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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옛날 옛적엔 말이야

타란티노 영화공장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by 장혜령
IMG_20190923_161211_406.jpg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 Once Upon a Time... in Hollywood, 2019, 쿠엔틴 타란티노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신작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는 가장 빛나던 할리우드를 향한 인장 박힌 연서다. 10번째 영화까지 만들고 은퇴를 선언한 감독의 아홉 번째 영화라는 점이 입소문의 시작이었다. 제72회 칸영화제 경쟁 부문 진출작이자 한 영화에 출연하기 힘든 '브래드 피트'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캐스팅만으로도 설렘 플러스다.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은 두 배우의 캐스팅은 단순히 운이 좋았다고 했지만, 샤론 테이트로 생각해온 '마고 로비'까지 세 배우가 이 영화에 출연하고자 의사를 밝혔다. 제목에서 낯설지 않은 느낌을 받았다면 '세르지오 레오네'감독의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와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웨스트>가 생각날 것이다. 역시나 감독에 대한 오마주에서 따왔다.


그의 영화 중에 유혈과 폭력은 적은 편에 속한다. 강력한 원톱 캐릭터보다 브래드 피트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브로맨스가 주를 이룬다. 두 주인공의 개인적인 서사와 당시 할리우드 배경과 분위기가 조화롭게 그려진다.


영화는 시종일관 두 배우의 만담이 주를 이루고, 꿈의 공장 할리우드 세트장에 벌어지는 고군분투를 에피소드처럼 늘어놓는다. 해가 지고 있는 할리우드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밝고 경쾌하고 때로는 자조적인 위트를 가미해 69년의 할리우드를 재현했다.


질투 나도록 끈끈한 우정

영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 스틸컷


1969년 할리우드에는 퇴물이 된 배우 '릭 달튼(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과 그의 스턴트 배우이자 매니저인 '클리프 부스(브래드 피트)'가 화면을 꽉 채운다. 둘은 유유상종이란 말이 떠오르는 상반된 매력의 소유자다. 주로 맡는 캐릭터와 상반된 성격의 다혈질, 옹졸한 '릭'과 전쟁영웅이자 뚝심 있는 성격의 터프가이 '클리프'가 등장한다. 둘은 공생관계다. 릭의 대역을 따내기 위해 클리프가 승승장구해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점차 사라져가는 할리우드의 영광처럼 좀처럼 릭의 전성기를 허락하지 않는다.


술에 절어 있거나 연습한 티가 나지 않게 대사도 까먹는다. 나이 탓인지 열정이 사라진 탓인지, 매너리즘에 빠졌는지 회생의 기회가 멀어져 간다. 게다가 점점 귀가 얇아진다. '마빈 슈바르츠(알 파치노)'가 정곡을 찌르는 평가를 할 때 괜찮은 척했지만 내심 자존심이 상한다. 악당 역을 계속하는 순간 한 이미지에 고정되어 나아지지 않을 거란 말을 듣는다. 정확한 지적일 거다. 하지만 릭은 인정하는 꼴이 될까 조바심 난다. 이번 기회에 이탈리아로 날아가 '스파게티 웨스턴'을 찍어보란 제안에도 솔깃해진다. 어쩌면 옆집에 이사 온 '로만 폴란스키' 감독과 친해져 기회를 잡을지 모른다는 들뜸도 살짝 있다.


영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 스틸컷

반면 릭의 심복처럼 보이지만 비상한 존재감을 갖는 '클리프'는 젠틀한 보디가드 같다. 사실 이 둘의 우정이 내심 부러웠다. 스턴트맨으로 먹고사는 클리프는 불안정한 상태다. 하지만 돈이나 명예에 연연하지 않는다. 그저 릭의 곁에서 돕고 맥주나 마시면 그만이다. 퇴물이 되어가고 있는 배우일지라도 언제나 최고라고 말해주는 단 한 명이 있다는 것, 얼마나 낭만적인가.


클리프가 기르는 반려견은 신호를 주기 전까지는 먹이를 먹지 않고, 움직이지 않는다. 마치 그와 릭의 관계 같다. '브랜디'란 이름의 핏불 테리어는 영화제 출품 영화 중 가장 멋진 연기를 뽐낸 개에게 주는 '팜 도그‘상(Palm dog)을 수상하기도 했다. 브랜디의 활약은 모든 것이 터지는 혼돈의 결말부에 진가를 발휘한다.



성공한 덕후의 이유 있는 복수혈전

영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 스틸컷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는 '로만 폴란스키'감독과 배우 '샤론 테이트' 실제 사건을 재구성했다. 이 소문이 돌면서 논란과 화제성을 낳았다. 샤론 테이트 언니는 내 동생의 죽음을 이용하지 말라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하지만 시나리오를 보낸 후 우려는 말끔히 해소되었다. 오히려 영화를 독려하며 동생의 유품을 빌려주기도 했다. 실제 마고 로비가 착용한 소품은 샤론 테이트의 것이기도 하다.


때문에 검색만으로도 누구나 알 수 있는 결말을 타란티노 식으로 어떻게 재구성했는지가 최대 관건이다. 희대의 살인마 집단인 '찰스 맨슨 패밀리'에 대한 묘사도 많지 않다. 덧붙이자면 사건의 당사자보다 옆집을 주목하도록 카메라를 비틀었다. 옆집은 바로 배우 '릭 달튼'의 집이다.


영화의 배경이 1969년인 이유는 할리우드 영화산업의 격변기였기 때문이다. 1970년대 이후 영화 산업의 활기는 막을 내린다. 쿠엔틴 타란티노는 성공한 덕후다. 영화 대사에 나오는 인물 하나까지도 허투루 등장시키지 않는다. 모든 대사와 인물 이름, 장소, 소품은 이스터 에그로 활용된다. 옛날 옛적 할리우드의 문화, 역사, 배경을 많이 아는 만큼 웃고 이해할 수도 있다. 타란티노가 사랑한 1969년 할리우드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 3일간의 시점을 빌어 자신만의 복수극을 펼친다.



영화적 허용, 시네마틱 리얼리티

영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 스틸컷


그가 영화를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쏟아 부었다. 영화 속에 영화를 보거나 찍는 액자식 구성을 취하기도 한다. 특히 매체 특성상 허용되는 판타지의 최정점은 샤론 테이트(마고 로비)가 자신이 출연한 영화를 관람하기 위해 극장에 가는 장면이다.


배우라면 공감되는 장면일 것이다. 몰래 객석에 숨어들어 관객의 반응을 살피는 행위 말이다. 스크린에 상영되는 영화는 마고 로비가 찍은 영상이 아닌, 실제 샤론 테이트가 찍은 <렉킹 크류>의 한 장면이다. 이는 샤론 테이트를 향한 일종의 존경의 표시 중 하나다. 이 영화의 세 배우는 영화 속에서도 배우를 연기했다. 다른 캐릭터를 연기하는 배우는 극에서 빠져나올 때 심한 공허함을 느낀다고 한다. 그만큼 배우도 위안이 필요하다.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는 다분히 배우를 위한 영화기도 하다.


평점: ★★★☆

한 줄 평: 옛날 옛적에 할리우드는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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