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야말로 초호화 캐스팅이다. 다니엘 크레이그, 크리스 에반스, 제이미 리 커티스, 마이클 섀넌, 아나 디 아르미스, 토니 콜레트, 돈 존스, 크리스토퍼 플러머 등 이름만 들어도 설레는 주연급 배우들이 총출동했다. 베테랑 배우들이 만들어가는 연기 앙상블이 130분이라는 러닝타임을 지루하지 않게 만든다.
뉴트로 콘셉트의 추리영화
아가사 크리스티와 아서 코난 도일의 추리 스타일을 따르면서 현대적으로 각색했다. 옛날 요즘이란 뉴트로 콘셉트의 추리영화다. 다소 엉뚱해 보이는 탐정 블랑(다니엘 크레이그)을 전면에 내세워 인류 보편의 가치를 되짚어준다. 촘촘한 서사와 인물 관계, 미장센과 사회적 함의까지 완벽하게 들어맞는다. 감독 라이언 존슨의 날선 풍자는 트롬비 가(家)를 작은 미국이라 할만한 이유가 된다. 현 미국 대통령 트럼프가 생각나는 건 괜한 기우가 아니다. 사람은 누구나 이중성이 있다.
어느 날 베스트셀러 미스터리 작가 '할란(크리스토퍼 플러머)'이 85세 생일날 숨진 채 발견된다. 그의 죽음을 밝히기 위해 온 집안 식구들이 소환된다. 할란의 말동무이자 간병인인 마르타(아나 디 아르마스)'도 불려왔다. 플러머 가족은 마르타를 가족의 일원으로 때에 따라 설정한다. 자기들이 유리할 때는 가족으로 불리할 때는 남으로 말이다. 때문에 경찰의 부름에 당연히 마르타도 와야 한다. 할란의 죽음으로 얻을 것이 없는 사람이지만 그날 생일파티에 있던 사람은 모두가 용의자다.
말이 칼이 될 때, 인간의 이중성
제목 '나이브스 아웃(Knives Out)'은 이중적인 의미다. 직역하면 불쑥 칼을 내밀다 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 말이 칼이 될 때 말로써 타인을 죽일 수도 있음 의역해 볼 수 있다. 칼끝은 누구에게 겨눌 수 있다. 트롬비 가(家)는 가족끼리 날선 칼날을 겨누며 점점 분열된다. 바로 거대한 유산 때문이다.
이 가족 구성원은 대부분 타고난 권리와 집을 대대손손 누릴 궁리만 하지 스스로 자립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 성공한 작가 '할란'의 목에 빨대를 꽂고 너도나도 무전취식 중이다. 이 집안사람들은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지만 도덕적, 경제적으로 부족해 보이는 사람들이다. 이에 할란은 네 사람에게 경고를 하기 이른다. 첫째 바람난 사위 리처드(돈 존슨) 둘째, 파산한 며느리 조니(토니 콜레트), 막내 무능력한 윌트(마이클 섀넌) 그리고 자신과 가장 닮은 손자 랜섬(크리스 에반스)까지. 범인은 네 사람으로 좁혀진다.
이에 우스꽝스러운 억양과 행동, 이름을 가진 탐정이 나타나 사건을 해결하고자 한다. 자신이 셜록이라면 응당 왓슨도 있어야 할 터. 집안에서 의심받기 가장 어려운 마르타를 대동하고 퍼즐을 맞추기 시작한다. 하필 마르타인 이유는 이 가족이 아니지만 대부호와 가장 친하며, 거짓말을 하지 못하는 신체적 결함을 가지고 있어 믿을 수 있으니까.
이때부터 마르타와 블랑의 탐정 놀이를 관객은 따라가게 된다. 희한하게도 <나이브스 아웃>은 범인을 찾는 '후더닛(Who has done it)' 장르를 따르면서도 초반부 범인을 쉬게 알려주며 시작한다. 따라서 이야기를 어떻게 이끌어 나갈지가 기대되는 흥분을 감출 수가 없다.
감독의 역량이 빛나는 시점이다. <블룸 형제 사기단>, <루퍼>, <스타워즈: 라스트 제다이>를 통해 진가를 발휘한 바 있다. 때문에 현대적인 감각을 넣어 어떻게 짜 맞추는지가 관건이다. 원작 소설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촘촘한 서사가 <오리엔트 특급 살인>, <비뚤어진 집>의 아가사 크리스티의 재해석, 오마주라고 해도 좋다. 선한 의지는 언제나 옳다. 존중받아야 마땅한 가치라는 관점은 영화의 핵심 주제다.
즉 추리물의 틀을 깨고 속을 들여다보면 감독이 의도한 메시지에 접근하는 은밀한 영화다. 고딕 양식의 대저택에서 일어난 살인사건, 각기 다른 성격의 가족들, 가족 같던 사람들이 한순간 돌변할 때 벌어지는 촌극, 트럼프 시대를 살아가는 미국 이민자의 비애도 담아낸다.
평점: ★★★★☆
한 줄 평: 한 껏 무게감을 부릴 때 툭툭 터지는 B급 유머가 이 세상 텐션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