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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혜령 May 01. 2020

<썸원 썸웨어>파리지앵의 대도시 사랑법

사랑도 삶도 비대면

<썸원 썸웨어>는 <부르고뉴, 와인에서 찾은 인생>의 남매 사이에서 익명의 옆집 주민으로 만난 두 배우의 감정선이 돋보인다. 프랑스의 차세대 배우로 촉망받고 있는 프랑수아 시빌과 아나 지라르도는 현대사회의 가깝고도 먼 관계를 보이지 않는 분위기로 완성했다.


전작 <부르고뉴, 와인에서 찾은 인생>, <사랑을 부르는, 파리> 등 아름다운 도시 배경과 감정을 섬세하게 그릴 줄 아는 세드릭 클라피쉬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영화는 단순한 로맨스라기보다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와 이해, 소통에 관한 심리 웰메이드 드라마다. 두 사람의 일상을 교차편집하며 닿을 듯 말 듯 , 만날 듯 말 듯 긴장감 있는 상황을 연출했다. 쿨하고 시크해 보이지만 따뜻한 관계를 찾아가는 파리 소시민의 일상을 들여다본다.

 

등잔 밑이 어두운 법, 따뜻함은 가까운 데 있다

영화 <썸원 썸웨어> 스틸컷

누군가를 꼭 만나야만 할까. 우리는 최근 비대면으로 많은 일을 해봤더니 어떤가. 상대방을 향한 감정이 대면을 통해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영화는 그 연장선이라고 봐도 좋다. 


5미터도 되지 않는 옆집에 살고 있으면서도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스쳐 지나가기만 한다. 베란다에서 똑같은 바깥 풍경을 보며 일상을 살아가는 파리지앵. 파리의 정취와 음악, 고양이를 공유하며 감정을 키워 한다. 같은 길을 걷고, 같은 버스 옆자리에 앉고, 같은 슈퍼에서 장을 보지만 둘은 전혀 모르는 사이다. 화려하고 시크한 겉모습 뒤에 보이는 외로움과 쓸쓸함이 선연하다.


두 사람은 마음이 아프다. 특별히 스트레스 받거나 걱정되는 일이 있냐는 물음에 도시에 사는 현대인이 고질적인 불치병이 아니냐며 간과한다. 하지만 계속해서 잠을 못 자거나, 너무 많이 자는 통에 정신과 의사에게 깊은 속내를 풀어 놓는다.

영화 <썸원 썸웨어> 스틸컷


연구원인 멜라니(아나 지라르도)는 3년간 만난 남자친구와 헤어졌고 상처를 1년 내내 달고 사는 중이다. 집-회사를 반복하며 무의미한 생활을 하던 중 중요한 발표를 앞두고 신경 쓸게 늘어났다. 서서히 상담을 통해 옛 연인에게서 벗어나지 못한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누군가에게 의존하고 싶은 마음은 가족을 두고 떠난 아빠로부터 시작되었다.


아빠를 향한 그리움과 원망이 남성에 대한 뒤틀린 시각을 만들었고, 성인이 되어서는 엄마까지 사이가 멀어졌다. 누구든 자신을 떠날까 봐 안달복달했다. 내내 상대방에게 자신을 내어 주는 사랑, 원하는 대로 맞춰 주는 예스 걸이 되어 갔다. 그와 연애하는 동안 시간개념도 없고 자기주장도 없었다. 어쩌면 자기보다 그를 더 사랑했을지도 모른다. 내 인생의 전부가 되고 나는 사라져 버린 느낌이었다.


레미(프랑수아 시빌)는 도통 잠이 오지 않는 탓에 매일 뒤척이기 일쑤다. 최근 직장 내 대규모 해고 때문에 충격이 크다. 자동화 기계로 대체하며 동료들은 일자리를 잃었지만 레미는 부서를 옮겨 계속 일하게 되었다. 이에 대한 죄책감은 공황장애로 이어진다. 사실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아 보였지만 레미는 어릴 적 겪은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나만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은 성인이 된 레미를 집요하게 따라다녔고 최근 회사의 구조조정으로 고개를 든 것이다. 


멜라니와 레미는 일면식은 없지만 우연히 같은 현장에서 보고 느낀 감정이 트리거가 되어 치료의 급물살을 탄다. 멜라니와 레미는 들것에 실려 가는 중년 남성과 걱정하는 아내와 딸을 보며 각자의 모습을 떠올렸다. 멜라니는 엄마와 자신을 떠난 아빠를 떠올렸고, 자신을 괴롭히는 감정이 무엇인지 깨닫는다. 레미는 여동생을 생각했다. 문제를 해결했다고 착각한 과오가 더 큰 화를 불러온 것이다.


누군가를 찾지 말고 나를 먼저 찾길

영화 <썸원 썸웨어> 스틸컷


진실을 숨긴 채로 무엇이든 해결되지 않는다. 그 일은 그저 그렇게 되었을 뿐 당신의 잘못이 아니다. 허심탄회하게 속내를 보여주고, 진솔한 대화로 해결하면 마음의 병은 완화될 수 있다. 무엇보다 자신의 탓이 아니라는 당당함을 갖출 필요도 있다. 당신은 삶의 주인으로써 주체적으로 살아갈 이유, 행복할 자격을 갖춘 사람이다. 


상처를 극복하는 방법은 무엇보다 자신을 먼저 사랑할 때야 가능하다는 진리를 다시 떠올리게 만드는 순간이다. 관계는 칼로 반듯하게 잘라내듯 선 긋기가 될 수 없다. 그래서 관계의 정리란 잊어버리는 게 아니라 가지고 있지만 기억하는 것이 된다.


영화는 데이팅 앱을 통해 쉽고 빠른 만남의 날선 질문을 던진다. 언제든 온 오프가 가능한 인스턴트 관계의 부작용을 지적한다. 항상 연결되어 있는 것 같지만 단절되어 있는 게 바로 SNS 속 관계 즉, 속빈 강정이다. 오직 만남을 목적으로만 하는 SNS의 가벼움은 차곡차곡 쌓아 올린 관계와 비교할 수 없다. 관계는 성격, 취향, 설렘을 바탕으로 호감과 신뢰로 정점을 찍을 때 성사될 수 있다.


따라서 진중한 관계를 원한다면 자신만의 성(城)에서 나아가야만 한다. 지나가는 기차를 바라보기만 하다가 직접 타보는 행동, 춤을 배우기 위해 교습소를 찾아가는 행동, 심적 부담감으로 당도하지 못했던 장소에 직접 가보는 행동. 비좁은 마음속에서 한 발짝만 걸어간 작은 행동으로 차곡차곡 만들어 가는 것이다.


영화 <썸원 썸웨어>는 아름다운 파리를 배경으로 기찻길 너머 에펠탑과 몽마르뜨 언덕의 사크레쾨를 대성당을 비춘다. 신시가지에서 바라보는 구시가지의 낭만의 분위기가 매력적이다. 하지만 로맨스 영화로만 치장해서 아쉽다. 뚜껑을 열어보면 훨씬 깊고 원숙한 삶과 관계에 관한 이야기가 들어있다. 그 온전한 진심은 당신의 발돋움에 달려 있다.




평점: ★★★★

한 줄 평: 사랑도 삶도 비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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