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혜령 Dec 09. 2019

<디에고> 천재에서 신, 그리고 악마가 된 사나이

디에고, DIEGO MARADONA, 2019, 아시프 카파디아


축구를 잘 모르거나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디에고 마라도나’를 알 것이다. 축구의 신, 악동, 악마 등등 그를 표현하는 단어는 극과 극이다. 영화 <디에고>는 빈민가 출신에서 최고의 축구 스타 자리에 올랐지만 이를 감당하지 못했던 ‘마라도나 디에고’의 다큐멘터리다. <세나: F1의 신화>, <에이미>를 만든 인물 다큐 장인 ‘아시프 카파디아’ 감독의 트릴로지다. 마지막 인물로 디에고 마라도나를 꼽았다. 영화는 우리가 알고 있는 또는 알지 못한 마라도나를 되짚어보는 시간은 물론, 미공개 500시간의 고찰이다.



삽입된 경기 장면은 영화관을 한순간에 축구 경기장으로 만들기 충분했다.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격렬한 분위기와 긴장된 순간은 <디에고>를 관람하는 또 다른 포인트다.


축구의 신이자 나약한 인간 마라도나

영화 <디에고> 스틸컷


15살에 가장이 되면서 축구 꿈나무로 주목받았다. 그때부터 자기 인생은 없었다. 일곱 식구를 먹여 살리고 다시는 빈민가로 가지 않기 위한 소년의 큰 짐은 그때부터다. 24살 어린 나이에 세계적인 스타가 되어 한 나라와 수많은 축구팬의 기대를 받은 마라도나. 그런 명성을 얻은 것은 축복이면서도 험난한 길을 혼자 걷는 불행이었다.



마라도나의 삶은 대단한 동시에 끔찍했다. 어른이 되길 거부한 미성숙한 내면을 감추고 스타로서 우뚝 선 모습을 보여주어야 했다. 그 환호에 도취되었다. 늘 가치를 인정받고 존경해주길 원했다. 가족, 선수, 애인 등 다양한 정체성을 꺼내 때에 맞는 페르소나를 만들었다. 우리가 아는 ‘마라도나 디에고’는 미디어와 산업에 부흥하고자 스스로 만들어 낸 인물이다.



감각적인 연출이 돋보이는 웰메이드 다큐

영화 <디에고> 스틸컷


영화는 단순한 성장기가 아니다. 마라도나 인생 중에서도 이탈리아 클럽 팀 ‘나폴리’로 이적한 뒤 두 번의 승리를 하고도 나락으로 떨어지는 과정을 중심에 두었다. 영화보다 더 영화 같았던 인생기를 빠른 편집과 경쾌한 음악을 담아 감각적으로 편집했다. 옛 자료 화면으로만 구성된 영화지만 마라도나의 인터뷰를 넣고 리듬감 있는 구성을 가미해 지루할 틈 없는 웰메이드 다큐멘터리다.


영화의 시작은 마라도나가 나폴리로 이적할 당시부터다. 그 일화는 마라도나 인생의 축소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반항아, 영웅, 신에서 악마가 되기까지 극명한 명암을 고스란히 보여주기 때문이다.


천재적인 재능으로 수많은 승리와 이적 기록을 갈아치우고, 이탈리아 리그 최하위 팀이었던 나폴리로 이적한 처사는 이례적이었다. 신체조건도 좋지 않았지만 천재적인 두뇌로 거칠고 빠른 이탈리아 축구 흐름에 적응했다. 이에 마라도나는 “축구는 속임수다. 이쪽으로 가려 했다가 저쪽으로 가야 한다.”라는 말로 리그 강등 직전의 팀을 구한다.


하지만 추앙하던 나폴리 시민들은 월드컵에서 이탈리아를 꺾고 아르헨티나가 결승 진출을 이루자 매정하게 등 돌린다. 그 일화는 집단의 무서움을 보여준다. 스타덤은 한 인간을 꼭대기에 올려놨다가 뒤도 안 돌아보고 떠미는 악마와의 거래다. 마라도나는 마피아 연루, 코카인 중독, 여동생의 친구 크리스티아나 사이의 혼외 자식까지. 최고와 최악을 모두 경험한 하게 된다.


영화 <디에고> 스틸컷


영화는 그의 삶을 통해 짓눌린 영혼을 동정한다. 남미 남성들은 가부장적인 마초 기질을 유지하기 위해 내면의 소리는 애써 무시하는 경향을 보인다. 마라도나에게 약한 모습은 사치였다. 누구보다도 강하고 멋진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했다. 어린 나이부터 시작된 기대와 관심은 감당할 수 없을 무게로 다가왔고 현실을 잊기 위한 도피처에 빠지기도 했다.


우리가 <디에고>를 통해 느낄 수 있는 점은 성공을 통한 양면성과 삶의 가치다. 성공의 기준을 어디에 잡느냐에 따라 행복과 불행의 마지노선이 바뀔 수 있음을 이야기한다. 경기장에 들어올 땐 8만 관객의  환영이 있었지만 떠날 때는 조용하고 쓸쓸히 퇴장한 마라도나 디에고, 그 자리엔 신화만 남아있다.





평점: ★★★☆

한 줄 평: 극장의 관객은 경기장의 관중이 된다




매거진의 이전글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 빛나는 장인의 손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