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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혜령 Apr 30. 2020

<애프터 웨딩 인 뉴욕> 주도적인  여성의 선택


최근 할리우드에서는 크로스 젠더(cross-gender) 리메이크가 진행 중이다. 성별을 바꿔 명작을 리메이크함으로써 시대상을 반영하고 비틀어 재해석하는데 주력한다. <고스트버스터즈>, <오션스 8> 등 남성에서 여성으로 바꾼 또 한편의 영화가 우리 곁에 찾아왔다. 


영화 <애프터 웨딩 인 뉴욕>은 <인 어 베러 월드>, <버드 박스>의 수잔 비에르 감독의 <애프터 웨딩> 리메이크 버전이다. 최근 할리우드의 트렌드인 여성 서사를 적극 반영했다. 결혼으로 생의 전환기를 맞이하는 여성들의 일과 사랑, 인생을 다루고 있다. 


영화 <애프터 웨딩> 스틸컷

딸의 결혼식에 초대된 의문의 손님과 충격적인 관계라는 큰 줄기는 같으나 여성으로 바뀌며 섬세한 감정선이  짙어졌다.  매즈 미켈슨과 롤프 라스가드에서 미셸 윌리엄스와 줄리안 무어의 조합은 부성애를 진한 모성애 바꾸며 공감대를 형성했다. 거기에 빌리 크루덥이 가세해 두 여성과 딸 사이를 오가며 바쁘게 관계를 조율한다.


원작의 차이점은 성별 전환이 다가 아니다. 원작의 남성들이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꼭꼭 숨기는 탓에 다른 상황을 빗대 유추해야 했다면, 여성들은 눈빛과 몸짓으로도 충분히 알 수 있는 투명한 감정을 자아낸다. 이 부분에서 호불호가 갈릴 것으로 예상된다. 예를 들면 이자벨은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신발을 벗고 맨발로 뛰쳐나가지만, 원작의 남성들은 그냥 담배나 술로 삭히기 일쑤다. 때문에 담백한 북유럽식 남성 버전을 원한다면 원작을, 화려하고 풍성한 미국식 여성 버전을 원한다면 <애프터 웨딩 인 뉴욕>이 맞겠다. 


여성의 선택과 책임 그리고 결과

영화 <애프터 웨딩 인 뉴욕> 스틸컷


인도에서 아동 재단을 운영하고 있는 이자벨(미셸 윌리엄스)은 최근 세계적인 미디어 그룹의 대표 테레사(줄리안 무어)로부터 후원을 제안받았다. 뉴욕으로 직접 와야 했다는 조건이 거슬리지만 어쩔 수 없이 뉴욕을 찾는다. 최근 재정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기 떄문에, 돌보는 아이들을 위해 후원자의 말을 따라야 하는 것이다.


금방 해결하고 돌아갈 거라고 생각했지만 갑작스레 테레사의 딸 그레이스(애비 퀸) 결혼식에 초대받는다. 인도에서 기다리는 아이가 눈에 밟히지만 후원금을 위해서라면 낯선 결혼식도 참석해야만 했다. 그러나 낯선 사람이 아니었다. 그곳에서 오랫동안 잊었던 사람과 마주치게 된다.


사실은 이자벨은 자신의 딸의 결혼식에 참석하게 되었던 것. 20년만에 본 오스카와 성장한 딸 그레이스. 참 예쁘게도 잘 컸다. 이런저런 만감이 교차하는 것도 잠시 당혹스러움을 감출 길이 없다. 왜냐하면 이자벨은 자신의 역할은 낳는 것 까지라며 아이의 입양을 결심했기 때문이다. 그 후 인도의 작은 고아원에서 아이들을 돌보며 선생님이자 어머니로 살고 있다.


반면 테레사는 성공한 미디어 기업의 대표다. 싱글대디었던 남편 오스카(빌리 크루덥)를 만나 가슴으로 낳은 자식 그레이스를 키웠다. 8년 전에는 쌍둥이 아들까지 낳아 행복한 가정을 돌보는 완벽한 여성이다. 테레사와 오스카의 딸 그레이스는  결혼을 앞두고 있다. 결혼이 너무 빠르지 않나 걱정이긴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과 행복한 앞날을 응원하는 모든 부모의 마음과 같다.


영화는 세 여성을 통해 정형화되지 않은 성(性) 역할을 보여준다. CEO, 아내, 엄마의 역할을 묻고 있다. 남성보다 훨씬 다양한 역할을 동시에 수행해야 하는 여성의 삶은 그야말로 멀티태스킹이다. 상대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변신한다. 누군가의 딸이자 엄마, 그리고 직업인으로서의 삶이 공감을 이끌어 낸다. 남성 때문에 좌지우지되지 않는 독립적인 모습이 돋보인다. 때문에 테레사는 자선 단체의 후원금도 회사를 파는 것도 남편과 상의하지 않는다. 딸 그레이스도 떠밀려서 결혼하지 않는다. 사랑해서 결혼했고 오로지 자기 의지와 선택으로 삶을 꾸려나간다. 누군가의 희생이나 보답, 미안함이 아닌 나를 위한 최선만이 존중된다.


섬세한 감정이 전해지는 시간

영화 <애프터 웨딩 인 뉴욕> 스틸컷


영화는 다양한 전조로 상황을 암시한다. 테레사는 산책 도중 뿌리째 뽑혀 쓰러진 나무를 발견한다. 가까이 다가가 살펴보던 중 부서진 둥지와 깨진 세 개의 알을 발견한다. 이를 두고 마음이 편하지 않다. 비극적인 자신의 미래를 보는 것 같아 마음 쓰인 테레사는 둥지를 집으로 데려온다. 이를 본 남편 오스카는 자신의 작품에 쓸 소재로 눈독 들이지만, 불같이 화를 내는 아내를 위해 복원해 방안에 놓아둔다. 이는 자신의 안락한 둥지, 즉 가정이 파괴될 수 있음을 걱정하는 테레사의 마음을 은유한다. 그렇게 남편이 리뉴얼해 준 둥지는 또 다른 긍정의 신호가 된다.


테레사가 이자벨을 뉴욕까지 부른 까닭은 따로 있었다. 얼마 남지 않는 삶을 정리하며 가족들을 부탁하려 한 것이다. 이자벨은 영문모를 후원자의 호출에 의아했지만 서서히 드러나는 테레사의 의도에 수긍하게 된다. 앞서 말한 둥지는 테레사와 이자벨의 운명을 보여준 복선이었다.


눈을 감았다고 해서 세상이 보이지 않는 건 아니다. 잠시 멈추어 있을 뿐 마음의 눈을 뜨면 상상 속에서 볼 수 있고, 영원히 함께 할 수 있다. 인도에서 오랜 명상을 해 온 이자벨은 "우리가 세상을 지나가는 걸까, 세상이 우리를 지나가는 걸까"라는 물음에 뭐라고 답했을지 사뭇 궁금하다.


또한, 견디기 힘든 순간에도 의연하게 대처하는 테레사의 원숙한 태도가 빛나는 중년을 보여준다. 누구나 이룰 수 없어 갈망하고 부러워하는 성공의 기준을 영화는 테레사와 이자벨을 통해  새로 쓴다. 바로 남이 아닌 자신의 기준에서 바라볼 때, 남들 시선에 자유로울 때, 오직 내면의 충만함을 갖출 때 비로소 완성된다는 것을 말이다.






평점: ★★★☆

한 줄 평:낳은 정과 기른 정 사이, 정답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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