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리 죽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언제까지 살 수 있는지 알 수 있다면 과연 행복할까. 영화 <카운트다운>은 수명 호기심을 이용한 신종 공포영화다. 여기서 ‘신종’이 붙는 이유는 죽는 시간을 알려주는 앱이 깔리면 꼼짝없이 앱의 노예가 되기 때문이다. 과연 악마의 장난일까, 해커의 조종일까? 죽음을 알려주는 앱 때문에 사람들이 죽어나간다.
당신의 생존 시간은 단 3일
<카운트다운>의 공포 요소는 마치 삭제해도 계속 깔려 있는 악성코드처럼 한번 걸리면 절대 빠져나갈 수 없다는 것이다. 지울 수도 없고, 핸드폰을 새로 사도 소용없다. 영화 <데스티네이션>처럼 운명을 거부하면 목숨을 노리는 집요함,<착신아리>처럼 희생자 휴대폰에 저장된 사람에게 바이러스처럼 퍼지는 변주된 공포가 찾아온다.
간절히 바라던 간호사 인턴에서 정규직으로 승격된 날. 퀸(엘리자베스 라일)은 재미 삼아 생존 시간을 알려준다는 ‘카운트다운’ 앱을 받는다. 하지만 앞으로 단 3일 밖에 남지 않았다는 찝찝한 메시지를 받고 심기가 불편하다. 계속되는 환영과 죽음의 위협 속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만 있는 시간에도 죽음의 시간을 흐르고 있다.
기분 나쁜 앱이 자꾸만 신경을 건드리는 동시에 주변도 도와주지 않는다. 직장 상사는 성추행을 일삼지 않나, 하나뿐인 동생은 막 사춘기에 접어들어 퀸의 성미를 긁는다. 남은 수명이 2배로 쾌속 질주하는 느낌이다. 이러다가는 남은 시간 안에 먼저 돌아가시겠다.
참을 수 없는 퀸은 앱에 대해 검색한다. 그 결과 끔찍한 사실과 마주한다. 앱을 다운로드한 사람들은 알 수 없는 죽음을 맞이했던 것. 과연 퀸은 카운트다운의 저주에서 풀려날 수 있을까?
현대인의 필수품 휴대폰이 공포가 될 때
현대인과 한 몸 같은 휴대폰이 없는 삶은 상상할 수 없다. 더 빠르고 손쉽게 편리함에 길들여졌다. 손가락 하나만 까딱해도 뭐든지 가질 수 있는 세상에서 정작 죽음은 막을 수도 지연시킬 수도 없다. 영화는 무심결에 받은 앱이 빠져나갈 수 없는 덫이 되는 과정을 담았다.
뭐든 빠르고 쉽게 구할 수 있는 현대 사회엔 반드시 대가가 따른다고 말한다. 무언가를 동의할 때 이용약관을 꼼꼼히 읽어보지 않는다면 어떤 결과를 초래하게 되는지도 낱낱이 보여 준다. 보험, 휴대폰 등 귀찮아서 간과한 일들이 후폭풍처럼 밀려온다.
때문에 스마트폰은 가지고 있는 자체가 공포가 된다. 현실에서 일어날 수 있는 생활 공포는 디지털 기기의 편리함과 부작용을 들춘다. 퀸은 생존 시간이 임박해 온다. 다급한 마음에 상황 자체를 피하게 되는데 그때마다 ‘이용약관 위반’이란 경고음이 울린다. 정해진 운명을 바꾸려고 하면 할수록 더 큰 화를 면치 못한다.
섣부른 호기심이 부른 참사
<카운트다운>은 소름 끼치고, 엉뚱하며, 황당한 상황의 고군분투를 통해 살고 싶은 인간 욕망을 건드린다. 자연의 순리를 거슬러서라도 살기 위한 그릇된 인간을 향한 날선 조소 같기도 하다.
죽음의 공포는 죄책감이란 두려움을 먹고 산다. 죽어가던 동생의 장난감을 훔쳤다는 죄책감, 나 때문에 엄마가 죽었다는 죄책감은 악마가 가장 좋아하는 먹잇감이다. 판도라가 열지 말라는 상자를 열었던 것처럼 다운로드하지 말라는 앱을 기어코 받고야 마는 인간의 호기심이 부른 참사다.
하지만 인간은 고난을 극복해 왔다. 예정된 죽음을 통해 삶에 더 집중하게 만든다. 정해진 시간의 소중함, 일 분 일초를 가치 있게 살아갈 이유를 찾는다. 죽음의 위기가 오히려 삶을 단단하게 만드는 접착제가 되는 거다.
영화 <카운트다운>은 초반부 긴장감 넘치는 스릴을 끝까지 이어가지 못한 채 뒷심이 부족하다. 공포의 실체가 밝혀지는 부분이 약간 아쉽다. 하지만 일상을 지배한 스마트폰을 소재로 가볍게 보기 좋은 팝콘무비를 원한다면 손색없다. 특히, 핸드폰 가게 아저씨나 악마덕후 신부처럼 B급 정서 가득한 캐릭터가 흥미롭다. 그 둘은 영화의 신스틸러로 톡톡한 역할을 하고 있다.
참, 쿠키영상 있다.
평점: ★★★
한 줄 평: 아무 앱이나 다운 받지 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