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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혜령 Mar 12. 2020

<악몽> 꿈에서 깨어나면 또 꿈?

우리는 살면서 꿈에 대한 비유를 많이 한다. “꿈인지 생시인지 모르겠다. 마냥 꿈속에 있는 것만 같다”, “꿈은 그냥 꿈일 뿐이야, 이 꿈에서 깨고 싶어”, “꿈자리가 뒤숭숭하다” 등등. 현실과 꿈의 경계가 모호할 때 이런 말을 하게 된다. 꿈은 간혹 욕망하는 무엇일 때가 많다. 희망 혹은 공포. 무엇이 되었건 간에 간절히 바라면 꿈으로 실현되기도 한다. 잠자리에 들면서 뒤척이던 고민이 꿈으로 이어지는 순간을 종종 겪어 봤을 것이다. 인간의 뇌는 채워지지 않는 욕망의 근원이자 낮 동안의 기억을 선별하는 거대한 공장이다. 따라서 풀리지 않는 신비, 뇌가 꾸는 꿈에 대한 영화도 많다. 


죽었던 딸을 살려내고 싶다

영화 <악몽> 포스터


영화감독 연우(오지호)는 몇 년째 시나리오 작업에 매진하고 있다. 사랑스러운 딸 예림(신린아)과 아내 지연(지성원)과 평범한 날들을 보내던 중 예기치 못한 딸아이의 죽음이 모든 것을 흔들어 놓는다.


그 후 연우는 가까스로 영화를 완성하려 한다. 시간이 갈수록 영화를 만들려는 욕망이 커진다. 이유는 딸 예림과 지키고자 했던 약속 때문. 하지만 제작사의 간섭에 여배우 캐스팅부터 난항을 겪는다.


한편, 불면증에 시달리던 연우는 뱀 문신을 한 여인의 뒷모습을 따라가는 꿈을 반복 꾸게 되고, 그 여인과 비슷한 수(차지헌)를 캐스팅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그녀를 만난 후 이상한 일들이 벌어진다. 현실, 꿈, 영화의 공간에서 혼란스러운 연우는 더 깊은 수렁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러닝타임 내내 초현실적인 장면이 주를 이룬다. 연우의 현실을 보여주는 듯하다가 몽환적인 뫼비우스 띠처럼 순간 변해버린다. 액자식 구조와 환상 모음집 같은 구성은 혼란을 유발한다. 그래서 꽤나 익숙한 영화들이 생각난다. 꿈에서 꿈을 보고, 깨면 또 꿈인 영화 <인셉션>이 떠오른다. 또한 빨간 방의 조명, 거울을 이용한 시선처리, 자각하기 힘든 비현실성은 컬트의 제왕 데이비드 린치의 <트윈픽스>가 떠오른다. 하지만 낯익은 패턴 속에서도 유난히 마음이 저린 이유는 아이를 살려내고 싶은 진한 부성애 때문이다.


영화 속에는 영화와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는 남자를 길잡이 삼아 그 남자의 깊은 착란 속으로 초대한다. 남자는 현실의 금기를 실현함으로써 대리만족을 느낀다. 아내의 외도를 상상하기도 하고, 묘령의 여인과 사랑을 나누기도 하며, 죽은 딸을 살려 내기도 한다.


서큐버스를 통해 욕망을 직시하다

영화 <악몽> 스틸컷


흥미로운 점은 꿈속에서 남자를 옭아매는 서큐버스를 등장시켜 욕망에 집요하게 파고든다는 것이다. 욕망에 집착한 사람을 반드시 파멸에 이르게 한다는 서큐버스는 러닝타임 내내 미스터리함을 더한다. 서큐버스는 마음속에 생겨난 분노 같은 존재라 죽이면 사라지나, 영혼을 잠식당한 순간 자신을 파괴하고야 만다고 전해진다.


이런 욕망은 곳곳에서 발현된다. 대표적으로 정사 장면을 수차례 반복해 찍는 연우의 집착이다. 늘어나는 테이크만큼 스태프와 배우, 관객의 짜증과 피로감은 쌓인다. 이성은 점점 사라지고 본능이 역전하는 연우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다. 영화 개봉의 바람보다 딸을 살려내고 싶다는 열망이 커지며 걷잡을 수 없는 광기가 연우를 잠식한다. 상처뿐인 현실보다 차라리 꿈속으로 도망치고 싶은 처절한 아버지의 모습이 애처롭기만 하다.


영화 <악몽>은 공포 미스터리 장르에 스릴을 가미해 여러 각도에서 긴장감을 유발한다. 타인의 삶을 스크린에 투영하는 영화 본질에 충실한 영화다. 인간은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없기 때문에 사진, 거울, 카메라, 꿈에 투영된 대상으로만 볼 수 있다. 비현실적인 영상으로 현실을 바라보는 영화와 거울은 비슷한 맥락으로 생각해 볼 수 있겠다.



영화 <악몽> 스틸컷


또한, 죽은 딸을 살려내고 싶은 한 남자의 기묘한 꿈 이야기다. 노란 옷을 입은 예림이, 노란 풍선 삐삐 등. 2014년 시간이 멈춘 참사를 떠오르게 한다. 자식을 차마 떠나보내지 못한 부모의 애타는 비망록이란 생각도 든다. 영화 속 연우는 자식의 부재를 견디는 방법으로 꿈과 영화를 택했다. 그래서일까. 영화는 무섭다기보다 안타까워 마음 한구석이 아프다는 말에 가깝다.


요즘, 그야말로 악몽 같은 시간을 견디고 있다. 누구에게나 트라우마는 있을 수 있지만 집단 트라우마를 여러 번 겪으며 상처의 골이 깊다. 빨리 벗어나고 싶은 생각만이 커진다. 장자의 호접몽을 상상하게 된다. 꿈에서 깨면 마냥 또 꿈처럼 빠져나갈 수 없이 갇힌 피로감 이어지고 있다. 전염병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 모두 악몽에서 곧 깨어나길 간절히 바란다.



평점: ★★

한 줄 평: 악몽 같은 혼돈 그 자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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