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 살기 힘든 팍팍한 경제문제 우리 모두가 알아야하는 이유
영화 <블랙머니>는 실화를 바탕으로 각색되었다. 2003년부터 2011년까지 대한민국을 뒤흔든 ‘론스타 외환은행 헐값 매각 사건’을 조명한 했다. 이미 2008년 한차례 매각이 진행되다 연기되었고, 영화의 시작은 징벌 매각이냐 단순 매각이냐를 놓고 심의하기 73일 전부터 시작한다.
영화 내내 경제 용어가 난무하는 가운데 먹고살기도 힘든데 경제 이슈까지 알아야 하나 싶었다. 하지만 영화는 정지영 감독의 전작 <남영동 1985>, <부러진 화살>처럼 다큐나 르포르타주 형식으로 흘러가지 않는다. 적당한 재미와 의미, 정의를 구현하기 위해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 때문에 분노와 전율, 그리고 묵직한 한 방으로 정지영 감독의 고발성 메시지에 힘을 싣는다.
잊혀진 실화를 재조명하기까지... 7년의 시간
영화가 우리 앞에 선보이기까지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다. 영화 제작은 2011년부터 시작되었지만 그 과정이 순탄치 않았다. 감사원의 보고서, 대법원의 판결 자료, 노동조합의 투쟁 백서 등 다양하고 방대한 자료들을 분석했다고 한다. 학계와 업계의 주요 인사들을 만나 인터뷰와 팩트체크를 병행하는 과정까지 더했다. 2016년 시나리오 초고를 600여 명의 사람들이 모니터 하고, 국내 탐사보도 기자들의 전문적인 도움까지 받았다고 한다. 수정과 수정의 반복으로 탄생한 영화가 바로 <블랙머니>다.
스스로 누명을 벗기위한 수사
영화의 시작. 두 남녀가 검찰의 전화를 받고 급히 출발을 서두른다. 하지만 갑작스런 교통사고로 남자가 사망하고 여자는 가까스로 목숨을 구하지만 이내 세상을 떠난다. 게다가 조사 중 검사에게 성추행을 당했다는 통에 모든 화살이 검사 양민혁(조진웅)에게 쏟아진다. 이를 계기로 양민혁 검사는 스스로 누명을 벗기 위해 이 사건에 뛰어든다.
의문의 팩스 5장으로 자산 가치 70조 은행이 1조 7천억 원에 넘어가게 된 일에 금융감독원, 대형로펌, 해외펀드 회사가 얽혀 있음을 알게 되는 양민혁 검사. 금융가의 검은돈들은 소리 소문 없이 일사천리로 은행 매각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일명 먹튀다. 헐값에 은행을 매각한 뒤 이윤을 챙겨 도망가는 일에 *모피아(MOFIA)가 결탁되어 있음을 알게 된다. 거대한 금융 비리 실체 앞에 선 양민혁 검사는 김나리 변호사(이하늬)를 만나 공조하게 된다.
*모피아(MOFIA : 재경부 인사들이 퇴임 후에 정계나 금융권 등으로 진출해 막강한 세력을 구축하는 것을 마피아에 빗댄 표현)
차가운 이성과 뜨거운 감성의 공조
막 나가는 검사 양민혁의 조진웅, 금융전문가 김나리 변호사의 이하늬. 둘은 서로 다른 선상에 서 있지만 이익을 위해 공조한다. 양민혁 검사는 현실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캐릭터다. 사건 앞에서는 위아래도 없고, 수사라면 앞뒤 가리지 않고 일단 덤비는 성격이다. 아무렴 ‘막프로’라는 별명이 그냥 생겼을까 싶다. 돈과 권력이 곧 삶의 근간이 되는 자본주의에서 정의감에 불타올라 사건을 파헤치는 이 캐릭터는 짜릿한 쾌감을 준다. 양민혁 검사를 통해 관객은 함께 웃고, 울고, 공분할 수 있다.
영화의 화자를 경제를 잘 모르는 관객의 시점과 일치하는 양민혁 검사로 잡았다는 점도 주목할만하다. 요점만 쏙쏙, 어려운 부분은 반복해서 말해주기 때문에 우리는 그가 이끄는 대로 따라가기만 하면 쉽게 영화를 볼 수 있다.
김나리는 ‘서류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라고 믿는 철저한 이성과 결과주의자다. 냉철한 판단력으로 엘리트 코스를 밟아 온 사람이다. 한때 검사를 꿈꿨으나 힘없는 나라의 현실을 직시하고 변호사로 방향을 틀었다. 크게는 스스로 힘을 키워 해보고 싶은 포부를 품은 자다.
양민혁 검사와 대치점에 있다기보다 회색 지대에 있다고 하는 것이 더 어울릴 것 같다. 자본주의의 경제체제에 가장 적합한 인물로 어쩌면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모습 중 하나라 봐도 무방하다. 양민혁을 통해 영화적 판타지를 꿈꾼다면 김나리를 통해 현실적인 리얼리즘을 더한다.
과연 이 시대의 정의는 무엇인지 묻고 싶다. 정의는 어쩌면 상대적인 것일까. 자신이 힘을 가지고 있다면 어느 편에 서든 정의일 수 있다. 개인의 신념이 무엇이냐에 따라 정의는 뒤바뀔 수 있다는 말이다. 때문에 나리의 아버지가 읽던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가 의미심장하게 다가오는 이유다. 현실과 이상의 상충은 끝나지 않는 아이러니일 수 있으니까.
평점: ★★★
한 줄 평: 모르면 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