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공감할 우리집 이야기
완벽한 타이밍은 뭘까. 치매에 걸린 엄마는 지금이 딱 좋은 때라고 말했다. <왓 데이 해드>는 각자의 상처를 짊어지고 살던 가족이 엄마의 병환으로 모이며 서로의 존재감을 확인하는 영화다. 포스터만 보고 모녀 이야기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진심이 각기 다른 모습으로 표출될 때 놀라움도 있지만 이해 가능한 가족의 모습을 다룬다.
모두가 공감할 우리집 이야기
영화는 비티의 시선으로 시작된다. 비티(힐러리 스웽크)는 스무 살에 결혼해 아빠가 골라준 완벽한 남편과 20년째 살고 있는 평범한 전업주부다. 요즘 부쩍 소통이 어려운 딸과 잦은 싸움으로 힘겹다. 오빠 니키(마이클 섀넌)는 학교를 중퇴하고 술집 사장으로 지내고 있다. 완고하고 완벽한 아버지에게 늘 부끄러운 존재라 생각하지만, 자신의 방식으로 삶을 즐기고 있는 중이다.
엠마(타이사 파미가)는 대학을 다니기 싫다. 이제 독립할 나이도 된 것 같은데 부모님의 참견에 참을 수가 없다. 아버지 버트(로버트 포스터)는 점점 자신과 가족을 잊어버리는 아내를 극진히 보살핀다. 사랑은 헌신이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되뇐다.
가족은 엄마 루스(블리드 대너)의 요양원 문제로 티격태격한다. 한때 페미니스트에 워킹맘이었던 엄마지만 치매란 병은 과거의 영광을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 점점 쇠약해지고 아이 같아지는 엄마. 그동안 아버지 혼자 이 모든 것을 감내하고 있었다. 오랜만에 찾은 버티는 한없이 미안하지만 자기 가족의 문제조차 해결하지 못해 난색을 표한다. 아픈 엄마, 혼자 고생하는 아빠를 위해 전문 요양원이 답이라 생각하는 니키의 주장에 힘을 실어 달라고 조르는 중이다. 비티는 어째야 할지 감이 서지 않는다.
각자 공평하게 안배한 배우들의 조합
강인한 캐릭터를 주로 맡아온 힐러리 스웽크가 세상 물정 모를 때 결혼한 전업주부를 맡아 소화한다. 아버지의 꼭두각시처럼 살았고, 정해주면 따르는 게 삶이라고 느꼈지만 마흔이 돼서야 진짜 모습을 찾기 위해 분주하다. 마이클 섀넌이 맡은 오빠 니키는 틱틱거리지만 여동생을 살뜰히 챙기며 우애 좋은 남매 모습을 보여준다. 진지한 표정으로 던지는 농담이 잔잔한 영화의 웃음 포인트다. 능청스러운 연기가 그동안 맡아온 캐릭터보다는 힘을 뺀 듯하지만 무시할 수 없는 존재감이 크다.
영화의 모든 캐릭터는 튀는 캐릭터 없이 균등히 제 역할을 하는 배우들의 조화롭게 담겨있다. 산다는 건 커다란 코미디다. 뜻대로 되지 않아 고군분투하지만 결국 시간이 지나면 웃으면서 이야기할 수 있음을 이야기한다. 아무리 자식이라 해도 덥석 아픈 엄마를 돌볼 수 없긴 마찬가지다. 각자의 가정이 있고, 해야 할 일이 있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어 부모를 모실 수 없는 처지가 되거나, 아픈 부모를 형제끼리 어떻게 돌봐야 할지 현실적인 문제를 생각하게 한다.
영화 <왓 데이 해드>는 잊고 지낸 가족의 의미를 되새겨 보길 권하고 있다. 여성이자 신인감독인 '엘리자벳 촘코'감독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풀어 냈다. 치매라는 소재를 따스한 시선으로 그려낸 웃음과 감동의 드라마다. 치매는 누군가에게 의지해야만 하고 나를 잃어버리는 두려운 병이 아니다. 오히려 사랑을 확인하고 더 단단해지는 가족의 접착체 역할을 할 수 있음을 배우들의 호연으로 느껴볼 수 있다.
평점: ★★★
한 줄 평: 튀는 배우 없이 서로의 연기를 공평히 존중하는 분위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