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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혜령 Nov 09. 2019

<늑대의 아이들> 현대판 잔혹동화

전쟁 뒤 살아가야하는 아홉 아이들

늑대의 아이들, Werewolf, 2018, 아드리안 페넥


올해는 2차 세계대전 발발 80주년이자 한-폴 수교 30주년이다. 이에 의미 있는 폴란드 영화가 11월 14일 개봉을 앞두고 있다. 제23회 부천판타스틱영화제 초청상영 되었으며 전 세계 29개 영화제 초청 및 12개 부분에서 수상한 웰메이드 작품이다. 잔혹한 전쟁의 실상과 그 후를 살아가야 하는 생존기를 담은 현대판 잔혹동화다.


<늑대의 아이들> 스틸컷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폴란드 강제수용소에서 해방된 아이들은 러시아군에 의해 숲 속 저택에서 보모와 살아가게 된다. 전기도 없는 폐허나 다름 없는 곳에서 러시아군이 오기만을 기다리며 부족한 식량으로 연명한다. 하지만 적응할 새도 없이 보모는 괴수에게 물려 죽음을 맞이하고 9명의 아이들은 물, 식량, 돌봐줄 어른 없이 숲 속에서 생존해야 한다.


아직 어른의 보호와 돌봄이 필요한 앳된 아이들은 관객의 마음을 뒤흔든다. 아이들은 수용소에서 사회성을 상실한 채 갇혀 있었다. 자해를 했거나, 말을 하지 못한다. 또한 도구를 사용해 음식을 먹지 못하고 손으로 먹고, 폭력적인 행태를 보인다. 태어날 때부터 제대로 교육 받지 못하고 폭력의 질서에 노출된 아이들은 오로지 동물적인 본능만 남은 상태다.


<늑대의 아이들> 스틸컷


한 편, 물도 식량도 없이 고립된 아이들에게 더 큰 시련이 찾아온다. 수용소에서는 아이들만 풀려난 게 아니었다. 독일군의 명령으로 살육도 불사하는 맹견도 풀려났다. 이에 한 아이는 “친위대 장교들이 개로 변했어?”라는 은유적인 말을 내 뱉는다.  동물적인 본능만 남은 아이들이 늑대가 아닌, 전쟁을 벌인 어른이 진짜 늑대였음을 직시하고 있다.


아홉 아이들이 살아가는 저택은 사회의 축소판이다. 그 안에서 작은 감자 하나를 아홉으로 나누고, 서로를 의지했다가도 배신하며 사회성을 배워 나간다. 영화의 초반부는 생존하기 위한 고군분투와 미스테리한 괴수의 정체가 밝혀지는 과정을 섬세하게 담았다. 중후반부터는 리더 한카(소니아 미에티엘리카)의 마음을 얻기 위한 독일인 소년 (니콜라스 프시고다)과 브와데크(카밀 폴니시아크)의 대립이 고조된다. 둘의 신경전은 전체를 위험에 빠트리기도 한다. 마치 암컷의 마음을 차지하기 위한 수컷의 본능이 생사를 넘나드는 위험과 맞물려 분위기를 압도한다.


아이들은 전쟁의 수혜자처럼 수용소에서 풀려났지만 갈 곳 없는 고아나 다름없다. 찾는 이도 없는 버려진 아이들이다. 이들을 받아 준 곳은 다름 아닌 숲 속의 폐허였다. 이곳은 장소만 옮겼을 뿐 또 다른 위험 요소이자 통과의례였다. 삶을 누리는 것보다 삶을 살아내는 것이 우선순위였던 아이들의 거친 예행연습이 이어진다.


<늑대의 아이들> 스틸컷


어쩌면 아이들은 세상 밖으로 나가도 순탄치 않은 과정을 겪을 것이다. 몇 번은 부딪히고 깨지면서 비로소 어른이 될 것이다. 결코 누구도 아이들의 미래를 단언할 수 없다. 그러나 희망이란 작은 빛은 쏘아 올릴 수 있다. 자신의 비극을 누구의 탓도 하지 않고 감내하며 이겨낼 줄 안다. 또한 용서하고 화해할 줄 안다. 누군가를 길들이거나 길들여진다는 것은《어린왕자》의 여우과 어린왕자처럼 관계를 통해 만들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시종일관 스산하고 신비로운 폴란드 숲의 아름다움과 공포가 영화를 지배한다. 그 속에서 아홉 아이들은 천진난만한 얼굴과 동물적인 본성이 가득한 민낯이 교차한다. 늑대의 위험에서 벗어나기 위해 스스로 늑대가 되어버린 아이들은 지금까지 보아온 영화와 차별화를 시도한다.







평점: ★★★

한 줄 평: 대의 위험에서 벗어나기 위해 스스로 늑대가 되어버린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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