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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혜령 Mar 12. 2020

<그링고> 꼬여버린 인생에도 볕들 날 있다?!

대출금도 많이 남았는데 회사가 당신을 해고하려는 사실을 미리 알았다면 어떨 것 같나. 몸과 마음, 영혼까지 바치지는 않았지만 일한 결과가 고작 해고라니 배신감이 말도 못 할 것이다. 게다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사랑하는 사람의 이별 통보까지 받는다면?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은 절망감으로 한동안 헤어 나오지 못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렇게도 복도 없는 남자가 또 있을까. 꼬여도 너무 꼬여 어디서부터 풀어야 할지 모르겠다. 영화 <그링고>는 평범한 소시민 헤럴드(데이빗 오예로워)를 통해 인생의 희로애락을 경험하는 묘미를 선사한다. 미국과 멕시코를 배경으로 욕망을 위해 달리는 다양한 인간 군상을 그려내고 있다. 믿음과 배신 앞에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아이러니한 관계를 주목하게 만든다.


영화 <그링고> 스틸컷

오프닝의 긴박한 전화는 바짝 긴장감을 높인다. 전화는 멕시코 출장 중 인질로 잡혀 몸값 5백만 달러를 내달라는 직원 헤럴드의 호소다. 이에 사장 리처드(조엘 에저튼)는 형 미치(샬토 코플리)를 고용해 헤럴드를 구출해 줄 것을 부탁한다. 한편, 헤럴드는 정직하고 평범한 게 오히려 독이 된 안타까운 사람이다. 시쳇말로 호구다. 친구 리처드 회사에 낙하산으로 들어와 적당히 눈치 보고, 보통의 성실한 하루를 살아가는 소시민이다. 하지만 최근 친구 회사가 위태롭다는 소문으로 몹시 불안하다. 합병이라도 한다면 정리해고 1순위란 생각에 걱정이 태산이다. 


헤럴드의 무미건조한 일상에 거대한 폭탄이 떨어지며 꼬이기 시작한다. 공동 창업자와 멕시코 출장길에 올라서 뜻밖에 일을 듣는다. 둘이 자신을 멕시코 해외 출장 중 해고하려 한다는 것. 졸지에 직장도 아내도 잃고 낙동강 오리알 신세로 전락해 버린 헤럴드는 될 대로 대라며 비뚤어진다. 집에 가서 뭐 하겠나, 반겨줄 사람도 없고 직장도 없는데. 우울한 나머지 복수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앞선다. 잃을 것 없는 헤럴드는 자작극을 벌여 돈을 뜯어내려 한다. 과연 헤럴드는 자신의 몸값을 제대로 받을 수나 있을까? 


영화 <그링고> 스틸컷


영화는 겉과 속이 다른 자본주의 속물근성을 하나둘씩 파헤친다. 다양한 캐릭터가 가져온 불행의 단초들이 퍼즐처럼 흩어져 있다가 헤럴드를 중심으로 모인다. 욕망 앞에서 정신 못 차리는 캐릭터들과 꼬여버린 스토리가 복잡하게 맞물린다.


회사는 겉만 제약 회사일뿐 사실 멕시코 마약 조직과 연관되어 있었다. 중심에는 리처드라는 악덕 보스가 자리하고 있다. 그의 곁에는 이를 부추기는 일레인으로 더욱 악화되기 시작한다. 또한 헤럴드의 아내는 착한 남편 몰래 바람피우느라 정신없으며, 한탕 벌어 보려고 마약 운반책이 된 마일스는 여자친구 서니(아만다 사이프리드)를 속여 멕시코에 왔다. 리처드의 사주를 받은 형 미치(샬토 코플리)또한 선행을 빌미로 범죄에 가담한다. 멕시코 조직까지 나서 거래를 거절한 앙갚음까지 받아 졸지에 타깃이 되어 극한 상황에 빠진다. 


영화는 배우 겸 감독인 내쉬 에저튼과 동생 조엘 에저튼이 영화 <더 기프트>, <보이 이레이즈드>이후 다시 뭉친 결과물이다. 데이빗 오예로워, 샤를리즈 테론, 조엘 에저튼, 아만다 사이프리드, 탠디 뉴튼, 샬토 코플리 등의 멀티캐스팅이 돋보인다. 무엇보다 영화의 희로인은 샤를리즈 테론이다. 치명적인 매력을 어필하며 짧은 분량에도 존재감을 과시한다. 원하는 바를 쟁취하기 위해 앞으로 나아가는 저돌성이 폭발하는 캐릭터다. 다만 아만다 사이프리드의 존재감을 살리지 못해 아쉽기는 하다.


영화 <그링고> 스틸컷


영화 <그링고>는 헤럴드에서 해리로 이름을 바꾸며 인생역전 기회를 품는 어느 평범한 샐러리맨의 웃지 못할 해프닝이다.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헤럴드는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현대인의 초상 같기도 하다. 세상에 믿을 사람 하나 없고 혈혈단신 오로지 나 자신만을 믿어야 하는 슬픈 현실을 직시하게 만드는 씁쓸한 블랙 코미디다. 한편 ‘그링고(Gringo)’란 남미에서 흔히 미국인을 비하하는 단어다. 




평점: ★★

한 줄 평: 어중간한 촌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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