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레이크> 달콤한 휴식이 공포가 될 때
국산호러영화의 명맥을 잇는 여성영화의 신호탄
휴식이 주는 안락함과 편안함이 일순간 공포로 바뀐다면 어떨까? 영화 <호텔레이크>는 인적 드문 공간의 휴식처인 호텔이 주는 이미지의 변화를 시도했다.
유미(이세영)는 5년 전 세상을 떠난 엄마를 원망하며 살았다. 피아니스트였으나 정신이 온전하지 못했고 그로 인해 어릴 적 정신적 상처를 받으며 커왔다. 온전한 엄마의 사랑을 느끼지 못했고, 성인이 된 후에도 간신히 추스르며 살고 있는 중이다. 그러던 어느 날, 이부동생 지유(박소이)를 떠맡게 되며 일은 커진다. 취업 준비로 제 앞가림도 힘든 상태인 유미는 아이를 돌볼 수 없자, 엄마의 친구이자 호텔 사장인 경선(박지영)을 찾아가 돌봐줄 수 있는지 부탁하고자 한다.
영화 <호텔레이크> 스틸컷호텔은 5년 전 엄마가 마지막으로 머물던 곳으로 유미도 이 호텔에서 살았던 기억이 있다. 늘 엄마 친구 경선을 이모라고 부르며 잘 따랐고, 아들 산호가 부럽기도 했다. 사람들이 손가락질하며 미쳤다는 엄마 보다 매사에 당당하고 살가운 경선이 엄마였으면 하고 바랐던 적이 많았다. 그날도 오랜만에 찾아와 급작스러운 부탁에서도 불구하고 자매를 따뜻하게 맞아 준다.
오랜만에 돌아온 호텔은 그때 그대로 시간이 멈춘 듯했다. 고풍스러운 인테리어며 사람을 압도하는 기분까지. 한적한 시골 동네 분위기와는 달리 전체적인 음산함이 느껴진다. 들어오는 순간 숨 막히게 하는 중압감은 나선형 구조와 더불어 파놉티콘을 연상케 한다. 마치 천장 유리에 CCTV가 달린 것처럼 누군가가 지켜보고 있다는 섬찟한 생각을 떨칠 수 없게다. 파놉티콘은 중앙의 거대한 원형 감시탑이 둘레 객실을 감시하고 있어 가진 자의 지배가 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유미는 일거수 일족을 지켜보는 쪽이 사람인지, 귀신인지 헷갈리기 시작한다. 분명히 호텔에 누군가가 있다고 느끼지만 물증이 없어 의심만 늘어난다.
경선은 성수기에는 따로 알바를 쓸 정도로 바쁘지만 지금은 비수기라 호텔 메이드 예린(박효주) 한 사람이면 충분하다 했다. 한술 더 떠 유미에게 호텔 일도 배울 겸 더 있다 가라며 부담 없이 생각하길 바라고 있는 눈치다. 하지만 예림은 시종일관 쌀쌀맞았다. 술을 마시면 알 수 없는 말로 유미를 자극하기 일쑤였다. 싸늘한 눈빛을 가진 예린은 호텔이 "사람 돌아버리게 하는 그런 곳"이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내뱉는다. 과연 이 호텔에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말을 거는 듯한 405호
영화 <호텔레이크> 스틸컷모근 불안의 근원은 바로 405호다. 엄마와의 기억이 있는 곳이자 씻을 수 없는 공포가 선연한 이율배반의 공간이다. 유미는 지유에게 405호는 절대 가면 안 된다고 일러준다. 하지만 호기심 많은 지유는 기어코 숨바꼭질하며 객실, 지하실을 넘나들며 호텔 구석구석을 탐닉한다.
자꾸 이상한 일들이 일어난다. 유미는 자꾸만 환영과 환청을 듣는가 하면 거짓말하는 지유 때문에 신경이 날카로워진다. 유년 시절 가지고 놀던 인형 바니의 목이 잘려 있고, 객실 액자는 자꾸만 떨어진다. 기분전환할 겸 놀러 간 놀이공원에서는 지유는 보이지 않는 아줌마를 운운한다. 점점 유미는 공간이 뿜어내는 미스터리함에 빠져들게 된다.
영화는 한정된 공간에서 사람이 얼마나 변해가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호텔은 공포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이다. 모두가 갈 데가 마땅치 않은 사람들이 마지막으로 머무르는 곳이다. 지유는 보호자가 없고, 예린은 빚과 부양할 아들 때문에 돈을 벌어야 할 형편에 떠날 수 없다. 그야말로 발 들이면 빠져나갈 수 없는 늪 같다.
이는 폭설로 고립된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샤이닝> 속 오버룩 호텔과 유사성을 지닌다. 공간의 아우라는 미치지 않고서는 버틸 수 없는 막강한 힘을 지니며 관객을 히스테릭하게 만든다.
또한 프레임의 공포가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초래하는가를 입증한다. 어릴 적부터 유미는 엄마가 미쳤다는 부정적인 선입견을 들으며 컸다. 이 프레임은 동생 지유의 입을 통해 다시 한번 강조되는데, 반복적인 프레임이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력을 보여주고 있다. 때문에 성인으로 성장했음에도 유미는 도통 프레임에서 스스로 나오지 못하고 왜곡된 상황과 기억을 진실로 받아들인다. 이마저도 너무 힘겨워 피하고 마는데, 유독 경선의 말만 믿으며 의지하는 모습을 보인다.
또한 프레임의 공포가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초래하는가를 입증한다. 어릴 적부터 유미는 엄마가 미쳤다는 부정적인 선입견을 들으며 컸다. 이 프레임은 동생 지유의 입을 통해 다시 한번 강조되는데, 반복적인 프레임이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력을 보여주고 있다. 때문에 성인으로 성장했음에도 유미는 도통 프레임에서 스스로 나오지 못하고 왜곡된 상황과 기억을 진실로 받아들인다. 이마저도 너무 힘겨워 피하고 마는데, 유독 경선의 말만 믿으며 의지하는 모습을 보인다.
영화 <호텔레이트> 스틸컷이로써 <호텔레이크>의 후반부는 본격적으로 경선의 행동에 무게를 둔다. 과연 이모라고 불릴 정도로 유미와 가깝게 지냈던 경선의 정체가 드러나는 순간이다. 뒤틀린 모성과 지키고자 하는 모성의 상충은 호텔의 민낯을 보여준다. 하지만 촘촘하게 쌓아올린 복선이 후반부에 흔들리며 균형을 잃는다. 불쑥 나타나 이해를 바라거나 이마저도 설명 없이 끝나 버려 아쉬운 감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텔레이크>는 장점이 많은 영화다. 가뭄의 단비처럼 사라져가는 한국 호러 영화의 명맥을 잇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아역부터 차근차근 연기 내공을 다져 온 이세영의 단독 공포영화다. 차세대 호러퀸 자리를 예약했다 할 정도로 깊고 넓은 심리를 표현해냈다. 여성 감독과 배우로 구성된 여성 호러 영화로 이세영의 복잡한 감정연기로 생명력을 불어 넣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박지영과 박효주의 탄탄한 연기력은 팽팽한 삼각구도를 만들며 국산 호러의 퀄리티를 한 단계 격상시켰다. 앞으로의 행보가 기대되는 아역 박소이도 한몫한다.
평점: ★★★
한 줄 평: 국산호러영화의 명맥을 잇는 여성영화의 신호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