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아내를 죽였다>는 다음에서 연재한 희나리 작가의 동명 웹툰을 원작으로 한다. 이시언 배우의 첫 주연작으로 아내 역에 왕지혜와 사건을 맡은 경찰 역에 안내상과 호흡을 맞췄다.
여기 스스로 알리바이를 찾아야 하는 남자가 있다. 자고 일어났더니 아내 미영(왕지혜)은 죽었고 남편 정호(이시언)가 유력한 용의자로 몰린 상태. 아침부터 찾아온 경찰(안내상)은 알리바이를 묻는다.
정호는 최근 술만 먹으면 필름이 끊긴다. 블랙아웃 때문에 곤란한 일을 자주 겪었다. 어젯밤에 대체 내가 무슨 일을 한 거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옷에는 피가 범벅되어 있고, 지갑에는 돈이 두둑하다. 정호는 반드시 어젯밤의 기억해내야만 한다.
현재 정호의 처지는 최악이다. 아내와는 별거 중이고, 도박 때문에 사채까지 끌어다 쓴 상태다. 신용등급 때문에 취직은 어렵고 자포자기 심정으로 도박에 모든 것을 올인 한다. ‘아.. 잭팟만 터지면 되는데..’그렇게만 된다면 아내와 행복한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생각이 커진다.
꼬여버린 한 남자의 하루를 보다 보면 현진건의 소설 ‘운수 좋은 날’이 생각난다. 인력거꾼 김첨지의 하루를 통해 역설적인 제목과 삶을 빗댄 소설이다. 아픈 아내와 배고픈 아이를 두고 일하러 나간 김첨지는 오늘따라 유난히 운수가 좋았지만 가장 불운한 날이 된 반어적인 제목이다.
영화<아내를 죽였다>에서 정호는 사건 발생 전 연거푸 잘 풀리는 일 때문에 “운수 좋은 날이네”라고 읊조리지만 사실 아내가 살해되는 비극을 맛본다.
영화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일어나는 ‘블랙아웃’을 소재 삼았다. 블랙아웃은 술을 마시고 기억이 전혀 나지 않는 백지상태를 말한다. 즉 ‘필름이 끊겼다’라는 말로 통용되고 있는데 에탄올 독소가 새로운 기억을 입력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문제라 할 수 있다. 블랙아웃은 뇌 손상을 유발하는데 반복되면 영구적인 뇌 손상 알콜성 치매를 부른다.
영화 속 정호는 자주 필름이 끊어졌고 이 때문에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맞는다. 분명 아내를 죽인 직접적인 용의자는 아니지만 정호의 행동이 간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고의는 아니었지만 아내의 지속적인 회유와 경고에도 말을 듣지 않았기 때문에 아내를 죽인 것이다. 자존심에서 벌어진 허세와 눈덩이처럼 불어난 거짓이 나비효과가 되었다. 사람은 고쳐 쓰는 것이 아니다. 도박 중독은 개인의 문제를 넘어 한 가족, 나아가 한 나라를 도탄에 빠지는 것 심각한 병이다.
영화 <아내를 죽였다>는 블랙아웃이란 신선한 소재와 운수 좋은 날의 현대적 재해석을 살리지 못해 아쉽다. 블랙아웃의 현실성이 비현실적 상황과 만나 주연 혼자 고군분투한다. 그마저도 혼자 끌고 가기에는 역부족이라 주변 캐릭터가 받쳐주면 좋을 텐데 한참 버거워 보인다. 이시언, 안내상, 왕지혜 등 주조연 배우가 서로 겉돌면서 스릴러의 매력이 반감된다.
평점: ☆
한 줄 평: 안 본 눈 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