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레에다 히로카즈'감독 프랑스로 넘어가도 변하지 않는 따뜻한 가족 이야기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프랑스에서 찍은 첫 번째 영화다. 까뜨린느 드뇌브, 줄리엣 비노쉬, 에단 호크와 협업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고레에다 스타일을 유지한 유럽풍 가족영화다. 언어가 다르더라도 여전한 따스함을 유지하고 있다. 가족 이야기를 중심에 두면서도 딸과 엄마, 배우와 배우, 인간과 인간 사이를 현미경처럼 포착했다. 감독이 남성이자 연출자임을 고려할 때 배우들과 많은 이야기를 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언제나 반가운 고레에다 표 가족 이야기
파비안느( 까뜨린느 드뇌브)는 최근 회고록을 냈다. 축하하기 위해 딸 뤼미르(줄리엣 비노쉬)와 사위 행크(에단 호크), 손녀 샤를로트(클레망틴 그르니에)가 오랜만에 집으로 왔다. 뉴욕에서 시나리오 작가로 살고 있는 딸은 오자마자 회고록을 읽더니 불같이 화를 낸다. 엄마 인생에는 진실이 없냐, 회고록까지 연기를 해야 했냐고 핀잔을 준다. 이에 파비안느는 "나는 배우라서 진실을 다 말할 필요가 없어. 진실은 재미가 없거든"이라 말한다. 회고록에 어떤 이야기와 인물을 빼고 넣을지는 내가 결정한다며 오히려 떳떳하다.
파비안느는 까칠하고 자기 과시를 좋아하는 성격이다. 자기 위에 아무도 없다. 혹시 있다 한들 누구든 끌어내리기 바쁘고, 지기 싫어한다. 좋은 배우란 연기할 때뿐이라며 현실도 연기의 일부라 말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TV B급 배우인 사위가 영 마음에 안 든다. 나쁜 엄마, 나쁜 친구일지 몰라도 좋은 배우면 되는 사람. 세상의 인정이 더 중요한 뼛속까지 배우다.
타고나기도 했지만 노력한 독종 중의 독종이다. 갖고 싶은 것은 기필코 가져야 하며 욕심도 많다. 라이벌이자 친구였던 '사라'를 이기기 위해 소싯적 엄청난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직업적으로 성공했지만 주변에 사람이 떠나가는 독설가다. 마침 뤼미르 내외가 오던 날도 직원 하나가 그만두던 차였다.
배우란 캐릭터와 캐릭터를 오가며 매 순간 변신을 거듭하는 다중 정체성을 가져야 한다. 이에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할머니이자 어머니, 배우이면서도 딸인 파미안느의 다층적인 모습을 그릴 것"이라 말한 바 있다. 어떨 때는 캐릭터가 나 자신이라 믿으며 메서드 연기를 해야 한다. 파비안느는 무대 위, 스크린에서 자유자재로 모드 전환이 가능한 사람이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쉽지 않다. 아직도 잘나가는 스타라는 발목이 모든 것을 망칠 위기를 부른다.
이런 파비안느를 대적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딸 뤼미르다. 뤼미르는 엄마의 직언에 상처받지 않고,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하는 솔직한 성격이다. 엄마와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한때 배우를 꿈꿨으나 지금은 시나리오 작가가 되었다. 어릴 적부터 엄마의 관심을 받지 못해 관계가 뒤틀렸으며 뭐든 혼자 감당하려는 독립적인 성격으로 자랐다. 사실상 아무렇지 않아 보여도 상처받은 전력이 있다. 다만, 엄마만 모르는 듯하다.
살아움직이는 캐릭터의 향연
프랑스의 국보급 배우 까뜨린느 드뇌브와 줄리엣 비노쉬는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으며 연기라는 아름다움을 발산한다. 까뜨린느 드뇌브의 연기 경력은 파비안느 그 자체로 칭송받기 충분하다. 사생활까지 파비안느와 비슷하리라고는 장담할 수 없지만 파비안느는 까뜨린느 드뇌브 자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배우가 캐릭터 자체가 되었다. 다만 영화 안에서 영화를 찍는 장면이 많기 때문에 더욱더 배우로서 연기를 하는지, 어머니와 할머니, 아내로서 자연스러운 생활인지 쉽게 분간 가지 않는다. 이 톤은 영화 내내 유지된다.
이에 질세라 줄리엣 비노쉬도 까뜨린느 드뇌브의 뒤를 바짝 추격한다. 영화 촬영장에서 떠오르는 배우의 아우라에 겁먹은 엄마를 다독일 뿐만 아니라, 엄마의 잠재된 역량까지 끄집어내는 조력자로 손색없다. 이 둘의 팽팽한 기싸움은 부딪히고 깨지며 부녀 이상의 어울림을 선사한다. 여기에 남편 행크와 딸 샤를로트까지 환상의 앙상블을 보인다. 특히 샤를로트의 사랑스러운 감초 연기가 극의 활달한 분위기를 더한다. 고레에다 표 유머와 재치는 프랑스에 가서도 잃지 않았다.
한편, 라이벌이었던 배우 사라를 떠올리게 하는 제2의 사라, 마농(마농 끌라벨)에게도 질투를 느낀다. 마치 사라가 살아 돌아온 것 만 같아 신경 쓰인다. 게다가 한 영화에서 딸과 엄마로 만나게 되었다. 마농은 시간 여행을 하는 엄마이고 파비안느는 73세의 딸이다.
파비안느는 이런 캐스팅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마음은 아직 그대로지만 몸은 늙어버렸다. 더더욱 세월을 거스를 수 없음을 인정하고 싶지 않다. 떠오르는 별가 있다면 지는 별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애써 내색하지 않는다. 인정하는 순간 지금껏 쌓아올렸던 연기 경력이 한순간 무너질 것 같아 두렵다.
그러나 질투는 시간이 지날수록 파비안느를 성장하게 한다. 누가 노년은 삶의 완성이라 했나? 인간은 죽을 때까지 배우고 성찰하는 동물이다. 파비안느는 애써 쥐고 있던 권력을 놓는다. 가족의 바통을 딸 뤼미르에게, 직업적 바통을 마농에게 넘겨주었다. 사랑으로 오해를 풀고, 세대교체를 인정하기까지 먼 길을 돌고 돌았다. 마농과의 연기 호흡을 맞추면 파비안느는 진실에 한걸음 다가갈 수 있었다.
완고했던 배우의 삶도 거대한 무대 위에서 내려올 때에야 완성되는 것임을 인정하게 된다. 이제 연기를 내려놓고 진실한 삶 속으로 들어갈 것이다. 삶도 연기도 일상의 소소한 부분이 쌓여 이룬다는 것을 가족으로부터 깨달았으니까 말이다. 무대 위를 넘어 가족들과 함께 할 때 배우의 아름다움은 진실로 빛날 것임을.
평점: ★★★★☆
한 줄 평: 동시대 거장 고레에다 히로카즈 가족이야기 -유럽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