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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혜령 Feb 15. 2020

<문신을 한 신부님> 맹목적 시선을 파괴하는 영화

일 잘러 가짜 신부님의 맹활약

문신을 한 신부님, Boze Cialo, Corpus Christi, 2019, 얀 코마사


우리는 종종 겉모습을 보고 판단할 때가 많다. 그렇지 않으려고 해봐도 3초 안에 모든 것이 결정되는 첫인상은 끝 인상을 바꾸어 놓기 쉽지 않다.


스무 살 청년 다니엘(바르토시 비엘레니아)은 전과자라 신부가 될 수 없다. 출소하면 신학교나 성당이 아닌 목공소에서 일해야만 한다. 그것도 착실하게 예배를 준비하고 토마시 신부를 도운 탓에 일자리를 얻은 것이다. 성이 차지 않는 다니엘은 훔친 사제복으로 목공소 대신 마을 성당으로 들어선다.


성당 안에는 엘리자(엘리자 리쳄벨) 홀로 앉아 있었다. 다니엘은 다음 미사 정보를 물어보지만 돌아오는 것은 냉대와 멸시였다. 갑자기 다니엘은 오기가 생겨 자신을 신부라고 소개한다. 놀란 엘리자는 주임 신부님을 돌보는 리디아(알렉산드라 코니에츠나)에게 황급히 다니엘을 안내한다.


영화 <문신을 한 신부님> 스틸컷



정신 차려보니 현실로 다가온 신부 대행이 걱정되기만 한다. 스무 살 청년이 소년원에서 어깨너머로 보고 배운 대로 행하기 턱없이 부족하다. 어쩔 수 없이 검색의 힘을 빌리지만 이것도 금방 들통 날 위기에 처한다.  위기는 기회라 했던가. 위태로운 상황을 가까스로 넘기며 마을 사람들의 신임과 인기를 얻는다. 진짜 신부보다 가짜 신부를 마을 사람들은 신봉하게 된다. 이상하게 이야기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 마치 폭풍전야의 고요함 등뒤에 와있다.


성당 근처에는 작은 추모석이 마련되어 있어 다니엘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알고 보니 7명  탑승객 정원이 사망한 교통사고였다. 하지만 사진은 6개뿐이다. 운전자는 음주운전을 한 죄로 가해자가 되었고 죽어서도 장례 한번 제대로 치르지 못한 마을 사람 중 하나였다. 게다가 마을 사람들은 운전자 아내마저 마녀사냥하고 있다. 소박해 보이던 마을 사람들의 무서운 비밀, 이중적인 태도가 하나둘씩 밝혀진다.


감독 얀 코마사는 불가항력의 경험을 코믹과 스릴을 가미해 연출했다. 사소한 거짓말이 눈덩이 불어나 손쓸 수 없이 커진 경험을 통해 공감력을 높인다. 다니엘이 신부 행세를 할 수밖에 없는 장치도 차곡차곡 쌓아간다. 주임 신부가 자리를 비우자 본격적으로 드러나는 마을 사람들의 모습도 촘촘히 담았다.




영화 <문신을 한 신부님> 스틸컷



마을은 소박한 겉모습과 달리 불미스럽고 비통한 사건으로 침묵의 카르텔이 형성되어 있었다. 철저한 외부인 다니엘은 침묵으로 덮은 두꺼운 카르텔을 서서히 걷어낼 수 있는 선택 받은 자다. 어설프고 앞뒤가 맞지 않는 설교도 믿음으로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다. 카르텔을 뒤흔드는 행동에 갖은 협박과 회유를 겪지만 묵묵히 자기의 길을 간다. 얼핏 예수 재림의 후광도 보인다.


영화 <문신을 한 신부님>은 우리나라에서 다르게 번역되었지만 원제 ‘Corpus Christi’는 성축제일이자 예수의 몸을 상징한다. 인류를 위해 이 땅에 나타나 핍박받는 신의 아들. 즉 다니엘을 뜻한다. 범죄자란 주홍 글씨를 새긴 다니엘은 껍데기(사제복) 때문에 진짜 모습을 감추고 무리에 섞일 수 있었다.


다니엘은 믿음을 누구보다도 견고했고 확실했다. 다소 어색하고 실수투성이였지만 신부 대행을 완벽히 소화한다. 타성에 젖은 주임신부가 해결하지 못한 갈등도 풀어낸다. 만연한 혐오까지도 대동단결했다. 어디서 왔는지 보다 어디로 갈지가 중요한 거다. 과거의 출신에 목매기 보다 미래의 행보가 더욱 중요함을 다니엘을 통해 증명하고자 한다.


영화 <문신을 한 신부님> 스틸컷


결국 이 영화는 인간 세상의 여러 우화를 합친 집합체다. 맹목적 시선을 파괴하는 영화다. 보이는 것에 눈이 멀어 형상만 쫓다가 오히려 중요한 것을 놓치는 어리석음을 꼬집는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있어도 결코  숨길 수 있는 인간의 이중성을 고발한다. 마을 사람들은 사제복만 보고 쉽게 믿음을 형성하고 진실은 간과하지만 옷을 들추면 문신투성이 전과가가 나타난다.  다니엘도 마찬가지다. 선량한 마을 사람들의 겉모습에 가려 이기심을 꿰뚫지 못한다. 주홍 글씨는 한 사람에 대한 차별일 뿐만 아니라 누구나 낙인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또한 우리가 알고 있던 사회적인 합의, 믿음에 대한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다. 원효대사가 해골물을 마신 후 얻은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같이  모든 것은 마음가짐에 달렸음을 말한다. 우리의 믿음이 얼마나 쉽게 변하고 얄팍한지를 역설을 통해 묻고 있다.  


인간은 언제나 선택의 시험대에 오른다. 신은 삶의 여러 순간에 갖가지 비극을 통해 말을 걸고 우리를 시험에 빠지게 한다. 하지만 시험을 헤쳐나갈 수 있는 사람은 죽이든 밥이 되는 자기 자신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한국 영화 <할렐루야>와 비슷하면서도 색다른, 종교와 믿음, 용서와 관용에 대한 재해석이 돋보인다. 비극을 통해 가벼운 믿음은 더 단단해지고, 원수를 사랑하라는 예수의 말씀으로 희비가 교차한다. 무엇보다도 선악이 공존하는 얼굴의 배우 바르토시 비엘레니아의 독보적인 존재감도 꽉 차있다. 폴란드 영화에 대한 기대감뿐만 아니라, 그의 차기작이 궁금해진다.  





평점: ★★★★

한 줄 평: 주홍글씨를 피할 수 있는자 누가 있으랴




장혜령 소속쓰는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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