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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혜령 Apr 29. 2020

<카페 벨에포크>당신의 전성기를 되찾아 드립니다

2019 칸, 토론토 국제 영화제를 포함해 18개 영화제에 초청된 <카페 벨에포크>는 프랑스 개봉 당시 작품성과 대중성을 인정받아 상영 확대와 장기 상영을 이룬 영화다. 풍자와 해학이 가득한 프랑스식 블랙 유머를 좋아한다면 잘 맞을 영화다. 벨에포크(belle époque)가 좋은 시대, 황금기를 뜻하는 것처럼 삶에서 가장 좋았을 때로 시간 여행을 떠나고 싶은 관객도 괜찮다. 100세 시대, 인생을 더욱 길고 풍요롭게 즐기고 싶은 노년에게 추천하고 싶은 영화다. 오래된 관계, 식어버린 열정, 무기력한 일상을 다시 깨워 낼 원동력을 제공한다. 


최근 무기력하게 지내던 빅토르(다니엘 오떼유)는 40년을 같이 산 아내 마리안느(화니 아르당)와 헤어졌다. 정확히 말하면 쫓겨났다고 할 수 있다. 두 사람은 영감을 주고받으며 열정이 바닥난 상태다. 아내는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며 신기술을 적극 수용하고 지나간 젊음을 되찾고 싶어 한다. 태어남과 동시에 늙어가는 인간 수명을 최대한 늦추고 싶어하는 진보적인 사람이다.


반면 남편은 식탁에서 핸드폰 대신 대화를 선호하고, 정치적 성향이나 종교의 차이도 너그럽게 용인하던 옛날을 그리워하는 보수적인 사람이다. 신기술 예찬과 아날로그 감성을 가진 둘은 시시 때때 부딪힌다. 아내는 변화된 사회, 기술을 탓이며 일도 놓아버린 남편이 못마땅했고 핑계 삼아 남편을 내쫓았다. 사랑이 식었다고 하기엔 2%가 부족하다. 이 커플에게 반드시 변화의 바람이 필요하다. 과연 조각난 마음을 다시 이어 붙일 수 있을까?


영화 <카페 벨에포크> 스틸컷

빅토르는 고심 끝에 과거를 재현해주는 시간 여행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된다.  처음 만난 1974년 5월 16일의 카페 벨에포크로 시간 여행을 떠난다. 지금 아내도 사랑하지만 20대 아내를 다시 만나보고 싶기 때문이다. 영화 속 시간 여행은 마법이나 신기술로 떠나는 타임 루프, 타임 슬립, 타임 리프가 아니다. 고객의 기억을 통해 최대한 상황과 세트를 재현해 주는 유료 프로젝트다. 손으로 한 땀 한 땀 완벽에 가깝게 만들어 내기 때문에 미술팀, 의상팀, 조명팀, 기술팀과 작가와 연출이 필수다. 마치 <트루먼 쇼>를 보고 있는 듯한 설정이 웃음과 감동을 선사한다. 


고객이 된 빅토르는 모두 가짜인 줄 알면서도 이 분위기가 싫지만은 않다. 아내 마리안느와 똑같이 생기지 않았지만 분위기는 얼추 비슷한 배우와 설레는 기분을 만끽한다. 그렇게 1974년 자기 앞에 나타나있는 붉은 머리 아가씨와 정신적인 교감을 나눈다. 점입가경으로 상황에 몰입한 나머지 정체성까지 헷갈리기 시작한다.


인간이 AI를 대체할 수 없는 이유는 예상을 뛰어넘고 창의성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빅토르의 잠들어있던 열정을 깨운 건, 정해진 각본대로 움직이지 않는 연기자 마고(도리아 틸리에)의 돌발행동 덕분이다. 생각만할 뿐 행동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아내 마리안느가 남편에게 잔소리처럼 하는 말도 바로 “행동해!”였다. 실패하더라도 한 발짝 나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만약 그때로 돌아가면 무엇을 선택하고 선택하지 않을까? 과거의 나에게 미래의 나는 무슨 말을 해줄 수 있을지 곰곰이 생각하게 하는 대목이다.  

영화 <카페 벨에포크> 스틸컷

사실 이 모든 프로젝트의 설계자인 앙투안(기욤 까네)은 연인 마고와 위태로운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사랑은 하나 확신이 없던 마고 또한 여러모로 상처 받고 앙투안을 잠시 떠나 있었다. 하지만 프로젝트의 주연으로 참여하며 배우로서의 성장, 연인과의 관계까지 쇄신하게 된다. 꼬여버린 관계를 풀 수 있는 열쇠는 상대방을 향한 믿음과 신뢰였다.


영화처럼 지나간 시간을 다시 경험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자본력이 필요하다. 때문에 현재는 소중하고 일어나지 않는 미래를 걱정하며 살기에는 아깝다. 지금의 현실을 중요하게 여기고 최선을 다할 때 한번뿐인 인생을 후회 없이 살아갈 수 있다. 우리의 뇌는 겪은 것 중에 선별된 기억을 갖가지 윤색을 거쳐 아름다운 추억으로 간직한다. 그때 그 시절을 떠올리는 향수, 전성기, 찬란했던 순간, 첫사랑 등 삶에서 잃어버린 무엇을 되찾아 줄 계기가 될 것이다.

영화 <카페 벨에포크> 스틸컷

나이 들어 돌아가고픈 때가 있다면 언제일지 생각해 봤다. 사랑하는 사람을 처음 만났을 때, 아무것도 모르고 재미있던 유년 시절, 가슴 아팠던 첫사랑? 그 순간을 고르는 시간조차도 의미 있는 봄날이 될 것 같다. 아날로그 감수성과 마음에 꽂히는 대사의 향연, 추억을 먹고 사는 인간의 근원으로 떠나는 시간여행에 동참해보면 어떨까.


++ 덧, 4월 28일 대한극장 루프탑에서 시사회가 있었다. 프랑스 영화와 잘 어울리는 와인과 석양의 아름다움과 달빛샤워하며 멋드러진 시간이었다. 영화가 판타지를 제공하고 잘 어울러진 현장의 분위와 더불어 이색적인 추억으로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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