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와 메시지를 잡은 두 마리 토끼
<헌트>는 아무런 정보도 없이 시작한다. 왜 이들에 낯선 영지에 끌려오게 되었는지, 무기를 나누어주면서 인간 사냥의 먹잇감 되었는지 의문투성이로 시작한다. 영화 <큐브>, <메이즈 러너>가 생각난다. 과연 그 영화들과 비슷하게 전개된다고 생각하던 찰나 뒤통수가 서늘해진다.
누가 봐도 주인공이라고 생각했던 인물들이 자기소개도 없이 갑자기 제거된다. 그것도 매우 빠르게. 과연 이 영화 어떤 식으로 흘러갈지 예상할 수 없다. 우리에게 꽤나 알려진 배우들이 하나둘씩 사망하고, 진짜 주인공은 30여 분이 흐른 후에나 등장한다. 초반 슬쩍 비추었지만 주인공처럼 보이는 인물에 가려 주목하지 않았던 사람이다.
모두 평범한 일상을 보내고 있던 중 이곳에 끌려온 것이다. 입에 재갈이 물린 채 깨어나 보니 들판에 큰 나무 상자가 있고, 상자를 열었더니 온갖 무기가 있었다. 그리고는 인정사정없는 사냥이 시작된다. 깨어나자마자 쫓아오는 죽음 앞에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무기를 들어야만 한다. 아군인지 적군인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남을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을 수 있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그들이 가진 이성은 대체로 필요 없다. 살기 위한 본성만 있을 뿐이다. 이들에게 무슨 사연이 있는 걸까. 살아서 집에 돌아갈 수는 있을까?
영화 <헌트>는 저예산 고효용 영화로 유명한 블룸하우스의 신작이다. 미국에서는 정부 비판 이슈 때문에 개봉이 미뤄지다 연이어 총기 사고로 개봉이 취소될 위기였고, 결국 코로나 사태 직전에 개봉하게 된 사연 많은 영화다. 다소 고어적인 장면이 많지만 주도적인 여성이 등장해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시기가 좋았다면 흥행에 성공했을 것이다.
영화는 단순히 보면 무자비한 사람들이 사람을 사냥하는 폭력적인 영화로 보인다. 하지만 짧은 러닝타임 안에 정치, 사회적인 문제를 향한 날카로운 비판을 담아내고 있다. 따라서 사회 엘리트층이 자신과 반대되는 성향, 겉과 속이 다른 인간의 민낯을 보여준다. 이른바 돈, 지위를 가진 특권층이 영지 게이트라고 불리는 인종청소를 아무렇지도 않게 즐긴다. 인종, 환경, 난민, 젠더, 계급 문제를 지지하는 특권층의 비뚤어진 자의식을 비판하고 나섰다. 타성에 젖어 본질을 잃지 않았나 한 번 쯤 돌아보는 계기가 된다.
이 모임의 리더인 아테나(힐러리 스웽크)는 무자비한 인물로 그리스 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전쟁의 신 아테나와 이름이 같다. 이들은 사회의 쓰레기를 청소하는 청소부라 자처하는 미국 민주당 엘리트 지지자들이다. 인터넷에서 자신들을 비판하는 글을 썼거나 발언했기에 앙갚음을 하고 있는 것이다. 표적은 미국 공화당 지지자들로 와이오밍, 미시시피, 플로리다 출신 사람들이다.
최근 트럼프 체제와 총기 사용에 대한 날선 풍자가 느껴진다. 사건을 파악해 가던 중 분노한 크리스탈(베티 길핀)은 어릴 적 엄마가 들려준 '토끼와 거북이'이야기를 변주한다. 자신만만 하다가 거북이에게 추월당해 1등을 놓친 토끼를 항상 이기는 토끼 이야기로 바꿔 들려준다. 그리고는 아테나와 일대일 진검승부를 벌인다.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의 재해석도 돋보인다. 아테나는 크리스탈은 동물농장에 나오는 스노우볼이라고 부른다. 스노우볼은 독재에 맞서 싸우는 이상주의자로 앞을 예견하는 지혜를 가졌다. 소설 속에서는 쫓겨나는 진정한 혁명가의 자질을 갖춘 인물이지만 영화에서는 다른 결말을 맞이한다.
영화는 민주당과 공화당의 끈질긴 싸움을 인간 사냥에 비유해 녹여냈다. 하지만 현실은 누가 옳고 그른지는 끝나지 않아 씁쓸함을 남긴다. 총을 들어 나를 지킬 권리가 정당방위라면 쫓는 사람도 마찬가지인 거다. 현대에서 사라지지 않는 계급은 자본주의에서 더욱 심하다
결국 극단적인 오해와 오인은 큰 불행을 낳는다. 아테나는 스펠링이 다른 크리스탈을 오인해 데려왔다. 사소한 오인은 오해가 돼 아테나의 신변을 위협하게 된다. 쉽고 빠른 정보의 바다에는 가짜 뉴스도 있다는 것을 간과한 결과다. 그래서 SNS는 신중하게, 섣부른 판단은 자제해야한다.
따라서 <헌트>의 속 뜻을 안다면 마냥 웃을 수만은 없다. 그야말로 이판사판. 어느 한 쪽이 양보하지 않을 경우 양쪽 모두 파국으로 치닫는 치킨게임이다.
평점: ★★★★
한 줄 평: 극단적인 오인과 오해가 낳은 치킨게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