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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장cine 수다

<언더 더 실버레이크> LA에게 보내는 핏빛 러브레터

by 장혜령
IMG_20190902_164518_472.jpg 언더 더 실버레이크, Under the Silver Lake, 2018, 데이빗 로버트 미첼



*주의!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당신이 오늘 고른 메뉴, 산 물건, 어쩌면 음악이나 영화의 취향까지.. 모두 자유의지로 선택한 것일까? 영화 <언더 더 실버레이크>는 제71회 칸영화제 경쟁부문 초청작으로 대중문화 속에 숨겨진 암호나 메시지를 탐구하는 영화다.


전작 <팔로우>로 센세이션을 일으킨 '데이빗 로버트 미첼' 감독은 눈으로 보이지 않는 존재가 집요하게 쫓아오는 심리적 고난을 소재로 삼았다. 신작 <언더 더 실버레이크>는 알프레드 히치콕, 데이빗 린치, 데이미언 셰젤 등 당대 최고의 감독들이 사랑한 LA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써낸 러브 레터다. LA의 '실버 레이크부터 할리우드 힐'까지를 욕망의 무대로 삼는다. 히치콕으로 시작해, 데이빗 린치의 향기를 느끼다가 <다빈치 코드>의 해석을 따라가다 보면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을 볼 것이다. 최근 개봉한 <미드 소마>와도 비슷한 접점을 갖기도 한다. 관객에 따라 호불호가 심하게 갈릴 영화임에 틀림없다.


영화 <언더 더 실버레이크> 스틸컷


한국에는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으로 잘 알려진 '앤드류 가필드'의 혼신의 연기를 주목할만하다. 천재부터 히어로, 사랑꾼, 종교인, 군인 등 다양한 캐릭터를 소화했지만 이번 영화에서는 평범한 백수 '샘'으로 분해 이웃집 여자 '사라(라일리 코프)'를 찾아다닌다.



현대 영화에서 느껴지는 고전영화의 향기


공포영화는 음악을 끄고 보면 무섭지 않고 오히려 웃긴다. 영화는 그 점을 제대로 활용했다. 고전영화의 화면구성과 색감, 음악으로 히치콕 영화를 오마주 한다. 영화 곳곳에 숨겨 좋은 이스터에그는 린치의 <멀홀랜드 드라이브>느낌의 미스터리함을 차용했다.


할리우드 부자의 파티를 드나들며 배우를 꿈꾸는 지망생들은 <멀홀랜드 드라이브>의 베티 (나오미 왓츠)와 닮았다. 실종된 사라 또한 그랬다. 그녀의 집에는 '마릴린 멀로' 주연의 <백만장자와 결혼하는 법>의 포스터가 걸려있고, 샘과 그 영화를 본다. 캐릭터를 본뜬 마론 인형을 전시해 놓음으로써 욕망을 드러내고 과시하고 있다.


영화 <언더 더 실버레이크> 스틸컷


관음은 LA 전체를 떠도는 유령 같은 욕망이다. 샘은 자기 집에서 수영장의 사라를 훔쳐보며 짜릿한 쾌감을 느낀다. 이는 히치콕의 <이창>을 떠오르게 한다. 그 이후에도 <싸이코>와 <현기증> 등 다수의 히치콕과 고전의 재해석으로 영화를 많이 알 수록 재미있게 즐길 가능성이 크다.


이윽고 친구 집에서 드론으로 란제리 모델 지망생을 훔쳐본다. 그 여자는 아름답지만 어딘지 슬퍼 보인다. 샘이 반복적으로 영화를 보는 행위도 비슷한 맥락이다. 영화관에 앉아 다른 삶을 보는 관람 행위 자체가 합법적 관음의 영역이기도 하니까. 때문에 샘은 결코 넘볼 수 없는 LA 대부호의 저택이나 호수 아래, 긴 터널을 통과해 찾으려 했던 장소, 승천을 꿈꾸는 지하 무덤을 샅샅이 뒤진다. 하지만 찾으면 찾을수록 허무함이 몰려온다. 누구나 이루고 싶지만 선택받은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욕망과 허상은 할리우드 자체이기 때문이다.



거대한 음모로 가득 찬 세상

영화 <언더 더 실버레이크> 스틸컷


영화는 동네에서 일어나는 미스터리한 일에 집착하는 샘을 통해 문제를 파고든다. 샘은 호기심을 갖는 대중 혹은 관객이다. 사라가 없어진 시점을 기준으로 LA 일대를 휘젓기 시작한다. 도살자가 판치고, 사람이 곧잘 실종되는 LA는 부자도 있지만 샘 같은 루저도 있는 아이러니한 공간이다. 마치 우리가 사는 세상의 축소판이다. 이는 샘에게 나는 지독한 냄새와도 같다. 마치 <기생충>에서 느꼈던 하층민과 상층민의 차이를 냄새로 표현한 것처럼 가난의 꼬리표는 샘을 내내 따라다닌다.


