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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장cine 수다

<애드 아스트라> 근원을 찾아 떠난 모험

나는 누구이며, 어디에서 왔는가

by 장혜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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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다. 혼자서 살아갈 수 없다. 영화 <애드 아스트라>는 우주를 배경으로 자아 정체성을 찾아가는 영화다. 인류는 어디에서 왔을까? 신은 있을까? 지구 밖의 우주에 있을 또 다른 생명체를 만나고 싶다는 오랜 질문은 이 영화를 탄생시켰다.


'제임스 그레이'감독의 영화 <잃어버린 도시 Z> 우주편

영화 <잃어버린 도시 Z>, <애드 아스트라> 스틸컷

<애드 아스트라>는 감독 '제임스 그레이'는 전작 <잃어버린 도시 Z>와 닮았다.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정글에 숨어있는 황금의 땅 엘도라도로 떠난 '퍼시 포셋'을 다룬 바 있다. 원작 논픽션을 영화로 만들었으며 극한의 상황을 넘나드는 실존 인물 퍼시 포셋으로 분한 '찰리 허냄'의 명연기를 볼 수 있다. 또한 '톰 홀랜드'가 맡은 아들 '잭'과의 부자 관계도 <애드 아스트라>에서 반복된다. <잃어버린 도시 Z>가 정글로 향한 한 남자의 이야기였다면 <에드 아스트라>는 영역을 넓혀 우주로 향하는 영화다.


미지의 영역을 탐험하고 개척하려는 정복 욕구는 인간의 오랜 욕망이다. 이 욕구가 퍼시 포셋을 수차례 아마존으로 향하게 하는 원동력이었을지도 모른다. <애드 아스트라>에서 '리마 프로젝트'의 모든 것이라 불리는 아버지(토미 리 존스) 또한 지적 생명체를 찾아 떠난 탐험가이다. 때문에 스페이스 오페라 형식을 띄는 스릴러라 볼 수 있다.



나란 누구인가, 심연의 우주 항해일지

영화 <애드 아스트라> 스틸컷

어느 날 미 육군 소령 '로이 맥브라이드(브래드 피트)'는 아버지를 설득하라는 명령을 받는다. 영웅인 줄 알았던 아버지는 지구를 뒤흔드는 전기 폭풍 써지의 근원이었다. 해왕성에 도달한 리마 프로젝트 중 무슨 일이 생겼는지 모르겠지만 아버지는 실종 상태다. 아들 로이는 달을 거쳐 화성의 통신 허브에서 메시지를 보내야만 한다.

영화는 상상만으로만 그려온 달 식민화 이미지를 구현했다. 치열한 자원 전쟁이 지속되고, 기지는 테마파크처

럼 여행 온 관광객을 맞이한다. 화성에서 태어난 여자는 지구를 동경하고 자신들이 버려질지 모른다는 불안에 떨고 있다. 훗날 더 이상 지구에 살 수 없게 된 인류가 식민 행성을 건설한다면 가까운 달, 혹은 조건이 비슷한 화성이 될 것이다.


로이에게 아버지란 영웅 그 자체였다. 훈장왕이었으며 최초로 목성과 토성에 간 사람이다. 아버지를 어릴 적부터 동경했고, 아버지와 같은 길을 걷고 있다. 때문에 늘 맥박수 80의 평정심을 지키려고 노력한다. 되도록 개인적인 감상에 빠지지 않으려 신경 쓰고 있다. 그 결과 지겹도록 반복되는 심리 진단도 매번 통과할 수 있었다.


일이 먼저고 가족은 나중 일이었다. 아내도 등을 돌렸다. 아버지처럼 살지 않으려고 하면 할수록 아버지와 비슷해지고 있는 아이러니다. 우주항해 중 다른 분노하는 유인원을 마주치면서 애써 외면했던 분노와 마주한다. 로이가 온전한 감정을 드러내는 결정적인 장면이다. 이후 로이의 마음은 크게 동요된다.


로이는 가족을 지구에 남기고 우주로 떠난 아버지를 향한 분노가 컸다. 겉으로 멀쩡해 보이지만 껍데기를 들추면 아물지 않은 시뻘건 상처가 훤히 드러났다. 일부러 사랑과 담쌓고 고립을 자처했다. 원망, 분노, 슬픔, 그리움이 점철된 감정은 애증이었다.


만나서 꼭 듣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영화 <애드 아스트라> 스틸컷

로이에게 이번 미션은 태양계 미래의 중요한 일이면서도 풀고 싶은 개인적인 숙제였다. 아버지를 만나 묻고 싶었다. 나와 엄마를 왜 버렸는지, 지적 생명체를 찾아 우주 깊숙이 들어간 탐사에서 무엇을 얻었는지. 그 질문은 '나란 누구인가'란 정체성, 근원을 찾는 것과 맞닿아 있다. 더 깊은 우주로 들어가다 보면 해답을 찾을 수 있을 줄 알았다.


로이는 아버지를 찾아 절대 실패한 인생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을 거다. 이제 우리 둘이서 '희망'이란 배를 함께 노 젓자고 제안한다. 하지만 아버지는 어째 그럴 마음이 없는 듯하다. '희망'은 어두운 이면을 가지고 있다. '희망'은 공산주의 혁명과 나치의 집단 학살에도 영감을 주었다. 히틀러는 가장 우월한 인류를 만들 수 있다는 희망 아래 유대인을 학살했다. 지난 100여 년 동안 서구 자본주의 사회가 저지른 잔혹한 일들은 '희망'의 잘 못 활용한 예라 할 수 있다. 희망은 갈등과 불안에서 출발한다. 부정적인 요소가 없다면 인류가 추구하는 희망도 없다.


과학은 불가능에 도전하고 오류를 찾아 반박할 때 전진한다. 멀고 낯선 세계를 탐사하고자 한 욕망은 가히 맹목적이었다. 보이지 않는 것을 찾아 눈앞에 보이는 것을 찾지 못했다. 인간을 소우주로 칭하는 이유도 이와 같다. 인간의 심연과 우주의 공허함을 채울 수 없는 속성이 비슷하다. 비극적인 상황에서도 영화는 욕망의 어리석음을 사랑으로 포용하고 있다. 삶은 짐은 나누는 것이다. 어디로 흘러갈지 알 수 없지만 어디로 가더라도 서로 마음으로 통하며, 때로는 의지하고 살 때 행복에 가까워진다.

영화 <애드 아스트라> 스틸컷

영화 <애드 아스트라>는 다분히 심리적이고 철학적인 영화다. 광활한 우주를 감상하고 체험하는 동적인 영화가 아니다. 뿌리를 찾고 절대 고독의 여정에 동참하는 정적인 심리 드라마다. 고도 문명이 발달한 가까운 미래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유독 신을 찾는 장면이 많다. 우주 비행사들은 무사안일을 위해, 먼저 간 동료를 위해 기도하고 감사한다. 아무리 과학이 발달한다고 한들 인간은 온전히 홀로 서지 못한다. 누군가를 의지할 때만이 지속 가능하다는 사실을 기어코 확인하고야 마는 존재다. 그것을 알면서도 실천하기는 매번 어렵다.




평점: ★★★★☆

한 줄 평: 없는 것을 찾다가 있는 것을 잃어버렸네. <인터스텔라>, <그래비티>, <퍼스트맨>과 비슷한 결을 유지하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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