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장cine 수다

<비뚤어진 집> 비뚤어진 욕망을 가진 사람들

by 장혜령
IMG_20190918_172742_464.jpg 비뚤어진 집, Crooked House, 2017, 질스 파겟 브레너


영화 <비뚤어진 집>은 추리의 여왕 '아가사 크리스티'의 1949년 작 동명 소설을 영화화했다. 무엇보다도 살아생전 직접 가장 좋아하는 소설이었으며, 영화화되지 않는 66편의 작품 중 하나이다. 집필할 때 결말을 미리 만들지 않았던 작품인데 결말 또한 자랑스러워했다고 한다. 과연 영화의 각색을 좋아했을까도 궁금해진다. 결말의 호불호가 예상되기 때문이다.


갑자기 사망한 대부호의 죽음을 둘러싼 미스터리 스릴러이자 범인을 찾는 '후더닛(Whodunnit)'컨셉의 영화다. 탐정과 함께 관객 또한 범인이 누구인지 추리해나가는 재미가 있다. 무엇보다도 여성 캐릭터가 우위에 있으며, 여배우들의 불꽃 튀는 연기 진검승부를 볼 수 있다. 이 영화를 이끌어가는 골자는 '여성'이다.



대부호의 죽음, 범인을 찾아라!

영화 <비뚤어진 집> 스틸컷


할아버지의 죽음이 타살임을 직감한 큰손녀 소피아(스테파니 마티니). 경찰에 알리기 전 과거 연인사이였던 사립탐정 찰스 (맥스 아이언스)를 찾아가 수사를 의뢰한다. 집안에 범인이 있다는 소피아의 말에 탐정 찰스는 집안 구석구석을 돌며 가족들을 찾아 탐문수사에 나선다.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싶은 두 아들은 나이를 잊은 채 서로 싸우기 바쁘다. 그들의 며느리들도 심상치 않다. 맏며느리 '마그다(질리언 앤더슨)'는 허영 가득한 퇴물 여배우다. 둘째 며느리는'클레멘시(아만다 애빙턴)'는 화학자이며, 도산 위기의 회사를 접고 떠나고 싶어 한다.


그리고 가장 의심을 받고 있는 사람, 미모의 젊은 미망인 '브렌다(크리스티나 헨드릭스)'와 젊은 가정교사 '브라운(존 헤퍼난)'과 불륜설이 제기되고 있다. 여기에 똑똑하고 진취적인 큰손녀 소피아와 소아마비 둘째 손자 '유스터스(프레스턴 네이만), 호기심 많은 막내 손녀 '조세핀(아너 니프시)'이 있다.


영화 <비뚤어진 집> 스틸컷


이 집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기록하기 좋아하는 조세핀은 "누군가가 무엇을 폭로하려면 그전에 죽어 나가야 하는지 모른다"라며 의뭉스러운 말을 남긴다. 찰스를 왓슨 박사라 부르며 셜록인척 탐정놀이를 하는 중인데 사건의 모든 것을 알고 있다면 확신한다.


처음에 의심한 사람은 범인이 아닐 가능성이 많다. 용의자는 끝도 없다. 시시콜콜 막내 손녀를 따라다니는 유모는 물론이고, 전부인 마샤의 동생인 '이디스(글렌 클로즈)'도 용의선상에 올라와 있다. 실직적인 레오니디스가(家)의 가장이며 범접할 수 없는 카리스마를 가진 그녀만이 진실을 알고 있는 듯하다. 과연 대부호를 죽인 사람은 누구일까?



비뚤어진 욕망, 상류층의 민낯

영화 <비뚤어진 집> 스틸컷


대저택의 사람들은 겉으로 보이는 것과 달리 비뚤어진 잔혹성과 도덕성을 가진 사람들이다. 내면에 서로 다른 종류의 불안이 가득한 이상한 가족임에 틀림없다. 억압된 열정의 온상이며 증오가 되기도 하는 애증이다. 부족함 없이 살고 있지만 돈을 탐하고, 집안의 어른이 죽었어도 누구 하나 슬픈 기색이 없다. 가족이랍시고 한 집에 살지만 대화도 없고 간혹 있는 대화도 자기 말만 하기 바쁘다. 이게 바로 레오니디스가(家)의 문제점이며 상류층의 민낯이다. 삐걱거리다 이내 비뚤어진 집은 레오니디스가(家)를 향한 거대한 은유이며 또 하나의 캐릭터다. 웅장한 외관에 왠지 모를 으스스함이 깃든 그로테스크한 저택이다.


그리스 출신의 영국인 대부호는 자수성가했지만 말년이 평화롭지 못했다. 스스로 제2의 알렉산더 대왕이 되어 자신만의 왕국을 만들고 싶어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고고하고 우아한 가문의 숨겨진 불안은 제국의 몰락을 예견했다. 한때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고 불린 대영제국의 흥망성쇠의 축소판처럼 비뚤어진 집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영화 <비뚤어진 집> 스틸컷


다만, 추리소설의 여왕 '아가사 크리스티'라는 명성을 뛰어넘기에는 영화가 다소 밋밋하다. 이는 2년 전 동명의 소설을 영화로 만든 <오리엔트 특급 살인>의 기시감이 든다. 먹을 것 많은 뷔페에서 정작 뭘 먹었는지 헛배만 불러오는 격이다. 혼자서도 존재감을 뿜어내는 '글렌 클로즈'도 이 영화를 살려내지는 못한다.




평점: ★★☆

한 줄 평: 멀쩡한 대저택에 사는 비뚤어진 사람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언더 더 실버레이크> LA에게 보내는 핏빛 러브레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