샘은 점점 미궁 속으로 빠져들게 되고, 코믹북 작가의 말마따나 모든 음모를 기정사실화하게 된다. 개도살자의 기원, 호수 아래 전설, 부엉이 살인마 등 알 수 없는 떡밥을 투척한다. 샘이 입고 있는 티셔츠의 프린트나 집에 걸려있는 고전 포스터에도 숨은 의도가 있다. 다수의 맥거핀(영화에서 중요한 것처럼 등장하지만 실제로는 줄거리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장치)은 혼란을 더욱 가중시킨다. 때문에 관객은 점점 더 복잡한 퍼즐 조각을 쥐게 된다.


계속해서 샘은 사라를 찾지만 쉽지 않다. 그러다 인기 뮤지션 '뱀파이어와 신부들'의 보컬에게 얻은 단서로 작곡가의 비밀을 알게 된다. 인기 음악 대부분은 자신이 만들었으며, 대중문화 전반의 메시지는 너를 위한 게 아니라는 투다. 대중은 한낮 개돼지란 비웃음이 만연하다. 너희들이 삶의 목적으로 따르는 모든 것은 자신으로부터 나왔다는 자만이다. 다 아는 것 같지만 사실은 은폐, 조작되어 있고 진짜 메시지는 영원히 찾을 수 없을 거라는 조롱이다.



절대 도달할 수 없는 행복의 허상 (강력한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 <언더 더 실버레이크> 스틸컷


샘은 아마 옆집 앵무새가 하는 말을 못 알아듣는 것처럼, 알고도 모르는 척 살아야 할 거다. 누구에게도 수면 아래 진실을 발설해서는 안 된다. 점점 조여드는 위협은 곳곳에 산재되어 있다. '조용히 있어라'라는 경고 표식, 부엉이 가면을 쓰고 찾아오는 벌거벗은 살인마의 위협이 도사리고 있다.


모든 내막을 안 샘은 우여곡절 끝에 '자넷 게이노'가 나오는 무성영화를 본다. 자넷 게이노는 은막의 스타로 LA의 신발가게에서 캐스팅돼 스타의 길을 걷게 된 배우다. 하지만 큰 교통사고로 몇 년간 식물인간으로 살다가 영화 같은 죽음을 맞았다. '난 행복에 익숙하지 않아요', '그럴 땐 아래를 보지 말고 위를 봐요'라는 대사가 나온다.


마치 자넷 게이노가 샘에게 말하고 있는 것 같다. 그렇다. 샘은 집세를 내지 못해 퇴거 명령을 받은 지 오래고 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집을 나와 앵무새를 키우는 옆집 노파의 집에서 자신의 집을 관망하듯이 쳐다본다. 꿈을 이루지 못했지만 우회한 선택을 위안 삼은 눈빛 같기도 하다. 어째 승리한 것 같기도 하고, 씁쓸해 하는 것 같기도 하다.


결국, 샘은 지하 벙커의 사라와 이런 대화를 나눈다. 그들에게 선택받은 자신은 지긋지긋한 세상을 떠나 영생을 누리는 천국으로 갈 거라고. 사라는 샘에게 개를 키워 볼 것을 권한다. 외로움과 성공에 지친 인간은 온종일 주인을 기다리는 개처럼 무조건적인 사랑을 갈망하는지도 모르겠다. 오늘따라 어항 속 금붕어의 뻐끔거림이 구슬프게 느껴지는 건 내 기분 탓일까? 사라는 눈물을 흘리며 통화하지만 후회하는지는 알 수 없다.


영화는 대중이 모르는, 사실은 은폐되고 조작된 메시지에 대해 이야기 한다. 사실 대중문화나 광고는 다수를 대상으로 메시지가 숨겨져 있다. 사상 교육일 수도 있고, 소비 유도 일 수도 있다. 영화를 본 후 당신의 의지는 얼마나 자유로운지 가늠해 보는 것은 어떨까? 영화 속에 숨겨진 암호나 메시지를 찾아 추리해보는 탐정 영화의 매력을 느껴보는 것도 좋겠다.



믿고 보는 제작사 A24의 신작

영화 <언더 더 실버레이크> 스틸컷


영화 <언더 더 실버 레이크>는 믿고 보는 영화 제작사 A24의 신작이다. A24는 독특한 소재, 신선한 연출로 관객들이 관심 있게 지켜보는 제작사 중 하나다. 설립 5년 만에 처음으로 직접 제작하고 배급한 <문라이트>는 2017년 아카데미 시상식을 휩쓸었다. 때문에 할리우드 작가, 감독, 배우들은 제작사의 간섭 없이 창작 활동을 벌일 수 있는 A24를 신뢰할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에서 사랑받은 영화로는 최근 <플로리다 프로젝트> ,<레이디 버드>, <유전>, <미드소마> 등이 있다. <언더 더 실버레이크> 또한 '데이빗 로버트 미첼'감독의 독특한 연출력이 빛나는 A24 영화다. 지금까지 탐구해온 대중문화에 대한 이해와 할리우드 고전영화를 향한 헌사가 자신만의 독특한 스타일로 재현되었다.



평점: ★★★★

한 줄 평: 히치콕과 데이빗 린치 사이에서 다빈치 코드를 풀고 미드소마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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