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이 만들어낸 새로운 안티 히어로의 탄생
무심코 쓴 허세 가득한 악플이 부메랑이 되어 되돌아온다면 어떨까. 영화 <건즈 아킴보>는 현실은 비건(채식주의자)에 비폭력주의자 마일즈(다니엘 래드클리프)가 댓글 때문에 인생이 180도 바뀌는 이야기다.
오너의 폭언에 아무런 대꾸조차 하지 못하던 마일즈는 자고 일어났더니 양손에는 총이 박혀 있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냐고? 지난밤을 상기해보자.
그날도 퇴근 후 혼맥 하며 인터넷을 하던 중이었다. 마일즈의 주특기는 랜선 댓글 격투, 바로 키보드 워리어다. 그날도 실시간 스트리밍 파이트 클럽 스키즘에서 댓글 관리자와 거친 설전이 오갔다. 한마디도 지지 않고 싸우고 있었던 것. 그런데 이게 무슨 날벼락인가. 갑자기 집에 괴한들이 들이닥치고 손에 총이 박아 버렸다. 총 때문에 바지 하나도 입지 못하게 된 난처함도 잠시, 스키즘의 최고 파이터 닉스(사마라 위빙)와 24시간 이내 대결에서 이겨야만 한다. 마일즈는 소심한 너드 시청자에서 주목받는 참여자가 된 것이다.
영화는 개미 한 마리도 제대로 죽이지 못하는 초식남 마일즈가 승률 1위 파이터와 맞붙을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순간의 선택으로 꼬여버린 한 남자를 집요하게 추격하기 시작한다. 빠른 템포와 음악, 감각적인 영상은 게임을 관전하는 것처럼 단숨에 시선을 빼앗는다.
엄청난 접속자수를 갱신하는 스키즘은 드론, CCTV, 핸드폰 위치 추적으로 생중계되는 살인 막장 게임이다. 폭력과 죽음에 끌리는 인간 본성에 맞게 더 잔인하고 악랄하게 상대방을 공격한다. 게임 플레이어들은 둘 중 한 사람이 죽어야 끝나는 FPS 게임처럼 잔혹성 최대치를 제공하고 있다.
이를 지켜보는 시청자들은 살인 게임을 훔쳐보는 방관자이자 가담자로 일말의 죄책감도 느끼지 않는다. 마치 영화나 게임 속에서 일어나는 일뿐이라며 나와는 먼 이야기라는 불편함을 덜어낸다. 스키즘은 인간의 추악한 본능을 건드려 더 강한 쾌감을 원하게 만들었다. 이렇게 중독된 다수의 대중은 불법 파이트 클럽 스키즘의 원동력이 되고, 전 세계의 프랜차이즈를 거느린 파이트 클럽으로 성장하게 된다.
스키즘은 이를 이용해 게임과 현실의 경계를 무너트린다. 과도한 경쟁 체제, 약육강식 세계를 살아가는 우리는 게임 속에서 대리만족을 꿈꾸지만 더 깊은 면역을 키울 뿐이다. 때문에 온라인에서 벌어지는 잔인한 중독성을 제대로 파악하기 어렵다. 목숨 걸고 싸우는 마일즈와 반대로 모니터로 지켜보는 시청자에게는 오락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가장 충격적인 것은 잔인한 폭력과 살인이 아니었다. 실제 벌어지고 있지만 나와는 관계없는 일이라는 무관심으로 무장한 대중의 섬뜩함이었다.
영화는 타인을 밟고 올라서더라도 1등이 되기 위한 경쟁 현실을 꼬집는다. 성장과 결과로만 평가되는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어쩌면 게임보다 더 게임 같은 일들이 계속되고 있다는 씁쓸함을 지울 수 없다. 누군가는 피해를 보고 도태되지만 약육강식 세계에선 어쩔 수 없다라고 무마한다. 없는 사람은 계속 못살고 있는 사람은 계속 잘 사는 일이 일어나는 이유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평범한 사람, 액션 히어로를 거부하는 사람이 히어로가 된다는 안티 히어로의 태제를 따른다. 자신이 절대 받아들일 수 없는 가치를 생사의 갈림길에서 어쩔 수 없이 차용하면서 성장하는 영웅담이라 할 수 있다. 영화적 서사나 개연성보다는 철저히 B급 정서에 주목하며 총격전과 액션 카타르시스를 시종일관 시도한다는 게 관전 포인트다. 아무 생각 없이 나무하는 액션 그대로를 즐기고 싶은 관객에게 추천한다.
한편, 해리포터 시리즈로 전 세계적인 배우로 성장한 다니엘 래드클리프가 이번에는 미친 게임의 희생양이자 안티 히어로로 성장하는 소심남으로 돌아왔다. 전작 <정글>에서도 아마존에서 생존한 극한의 과정을 몸소 보여주며 한 장르에 갇히지 않는 독특한 도전정신을 높이 평가받았다. 그와 호흡을 맞춘 사마라 위빙은 스키즘의 절대지존 킬링 플레이어로 장르 영화에 잘 맞는 외모로 국내 관객에게 눈도장을 찍게 되었다. 가녀린 외형에서 뿜어 나오는 헌터의 잔혹한 매력인 영화의 분위기와 잘 어울린다.
*'아킴보(Akimbo)' 뜻 양손에 권총을 든 사격 자세
평점: ★★★
한 줄 평: 댓글 하나 때문에 현피 뜬 남자 그 말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