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센트 반 고흐를 한 마디로 규정할 수 있을까. 사후 100년이 더 지났지만 여전히 영감의 대상이 되는 화가다. 최근 유화 애니메이션으로 큰 반향을 이끈 영화 <러빙 빈센트>와는 다르게 고흐의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는 영화를 만났다.
<고흐, 영원의 문에서>는 <잠수종과 나비>로 제60회 칸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한 줄리언 슈나벨 감독의 신작이다. 그는 화가이자 영화감독으로 광기를 발휘하는 선명하고 역동적인 색채를 통해 화가 고흐를 재해석했다.
영화 <고흐, 영원의 문에서>는 미술품 거래 상점에서 일하다 목사가 되기 위해 신학을 공부한 후 드디어 전업 화가가 되기로 결심한 후 이야기다. 아를에서고갱을 만나 공동체 생활을 하고자 했을 때부터 시작해 정신병원과 요양원을 전전하다 오베르 쉬르 우아즈로 오기까지 말년을 담았다.
고흐는 그림에 대한 열정과 영감을 점점 불타오르는데 따라주지 않는 건강은 점차 악화되고 있었다. 이 묘사가 뛰어나 영화를 보는 입장은 오롯이 고흐의 시점이 된다. 굉장히 안타까운 것은 1인칭 시점의 화면이 많은데, 점점 희미해져가는 고흐의 시각과 흔들리는 기억을 그대로 투영되기 때문이다. 화면은 핸드헬드, 왜곡되고 뒤틀리고 한쪽이 뿌연 형태로 그려진다. 영화를 통해 인간 고흐의 심정, 심상, 생각을 직접 체험할 수 있다.
욕망은 결핍과 갈망에서 생겨난다. 고흐는 뒤늦게 화가의 꿈을 꾸며 열심히 했지만 알아주는 사람이 없었다. 가난이란 그림자는 언제나 발목을 잡고 있었다. 부푼 꿈을 안고 파리에 왔지만 도시의 생활에 염증을 느낀 고흐는 색과 빛을 찾아 프랑스 남부 아를로 떠난다. 이때 한창 뜨고 있던 고갱과 알게 되었는데 고갱과 교감을 원했던 고흐는 함께 그림을 그리자고 제안했다.
고흐 동생 테오의 후원을 받아 고갱도 아를에 온다. 고흐는 아를의 노란 집을 아틀리에로 꾸며 화가 공동체로 삼으려고 했다. 둘은 예술적 견해가 달랐지만 짧은 시간 동안 깊은 우정을 나눈다. 고흐는 보이는 대로 빨리 그리고 싶어 했고 고갱은 스케치한 후 상상력과 기억을 가미해 그림을 그렸다. 고흐의 신경질적이고 예민한 성격을 이해한 몇 안 되는 사람이 바로 고갱이었지만 상반된 스타일은 심한 다툼으로 이어진다. 결국 계속해서 고흐의 발목을 잡는 신경쇠약과 환각은 더욱 심해져 금기야 귀를 잘라 고갱에게 보내려고 했다.
영화는 고흐가 프랑스 아를에서부터 오베르 쉬르 우라즈 까지 마지막 나날을 기록했다. 노란색, 레몬색, 프러시안블루, 에메랄드그린 등 당시 거의 사용이 금지되다시피한 색깔을 사용해 자신만의 화풍을 완성하는 고흐를 만날 수 있다. 화면의 색은 눈이 아릴 정도로 선명하고 아름답다. 하지만 점차 쇠락해지는 건강과 친구와의 다툼, 가난 등으로 피폐해진 몸과 마음은 왜곡된 색과 형태로 나타난다. 참으로 고립되고 외로운 삶이다. 그때마다 고흐는 더 자연과 신, 그림에 매달리게 된다.
가만히 있는 정물화나 인물화보다 살아 움직이는 자연을 그리고 싶었던 고흐. 그대로 모방하기보다 자신만의 스타일로 강렬하게 그리기를 마다하지 않았던 기질이 돋보인다. 때문에 늘 이상하다, 추하다, 무섭다는 말을 들어야 했고 미술계 평가도 뒤늦게 이어졌다. 그런 탓인지 살아생전 딱 한 점의 그림이 팔렸다 바로 ‘붉은 포도밭’이다.
고흐는 서른일곱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권총에 맞아 앓다 죽었지만 자살인지 타살인지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짧은 시간 동안, 특히 아를에 온 후 3년여 시간 동안 우리에게 알려진 명작들을 남기며 몰두했다. 내면의 고독과 광기 열정을 모두 쏟아부었다.
과연 고흐가 말년을 꽉 채워 살았다면 지금처럼 유명해졌을까? 삶은 참 아이러니하다. 테오와 주고받은 편지에는 “형은 곧 유명해질 거야, 불행은 곧 끝 날 거야”라고 격려하는 테오의 말이 많다. 말마따나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했지만 불운은 비껴가지 않고 고흐를 저격한다.
이런 청년 고흐를 맡은 배우 윌렘 대포는 55년 생으로 올해 65세지만 고흐를 연기하는데 전혀 이질감이 없다. 고흐가 살아 돌아온 듯 혼신의 연기를 펼친 윌렘 대포는 제75회 베니스 국제영화제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그 밖에도 폴 고갱 역에 오스카 아이삭, 고흐의 종교적 견해를 함께 나누는 신부 역은 매즈 미켈슨, 가셰 박사 역에는 마티유 아말릭이 맡아 연기한다. 최근까지도 영화, 드라마, 뮤지컬, 연극 등 다양한 포맷으로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빈센트 반 고흐'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확대경으로 충분하다.
평점: ★★★★
한 줄 평: 고흐의 내면 때문에 한동안 나까지 우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