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혜령 Oct 29. 2019

<82년생 김지영>출구를 찾지 못한 건 잘못이 아닙니다

82년생 김지영, KIM JI-YOUNG, BORN 1982, 2019, 김도영


원작을 사놓고 3년 만에 읽었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읽었지만 선뜻 읽고 싶지 않았다. 주변에서 이구동성으로 내 이야기라고, 82년생 김지영은 나라고 간증하듯 말했다.


'데이비드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이 세상에 나왔을 때 많은 사람들이 홀든에 감정이입했을 때와 비슷할까. 이름을 지우고 엄마라는 새 이름을 받았지만 좀처럼 익숙하지 않은 버거움에 몸부림치던 영화 <툴리>의 ‘마를로(샤를리즈 테론)’가 떠올랐다. 왜 그렇게 다양한 연령의 여성들이 공감했는지 읽고 난 후 알 수 있었다. 주인공 김지영처럼 결혼해 아이를 키우는 여성이 아니더라도 가정, 학교, 직장에서 받았을 법한 경험이 집약되어 있다. 다양한 사례를 모아 완성한 캐릭터가 바로 김지영이다.


<82년생 김지영> 스틸컷


1982년에 태어난 김지영은 세 남매 중 둘째로 남부럽지 않게 공부도 잘하고 직장 내에서도 인정받는 여성이었다. 하지만 결혼과 출산으로 직장을 그만 둔 경력단절 여성이다. 많은 여성들이 출산 이후로 일을 포기하기도 한다. 아이를 내 손으로 직접 키워야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아이를 돌봐 줄 곳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지영은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고 괜찮다는 말을 달고 살지만. 가끔 먼 산을 혼자 멍하니 바라보고, 해질녘 가슴이 쿵 하는 증상이 계속되었다. 급기야 명절 시댁에서 일이 터졌다. 가족들 앞에서 갑자기 다른 사람이 되어버린 것이다. 육아와 가사를 혼자 감내하는 게 힘들지만 아이의 웃은 얼굴에 보상 받기도 한 속내가 드러나는 지점이다. 자기가 아픈 줄도 모르고 지영은 병을 키워갔다.


<82년생 김지영> 스틸컷

다른 사람처럼 말하는 지영(정유미)을 대현(공유)은 안타깝게 바라본다. 결혼 전에는 꿈 많고 밝았던 아내가 말 수도 적어지고, 부쩍 피곤해하는 이유가 자신인 것 같아 미안함이 크다. 대현의 가장 큰 걱정은 아내가 자기 병세를 알게 되는 날이다. 이를 위해 대현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노력한다.


개인의 인생은 어머니, 그 어머니의 어머니 이야기로 거슬러 간다. 대물림되어 온 차별과 희생을 감내하면서 당연한 거라며 살아왔다. 지영은 기다렸다는 듯이 굵직한 시대별 여성들로 빙의해 현 세대가 이전 세대에게 말을 건다. 선생님을 꿈꿨으나 오빠들 뒷바라지 한 지영의 엄마 미숙(김미경), 지영의 친구였지만 출산 중 사망한 친구, 희생을 강요할 수밖에 없었던 외할머니가 된다.


영화는 원작을 기본으로 하되, 남편 캐릭터에 살을 붙였다. 저런 남편은 판타지라고 원성을 살법한 자상한 사람으로 각색되었다. 직장 에피소드에 힘을 실으며 직장 내 현실을 반영했다. 아이러니했던 결말을 수정해 공감 또한 이끌어 냈다. 영화가 환상을 쫓는 매체라면 <82년생 김지영>은 남편 캐릭터를 통해 판타지에 접근한다. 가장 흔한 이름 중에 하나를 쓰고 20세기에 태어나 21세기를 살고 있는 여성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줄 것 같은 사람이 바로 남편이다.


<82년생 김지영> 스틸컷


소설 속 남편은 적당히 평범하고 무심한 사람이었다. 남편뿐만 아닌 지영의 힘듦을 알면서도 묵인하고, 잘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일 것이다. 당신이 영화 속 이야기를 처음 들었다면 사회가 만들어 놓은 틀 속에 있는 사람 중 하나일 뿐일지 모른다. 의도하지 않는다면 불편하고 배제당하는 소수를 잘 모를 수밖에 없다. 바로 삶에서 예술이 필요한 이유다.


영화를 통해 관객은 관심 없던 이야기에 귀 기울일 수 있고, 타인을 이해하며, 원한다면 연대할 수도 있다. 시대가 바뀌었으나 인식은 그대로다. 단 몇 분 봐놓고 전체를 아는 듯 호도하는 사람들의 선입견에 '절 아세요?' 라며 맞받아치던 지영의 행동에 숨통이 트였다. 우리는 더 이상 세상의 모든 김지영을 방치할 수 없다.


<82년생 김지영> 스틸컷

아이를 낳으라지만 정작 낳아 맡길 시설이 부족하고, 육아휴직을 마음대로 쓸 수 없는 허울뿐인 제도, 뚫을 수 없는 유리천장이 여전히 존재한다. 거대한 사회 구조는 쉽게 변하지 않는다. 용기 있는 누군가가 잔잔한 호숫가에 돌을 던질 때야 작은 파장은 시작된다. 하지만 그마저도 하지 않는다면 고인 물은 썩을 것이다. 조금씩 양보하며 함께 살아가려는 움직임, 불편을 감수한 사람들의 노력이 헛되지 않기를, 어제보다 나은 세상을 살아가고 싶은 작은 바람이다.



평점: ★★★★

한 줄 평: 원작과 영화 모두 좋은 사례




매거진의 이전글 <경계선> 낯섬과 이질감이 빚어낸 오묘한 화학작용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