다. 찬란한 밝음 뒤 어두움이 존재하는 양면성을 가족에 빗댔다. 편견 없이 서로를 받아들일 수 있는 동심에서 오히려 어른이 배운다.




평점: ★★★★☆

한 줄 평: 우리집만 그런거 아니다, 그치?

[브런치 무비패스5] 관람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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