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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장cine 수다

<아버지를 위한 노래> 여기가 내가 있어야 할 곳

by 장혜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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숀 펜과 파올로 소렌티노가 만난 영화 <아버지를 위한 노래>는 음악, 색감, 예술적 스타일이 빛나는 영화다. 국내에는 최근 <그때 그들>, <유스>, <그레이트 뷰티>보다 덜 알려진 영화. 그러나 진흙 속에 숨은 진주처럼 은은한 빛을 내는 작품이다. 파올로 소렌티노는 대표적인 비주얼리스트기도 하다. 비주얼에만 신경 쓴다고 얕게 봐서는 안된다. 깊이감 있는 메시지가 외면과 내면 모두를 뒷받침하는 작품이 많다.


이 영화 또한 삶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과 유머, 해석이 돋보인다. 인생을 비유한 주옥같은 대사들의 향연만으로도 책 한 권을 읽은 거 같다. 원제는 This Must Be the Place, 토킹 헤즈의 노래 제목이기도 하다. 데이비드 번이 직접 자신을 연기하고 노래도 불렀다.


영화 <아버지를 위한 노래> 스틸컷


그래서 한국 제목보다 원제목이 더욱 와닿는다. 바로 내가 있는 이곳이 내가 있어야 할 곳이라는 자존감 말이다. 죄책감으로 자신을 학대하던 한 남자가 마흔이 넘어 드디어 어른이 되는 성장영화며 로드무비다. 손 펜 자체가 영화가 되어버린 독특한 콘셉트도 칭찬할만하다. 차근차근 소극적으로 할 말 다 하는 셰이엔의 말소리에 귀 기울이다 보면 어느새 영화는 끝나있고 여운은 오래도록 남아 있다.


지금은 활동하지 않는 락스타 셰이엔(숀 팬)은 짙은 화장과 부스스한 헤어스타일로 자신을 숨긴다. 한때 잘 나갔으나 자신의 노래 때문에 청년 둘이 자살하자 심한 충격을 받고 은둔생활 중이다. 겉으로는 세 보이지만 우울증에 걸린 것 같이 매사에 부정적이다.

영화 <아버지를 위한 노래> 스틸컷

느릿느릿 한 걸음걸이와 어눌한 말투, 정치된 듯한 무표정으로 외톨이라고 하기엔 은근히 주변에 사람이 많은 신비로운 인물이다. 아내 제인(프란시스 맥도맨드)과 드넓은 집에 살고 있다. 다 갖추고 있는 것처럼 완벽해 보이지만 물을 채우지 않은 수영장 같다. 집이 원래의 목적을 상실한 듯 공허해 보인다. 자신을 사랑해 주는 따스한 아내도 마찬가지다.


어느 날 30년 동안 절연한 아버지의 임종 소식에 고향으로 돌아간다. 부모는 자신의 효도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15살 이후로 아버지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철저히 오해하며 살았다. 말 한마디로 물어보면 되었을 일을 30년이 지나서야 궁금해졌다. 그것도 이제 아버지의 대답을 듣지 못할 때가 돼서야 말이다. 뒤늦게나마 아버지가 궁금한 셰이엔은 그저 아버지의 노트를 들고 무작정 떠날 수밖에 없었다.



유대인이었던 아버지는 평생 나치 수용소에서 자신을 모욕한 전범을 찾는데 보냈음을 알게 되었다. 팔에 새겨진 숫자들이 이제야 이해된 것. 아버지의 복수를 아들이 대신 거행하게 된다. 셰이엔은 무엇에 이끌리듯이 나치 전범 '알로이즈 랑'의 흔적을 찾아 나선다.


"어떤 일이 있어도 난 네 인생의 일부란다"


그의 아내, 손녀와 증손자, 그리고 마지막으로 알로이즈 랑을 차례대로 만난다. 아버지의 사그라지지 않았던 복수를 셰이엔은 아름다움으로 승화했다. 그래서 더욱 마침내 알로이즈 랑을 만나 들었던 이야기가 인상적이다. 인생의 진정한 승자는 아마 모욕 준 자에게 평생을 바쳐 복수한 진정한 인내라는 것을. 그것도 아니라면 위대함이라 말할 수 있는 무엇이라고 말이다.


길 위해서 셰이엔은 어느 순간 복수보다 다 자라지 못한 내면의 어린아이를 발견하기에 이른다. 그 나이 먹도록 자라기를 거부한 다 큰 어른 아이. 인생은 원래 이런 거야라고 체념해 버리는 순간 어른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두려움을 느끼지 말아야 할 때를 선택해야 하기도 하고, 아버지란 어떤 이유에서건 자식을 사랑할 수밖에 없다는 진실 말이다.


영화 <아버지를 위한 노래> 스틸컷


너무 늦게 알아버린 아버지의 깊고 넒은 마음을 통해 셰이엔은 늦깎이 어른이 된다. 사실 그가 늘 끌고 다니던 캐리어는 메이크업 도구로 보이는 짓눌린 평생의 짐을 상징한다. 그렇게 타지 못하던 비행기를 다시 타고, 어른들의 전유물 같던 술과 담배도 하게 된다. 두꺼운 메이크업으로 가렸던 진심, 길었던 머리를 깔끔하게 정리하고 민낯으로 환히 웃으며 집으로 돌아왔다.


그렇다 인생은 지금부터 시작이다. 늦었다고 생각했을 때가 가장 빠른 법이다. 인생을 논하기에 반드시 늦은 때란 없다.


덧) 아버지를 위한 노래, 제목 너무 마음에 안든다. 아버지를 위해 노래를 부르지 않는데 은유라고 하기에도 좀 거리감이 있어 보인다. 심지어 셰이엔은 노래를 부르지도 않기에..



평점: ★★★★

한 줄 평: 과거의 상처를 딛고 진정한 어른이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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