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집착, 커져버린 거짓말, 걷잡을 수 없는 광기
<디어스킨>은 발칙한 영화다. 어디서도 본 적 없는 괴상하지만 신선한 영화가 나타났다! 제72회 칸 영화제 감독주간에서 프리미어 상영을 시작으로 제24회 부산국제영화제 상영되며 주목받았다.
44세 조르주(장 뒤자르댕)는 전 재산을 털어 마음에 쏙 드는 이태리제 100% 사슴가죽 자켓을 구입한다. 덤으로 거의 쓰지 않았다는 캠코더도 얻는다. 1+1 고객만족인가? 조르주는 죽여주는(?) 자켓을 보자마자 마음을 빼앗겼다. 부드러운 촉감 흔들리는 수술, 마치 “날 가져요”라고 유혹하는 듯하다.
조르주는 자켓을 입자마자 자신감이 충만해진다. ‘어디 내 멋짐을 뽐내러 갈 곳 없나’하고 찾던 중 숙소 근처 술집에서 한 잔 걸친다. 세상에서 가장 멋진 자켓을 자랑하고 싶어 죽겠다. 저쪽에서 이야기 나누고 있는 바텐더와 손님에게 “지금 이 자켓 이야기하는 거죠?”라고 말을 걸어본다. ‘어라 이거 통하잖아?’ 그리고 자신을 얼떨결에 영화감독이라고 소개한다. 마침 바텐더인 드니스(아델 하에넬)는 프로 영상 편집자를 꿈꾸는 아마추어 편집자였고, 조르주에게 관심을 보인다.
숙소로 돌아온 조르주는 죽여주는 스타일에 도취되어 급기야 자켓에게 말을 걸기 시작한다. 자켓과 대화하는 건지, 사슴과 대화를 나누는 건지 분열된 자아와 대화하는 건지 알 길은 없다. 아무렴 어떤 가, 이 영화의 주인공은 점점 미쳐가는 싸이코다. 점점 더 영화의 분위기와 상황, 등장인물에게 빠져든다.
작은 거짓말은 눈덩이처럼 불어나 걷잡을 수없이 커져버린다. 자기 꾀에 자기가 넘어가는 격이다. “영화감독? 그까짓 거 한 번 해보지 뭐”라고 생각한 조르주는 영화 이론서로 대충 공부한 뒤 자신만의 스타일로 촬영을 시작한다. 하지만 자켓을 구입하느라 전 재산을 털어버린 조르주. 돈을 빌리기 위해 드니스를 편집자로 고용하고 촬영한 영화를 다듬어 달라며 드니스에게 일을 맡긴다.
“내 소원은 세상에서 유일한 자켓 입은 사람이 되는 거야”라는 말도 안 되는 꿈을 이루기 위해 조르주는 고군분투한다. 영화를 찍는다는 말로 현혹해 자켓을 강탈한 조르주는 더 많은 자켓을 뺏기 위해 더한 거짓말도 서슴없이 하게 된다. 그렇게 사슴 모자, 신발, 바지, 장갑까지 100% 사슴 가죽 제품으로 치장한다. 보자보자 하니 점입가경이 따로 없다. 급기야 세상의 모든 자켓을 없애고 유일한 자켓이 되겠다는 집착은 망상에서 살인으로 이어진다.
한편, 얼떨결에 영상을 보게 된 드니스는 묘한 흥미를 느꼈고, 바로 편집을 시작한다. 더 많은 영상이 필요하다고 느끼며 클로즈업, 과감한 액션을 주문하며 조르주를 부리기 시작한다. 나는 제작과 편집을 맡을 테니 너는 계속해서 영상을 찍으라며 더 큰돈을 구해주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조르주의 기괴한 행동뿐이었지만 드니스의 욕망을 더하자 이 상황을 진두지휘하는 또 다른 욕망이 민낯을 드러낸다. 세상의 모든 자켓을 없애고 싶은 남자와 세상에서 가장 멋진 영화를 완성하고 싶은 여자가 만나 케미가 커진다.
그 집착과 광기가 이 영화의 큰 매력이다. 컬트적 스릴과 블랙코미디의 독특한 텐션은 대체 영화의 끝이 어떻게 흘러갈지 예측할 수 없어 더욱 쫄깃하다. 적재적소에 흘러나오는 음악은 묘한 중독으로 이끄는 원동력 중 하나다. 어디서도 들어본 적 없는 가슴가죽에 집착하는 남자의 이야기. 그 엉뚱하고 기묘한 여정에 동참하게 되면 멈출 수도 내릴 수도 없다. 끝까지 가야만 한다.
점점 자켓에게 잠식당하는 남자는 물건에 집착하고 주객전도되는 현대인의 말로 같다. 옷이 날개라는 말이 있다. 결점을 커버해줄 멋진 옷을 입으면 자신감은 덤으로 생긴다. 안 하던 행동도 대담하게 하게 되고, 거침없는 추진력이 생기지 않나? <디어스킨>은 내면의 욕망을 빗대며 끝도 없는 욕심과 허상을 독창적인 스타일로 완성했다.
영화 속 조르주는 현대인의 자화상을 그대로 반영한다. 세상에서 유일무이한 사람이 되기 위한 집착, 그것을 이루기 위해 앞뒤 따지지 않는 이기주의, 관심받기 위해 더 자극적인 콘텐츠로 선을 넘는 SNS 속 사람들. 우리 주변에서 심심치 않게 만나볼 수 있다. 그래서일까? 마지막 장면은 씁쓸한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다. 놀라우면서도 통쾌하고 충격적인 마무리다. 새해 그 어디서도 보지 못한 영화적 경험을 하고 싶다면 <디어스킨>을 추천한다. <아티스트>로 국내 관객에게 알려진 '장 뒤자르댕'의 이상한(?) 모습이 매력적이며,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개봉을 앞두고 있는 '아델 하에넬'도 합세했다.
평점: ★★★☆
한 줄 평: 사소한 집착, 커져버린 거짓말, 걷잡을 수 없는 광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