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혜령 Oct 25. 2019

<경계선> 낯섬과 이질감이 빚어낸 오묘한 화학작용

경계선, GRANS, BORDER, 2018, 알리 아바시

제71회 칸국제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대상작 <경계선>은 한국과 인연이 있다. 스웨덴 배경의 낯선 문화와 비주얼에서 묘한 동질감을 느낀다. 대한민국에 살며 넘을 수 없는 분사 경계선에 사는 국민은 선긋는 행위에 익숙하다. 너와 나, 우리와 너희, 정규직과 비정규직, 부자와 가난한 자. 내 편에 속하지 않을 때 차별하는 속내는 집단의 공공연한 일이다.


인간인지 괴물인지 선뜻 분간하기 어려운 존재는 인간다움의 경계선상에 있다. 처음 만난 존재를 탐색하는 동물의 후각적 본능이 두 영화의 접점이다. <경계선>에서는 인간의 분노, 수치심, 죄책감의 냄새를 맡을 줄 아는 신비한 존재가 등장하고, <기생충>에서는 가난의 냄새를 맡은 상류층의 멸시가 화근이 된다. 시각에 길들여진 인간보다 순수한 본능을 따르는 존재가 주인공이다. 



어디에서 속하지 않는 아웃사이더 

영화 <경계선>

어떠한 기준으로 분간하는 경계(境界). 감독 '알리 아바시'는 경계를 넘나드는 사람이다. 이란 태생이지만 덴마크에서 영화를 전공했고, 스웨덴에서 영화를 만든다. 제20회 부천판타스틱영화제 레드 섹션에 소개된 데뷔작 <셜리> 또한 덴마크 부부와 루마니아 대리모를 통해 국경의 의미와 공포를 말하고 있다. 이처럼 어느 곳에서 쉽게 정착하지 못하고 국경을 넘나드는 '알리 아바시'는 현재 이란 국적이다. 철저한 아웃사이더, 디아스포라의 정체성으로 안과 밖, 외부인과 내부인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어 낸다.


다소 혐오스러울 수 있는 외형 속에 맑고 강인한 내면을 가진 트롤 이야기는 기묘하고도 아름답다. 영화는 남들과 다른 외모를 가진 '티나(에바 멜란데르)'와 '보레(에밀 밀로토프)'가 만나 가까워지는 과정을 천천히 담는다.

티나는 사람의 감정을 냄새 맡는 특별한 능력으로 국경 세관원으로 일한다. 수상한 냄새가 맹목적으로 코를 찌를 때면 어김없이 가방 검사를 해야 한다. 이에 불법 영상물을 소지한 남자를 적발하며 경찰을 돕기까지도 한다. 티나와 보레가 교감하는 이야기와 범죄자 수색이 어떤 관계가 있나 연결 짓다 보면 벌써 영화는 끝나있다.



나는 누구인가, 끊임없는 정체성 찾기 

영화 <경계선>

티나는 자신이 누군지 끊임없이 질문해 보지만 누구에게도 답을 듣지 못하고 살았다. 남들과 다른 외모는 염색체 결함의 문제라 치부하며 자기방어적인 성격을 보였다. 평생을 못생긴 괴물이란 생각에 괴로워하며 살아가던 수치심 가득한 인물이다.


반면, 자신과 비슷한 외모와 같은 흉터, 설명할 수 없는 냄새로 이끌린 보레는 차별과 분노를 그대로 표출하는 인물이다. 음산한 미소, 불편한 과시욕은 티나와 비슷해 보이나 뚜렷하게 다른 성향을 갖는다. 때문에 해결되지 않는 티나의 물음에 답해 줄 수 있는 유일함을 가졌으며, 잠자고 있던 티나의 본능을 깨우는 장본인이다.


티나는 인간이 아닌 트롤이다. 당연히 인간세계에서 다른 정체성으로 고통 받았다. 하지만 인간의 손에서 길러지며 윤리, 가치, 인간성을 획득한다. 때문에 보레의 폭력적인 행동에 제재를 가할 수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보레는 인간이 기생충처럼 모든 걸 써먹는다는 말에서 알 수 있듯 분노를 드러내며 복수를 꿈꾼다. 반면 티나는 상처로 뒤틀려버린 보레의 마음을 다스려보고자 했다. 너와 나, 여성과 남성, 인간과 트롤, 정상과 비정상을 나누는 경계는 무엇인지 곱씹게 된다. 인위적으로 만든 경계 (국경)는 넘을 수 있는 자와 없는 자를 가르는 구분 짓기와 평생을 일해도 넘볼 수 없는 계층을 꿈꾸는 소시민의 현실을 빗댄 우화처럼 느껴진다.



프레임의 안과 밖

영화 <경계선>

영화 <경계선>은 <렛 미 인>의 원작자 겸 각본가 '욘 아이비데 린드크리비스트'의 신작을 각색해 만들어졌다. 이미 전작부터 독특하고 기묘한, 어디서도 본 적 없는 오리지널리티로 세계를 놀라게 한 바 있다. 이번에도 각본에 참여 했다. 때문에 영화 <경계선>은 올해 가장 충격적인 비주얼과 낯선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보는 내내 뒤통수가 뜨거웠다. 시각으로 판단하는 선입견을 깨는 사례가 계속해서 등장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얼마나 많이, 자주 프레임으로 상대를 판단했는지 말이다. 


다름은 틀림이 아니다. 나와 다르다고 해서 차별하고 경계했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덮어놓고 혐오했던 인간들에게 선의를 베푼 티나의 마음은 무엇이었을까? 자길 이해해주고, 공감해준 보레를 떠나보내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둘은 멀리 떨어져 있어도 무엇을 나눠야 하는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세상의 인정을 받지 못한 소수자지만 오히려 서로에게 굳건한 존재감으로 자리한다.



평점: ★★★★

한 줄 평: 아름다움, 인간다움은 누가 만드는가

매거진의 이전글 <스노우 화이트> 공주는 발칙하면 안 되나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