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선입견이 있다. 특히 영화를 고를 때 나만의 법칙이 있다. 그런 편견으로 놓칠 뻔한 영화를 우연히 만났다. 마치 해변에서 진주를 발견한 기분이다. 뻔한 시간 여행 로맨틱 코미디겠거니 했던 순간, 울다 울다 보니 엔딩크레딧이 올라가고 있었고, 이내 자리를 쉽게 뜨지 못했다.
한 지붕 두 시대, 수상한 동거
<어쩌다 룸메이트> 스틸컷
한 지붕 두 시대. 어떠한 물리적인 변화로 한 집에 1999년과 2018년이 공존한다. 지각과 지각이 맞물려 융기한 듯 보이는 괴상한 집안 풍경에 육명(뇌가음)과 소초(동려아)는 혼란스럽다. 자고 일어났더니 하루아침에 집이 겹쳐진 것. 육명 쪽 현관문을 나서면 1999년이고 소초 쪽 현관문 너머는 2018년이다. 과연 어떻게 된 일일까?
영화는 같은 공간 다른 시간에 사는 남녀의 좌충우돌 해프닝을 유쾌하게 그리고 있다. 20세기 아이템과 추억을 소환하는 것은 물론, 21세기의 눈부신 성장이 교차한다. 요즘 트렌드인 뉴트로와 시공간 초월 로맨스가 절묘하게 결합되어 있다. 20년의 간극을 빠르게 스캔하는 영상을 보고 있노라니 그동안의 발전이 한눈에 보인다. 스마트폰, 인공지능 서비스, AI, 자율주행차, 미세먼지 마스크 등등 중국의 성장속도를 실감할 수 있었다.
<어쩌다 룸메이트> 스틸컷
1999년에 들어간 소초는 아버지와 자신의 가장 행복했던 순간으로 이동한다. 하지만 가까이할 수 없는 모종의 기운은 1999년과 2018년의 규칙이 있음을 깨닫게 된다. 2018년을 경험한 육명은 시종일관 감탄할 수밖에 없다. 핸드폰이 개인 비서가 되고, 음식을 주문하면 요리사가 출장 요리도 해준다. 할리우드 영화 패러디 장면은 VR 체험 장면으로 영리하게 쓰였다. <인터스텔라>의 팽이를 중요한 소품으로 오마주 하기도 한다. 검열을 교묘하게 피해 가며 관객에게 재미와 메시지를 동시에 선사하는 감독 소륜의 패기다.
이 영화는 단순한 타임 슬립 로맨틱 코미디가 아니다. 두 사람은 다른 시대의 나를 만나거나, 물건을 소유할 수 없다. 아무리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기회가 생기더라도 결국 허상일 뿐이다. 아무것도 가질 수 없는 허무함이 물질만능주의에 찌든 현대인을 꼬집고 있는 듯하다. 미래의 나는 지금의 나인가 철학적인 물음을 던지는가 하면, 인간 존재 유무까지 생각해보는 기회가 된다. 현재의 선택으로 미래의 내가 없어질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서로를 향한 선택 앞에 적극적으로 매달린다. 그게 바로 '사랑'이다.
캐릭터의 매력 기대 이상
<어쩌다 룸메이트> 스틸컷
두 캐릭터의 케미도 기대 이상이다. 누가 봐도 아저씨 같은 외모의 육명은 극중 74년생 25살이다. 쳐진 눈에 순진무구한 표정과 행동으로 첫인상을 깨고 볼수록 끌린다. 부동산 거물로 성공하고 싶지만 돈 욕심 없는 어리바리한 청년으로 매력적인 캐릭터다. 소초를 위해 양보하고, 말도 안 되는 부탁도 선뜻 들어주는 착하디착한 순애보 캐릭터를 뇌가음이 열연한다.
반면 소초는 '돈'이면 뭐든 다 통하는 성격이라 눈살을 찌푸리게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럴 수밖에 없는 사연이 있었다. 어릴 적 아버지의 죽음으로 가난하게 살아왔기에 돈 많은 남자를 만나 인생역전이 꿈인 여성이다. 어쩌면 현재 세계경제의 큰 손으로 우뚝 선 중국을 함축적으로 묘사하고 있는 캐릭터라 해도 손색없다.
<어쩌다 룸메이트> 스틸컷
한편, 뇌가음은 올해 처음으로 열린 부산국제영화제 제1회아시아콘텐츠어워드에서 최우수 남우주연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아시아콘텐츠어워드는 필름 마켓이 방송 부분까지 포괄하면서 생긴 행사다. 한국에는 많이 알려진 배우가 아니지만 인기 소설 《장안 24시》를 각색한 대하드라마 [장안십이시진]의 장소경을 맡아 호연했다.
동려아는 드라마 [모의천하]로 데뷔한 이후 사극과 현대극을 넘나들며 국내에도 다수의 팬을 보유하고 있는 배우다. 감독 소륜은 신인감독답지 않게 노련한 각본과 연출로 데뷔작 <어쩌다 룸메이트>로 세계 유수 영화제 수상의 영광을 안았다. 손발이 오그라들어 없어질지 모를 쿠키영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