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앤 크루거는 영화 <심판>으로 제70회 칸영화제 여우주연상, 제75회 골든글로브 외국어 영화상을 받았다. 갑자기 일어난 사고로 가족을 잃고 실의에 빠진 엄마의 슬픔, 분노의 떨림을 잘 묘사했다. 점점 피폐해져가는 다이앤 크루거의 표정이 잊히지 않는다. 갑자기 증발한 가족, 감내해야 할 고통, 외로움, 그리움의 감정과 복수를 향한 불타는 의지를 그대로 전달한다. 하지만 마지막 선택은 약간 의아하다. 아마 영화를 본 사람마다 다르게 받아들일 것이다. 때문에 공감할 수 있수 있을지는 관객의 몫이다.
사랑하는 가족이 한순간에 없어졌다
의문의 폭발사고로 사랑하는 남편과 아들을 잃은 카티아(다이앤 크루거). 사고 후 경찰은 마약 밀매상이었던 남편을 의심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집 수색 중 소량의 마약이 발견되면서 일이 커진다. 남편이 터키인이자 전과자란 이유로 경찰은 이미 시나리오를 짜놓은 상태다. 카티아를 심문해 퍼즐을 맞추려고 할 뿐이다. 갑작스러운 가족과의 이별, 이 모든 일이 믿어지지 않는 카티아는 슬픔을 잊기 위해 약물에 손댔다. 이 일이 훗날 재판에 영향을 미칠 거란 사실은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한 편, 용의자 커플이 잡혔다. 둘은 나치주의자였다. 독일인이 아닌 외국인이라면 이유 없이 죽이는 국제 네트워크의 일원이었다. 나치즘은 아직도 암암리에 존재하고 있었다. 이 커플은 사제폭탄을 제조해 일부러 남편 사무실에 놓고 가던 거다. 이후 누가 봐도 큰 죗값을 치를 재판이 열린다.
이후 영화는 법정 드라마의 형식을 띤다. 마음속에 불이 나는 카티아와 다르게 법정은 엄숙하고 냉정한 사실만을 공론화하는 자리다. 화가 나고 억울한 사람은 카티아뿐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검사는 부부를 변호한다. 게다가 부부는 표정 하나 없이 평정심을 지킨다. 잠시 로봇이 아닐까 의심하기까지 할 정도였다. 인간의 탈을 쓰고 어쩌면 저런 평온함, 무표정을 지을 수 있을까. 세계관이 다른다면 모두가 적인 걸까? 아직도 건재하고 있는 국가주의, 전체주의의 공포를 영화 내내 체험할 수 있다.
과연 나라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
재판은 사실을 확증하는 증거에 의해서만 성립하는 증거재판주의 원칙에 따라 부부의 무죄를 선고한다. 억장이 무너지는 상황을 두 번이나 겪은 카티아는 모든 것을 포기한 듯 보인다. 하지만 발톱을 숨기고 있던 카티아는 기다렸다는 듯이 홀로 행동에 나선다. 과연 카티아의 행동에 죄를 물을 수 있을까.
법이 정의를 심판하지 않을 때 개인의 행동은 타당한지 영화는 겹겹이 쌓아 올린 심정을 토대로 묻고 있다. 고대 바빌로니아 함무라비 법전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말로 받은 만큼 돌려주는 상응 보복법을 원칙으로 했다. 현대 법의 기원이 된 함무라비 법전은 지금 봐서는 야만적으로 보이지만 과잉 보복을 막는 문명화된 법칙이다.
누군가에게 피해를 받은 사람은 분노의 증폭이 커져 훨씬 더 큰 앙갚음으로 맞설 수 있다. 보복운전으로 큰 피해를 입는 일이 그 예라 할 수 있다. 하지만 함무라비 법전의 상응 보복법은 눈을 다쳤다면 눈을 이를 다쳤다면 이만을 보복할 수 있다는 일종의 약속이다. 확실한 증거가 있어야지만 죄를 물을 수 있는 현대 재판은 오히려 교묘히 피해 갈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영화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는 19세기 사냥꾼 휴 글래스가 아들이 처참한 죽음을 직접 목격한 아버지의 복수극이라 할 수 있다. 영화 <심판>의 다이앤 크루거를 보며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떠올랐다. 과연, 나라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 모든 것을 알고 있는 평온한 바다는 유난히 말이 없다.
평점: 법이 지켜주지 못해 거리로 나온 여성
한 줄 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