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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혜령 Nov 11. 2019

<모리스> 퀴어 고전, 32년 만에 국내 정식 개봉

모리스, Maurice, 1987, 제임스 아이보리

영화 <모리스>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의 제작, 각본, 각색을 맡은 ‘제임스 아이보리’가 32년 전에 완성했던 영화다. 1987년도 작품이지만 국내에는 30여 년 만에 정식 개봉을 했다. 해외에서 이미 호평을 받은 영화가 국내 첫 정식 개봉이라는 점은 80년대 후반 동성애를 수용할 수 있는 범위가 아니었음을 시사한다.


소설《모리스》도 1914년 작품이지만 57년 후인 1971년에서야 출간될 정도로 1910년 대 영국의 보수적인 사회의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다. 영국은 1967년에서야 동성애 처벌법이 폐지되었다. 이처럼 소설과 영화 모두 사회의 금기에 맞서 지난한 우여곡절 끝에 대중과 만날 수 있었다.


놀라운 사실은 많은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메시지는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다는 점이다.《하워즈 엔드》, 《전망 좋은 방》, 《모리스》 등 E.M 포스터의 소설을 각색해 만든 제임스 아이보리는 원작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영국 상류층 모습과 풍경을 미학적으로 담아냈다. 낭만적이고 우아하지만 이상과 현실의 불일치, 계급 간의 위선을 드러냄으로써 지금 봐도 손색없는 클래식 로맨스의 영역을 갖추었다 할 수 있다. 지금은 중년이 된 휴 그랜트와 제임스 윌비, 루퍼트 그레이브즈의 풋풋한 모습을 확인하는 즐거움은 덤이다. 


첫사랑은 느닷없이 온다

<모리스> 스틸컷


1900년대 초,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교에 다니고 있는 모리스(제임스 윌비)는 무료한 학교생활을 그럭저럭 보내고 있다. 삼위일체와 기독교, 남학교의 위계질서와 권력에 숨 막히던 터였다. 우연히 클라이브(휴 그랜트)를 만나 자유와 성(性)정체성에 눈을 뜬다. 클라이브는 애간장을 태워 모리스를 더 깊이 빠르게 만든다. 


둘은 동성애가 범죄이며 질병이던 20세기 초 영국 사회에서 연인으로 발전해 사랑을 키워간다. 처음에는 클라이브가 먼저 다가왔지만 모리스는 커진 마음을 토로할 수 없어 힘들다. 그 와중에 클라이브는 내적 갈등이 커진다. 그리스에서 플라토닉 사랑의 합리성을 찾고 있었으나 그마저도 실패한다. 둘은 사회의 규율에 갇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상황에 탈출구를 찾고 싶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다. 사랑하는 사람을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으며 관계를 알고 있는 하인들의 눈치를 봐야 하는 상황이 이어진다.



결국 클라이브 마음의 방향을 바꾸는 일이 벌어진다. 동성애로 붙잡힌 리슬리 경의 추문으로 클라이브는 흔들리게 된다. 가문과 직업적 명예를 두루 갖춘 리슬리 경의 파멸이 마치 자신의 미래일까 봐 혼란스럽다. 이후 클라이브는 모리스를 멀리하고자 하고, 모리스는 그런 클라이브가 야속하기만 하다. 고민에 빠진 클라이브는 이 사랑이 병이 아닌지 의심하며 이성과 결혼해야 한다는 말을 실행에 옮긴다. 자신의 사랑을 가감 없이 표현했지만 시대와 사회의 벽에 부딪혀 클라이브는 타협점을 찾는다. 앤과 결혼해 가정을 꾸리자 모리스는 혼란에 빠진다. 


누구를 사랑하든 사랑이야


날카로운 첫사랑의 추억은 모리스의 삶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았다. 그 사랑은 느닷없이 다가와 갑자기 떠나가려 한다. 붙잡을 수 없는 모리스는 혼자 상처를 감내하려 분투한다. 하지만 사람의 마음을 약이나 물리적인 상황으로 바꾸어 놓을 수 없음을 우리는 누구보다 잘 안다. 


모리스는 클라이브가 앤과 행복한 모습을 보며 가슴은 쓰라리지만 플라토닉 사랑으로라도 곁에 남아 자신만의 사랑을 키우고자 다짐한다. 마음을 떨쳐보려 최면술을 쓰거나 의사를 찾아가 병이라면 치료하고 싶어 한다. 그렇게 클라이브 집에 머물던 어느 날, 하인 알렉(루퍼트 그레이브즈)과의 하룻밤은 또 한 번의 금기를 넘어 모리스의 삶을 뒤흔든다. 

<모리스> 스틸컷

당시 보수적인 영국 사회에서 동성애는 범죄 행위였기 때문에 상류층인 모리스와 하인 알렉은 또 다른 금기였다. 이들은 동성애와 계급 차이라는 이중고를 겪으며 성장해간다. 범죄라는 틀 안에서 고통 받지만 자신도 모른 채 이미 그렇게 되어 있다는 말로 응수한다. 사랑은 이성애든 동성애는 그냥 그렇게 끌리게 되는 것이다. 누구를 사랑하는 일이 처벌받아야 할 대상이 아닌 행복하고 존중받아야 할 인권 중 하나다. 뜯어말린다고, 법으로 처벌한다고, 치료를 받는다고 없어지지 않는다.


<모리스>의 플라토닉 사랑, 동성간의 육체적 합, 신분을 뛰어넘는 용기는 현재까지도 유효한 가치로 인정받는다. 누구에게나 첫사랑은 찾아온다. 그 사랑을 지키기 위해 고난과 역경을 지나 극복한 경험은 훗날 살아가는 큰 힘이 된다. 제임스 아이보리는 제90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으로 각색상을 받을 당시 위와 같은 말을 남겼다. 32년 전 농밀한 소년들의 첫사랑을 보여준 전력은 90세가 넘은 노장에게 트로피로 보답했다. 


평점: ★★★☆

한 줄 평: 휴 그랜트 보러 갔다가 제임스 윌비 입덕하는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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