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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혜령 Jun 16. 2020

<전망 좋은 방>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



※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


영화 <전망 좋은 방>은 영국의 문호 E.M 포스터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최근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으로 아카데미 각색상을 받은 제임스 아이보리 감독의 연출로 32주년 기념 디지털 리마스터링으로 국내 관객과 만나게 되었다. 작년 개봉한 아이보리 감독의 <모리스>와 함께 20세기 초 영국 상류층의 관습과 시대상을 엿볼 수 있는 클래식 걸작이자 E.M 포스터의 소설을 영화화했다. 



나이 지긋한 배우들의 젊은 시절을 한자리에서 만나볼 수 있는 흔하지 않는 기회다. 특히 열아홉 데뷔 작품인 헬레나 본햄 카터의 앳된 모습이 인상적이다. 그 밖에도 매기 스미스, 줄리안 샌즈, 다니엘 데이 루이스, 주디 덴치, 루퍼트 그레이브즈 등 화려한 출연진으로 관객을 사로잡는다.



낭만의 도시 피렌체에서 로맨스를 꿈꾸다

영화 <전망 좋은 방> 스틸컷



이탈리아 피렌체는 꽃의 도시라는 뜻으로 영어로는 플로렌스로 불린다. 독보적 예술 후원가 문 메디치 가(家)가 찬란하게 꽃피운 르네상스의 발자취는 이 도시의 여행자를 들뜨게 만든다. 영화 <전망 좋은 방>은 누구나 꿈꾸는 여행지의 아름다운 전망을 꿈꾸는 모든 이를 위한 영화다. 방에 들어와 여장을 풀기 전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뭐니 뭐니 해도 창밖을 바라보는 일일 거다. 단 하루를 묵더라도 창밖  풍경이 좋았으면 하는 바람은 여행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으로 봐도 좋다.


부품 환상을 품고 영국에서 사촌 샬롯(메기 스미스)과 여행 온 루시(헬레나 본햄 카터)는 기대했던 전망이 아니라 실망한 채 저녁 식사 시간에 전망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투덜거렸다. 하늘이 도운걸까. 이를 엿들었던  에머슨 부자(父子)가 방을 바꿔 준다는 게 아닌가. 그렇게 열정적인 몽상가 조지(줄리안 샌즈)에게 약간의 호감이 생긴 루시는  피렌체의 여행이 퍽 낭만적일 것 같아 들뜨기 시작한다.


영화 <전망 좋은 방> 스틸컷


그러던 어느 날, 혼자 도시를 탐방하던 중 크게 다투는 사람들에 놀라 기절한 루시를 우연히 본 조지가 응급처치하고 두 사람은 비밀을 공유하며 도시와 낭만에 관한 대화를 나눈다. 며칠 뒤 루시는 자석처럼 이끌리듯 조지와 격정적인 첫 키스를 나누지만 이 광경을 목격한 샬롯의 저지로 어색하게 된다. 샬롯은 루시의 보호 자격으로 따라온 여행의 책임을 느끼며 급히 영국으로 돌아가고, 루시는 조지를 잊고 약혼자 세실(다니엘 데이 루이스)과 행복한 미래를 꿈꾸기에 이른다.


하지만 세실은 루시가 생각했던 사람이 아니었다. 약혼자마저도 한낱 예술품처럼 소유하려는 사람임을 깨닫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루시는 직간접적으로 원하던 결혼이 아님을 알게 되나, 확실한 계기가 없어 무미건조한 날을 이어가던 중. 우연치 않게 에머슨 부자가 이사를 오며 이들의 관계는 정점에 이른다.



누구도 빼앗을 수 없는 자유의지

영화 <전망 좋은 방> 스틸컷


겉돌기만 하던 루시의 마음은 자꾸만 요동치게 된다. 소심하고 냉정한 세실보다 어딘가 나사 빠져 보여도 순간의 감성에 충실한 조지에게 이끌리던 루시. 그가 남동생 프레디(루퍼드 그레이브즈)와 테니스 친구가 되며 더 자주 마주치게 된다. 고민 끝에 루시는 세실과 파혼을 선언하고 자신의 마음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깨닫게 된다.


한 여름의 폭풍 같은 조지를 사랑할 것인가, 융통성 없는 이성주의자 세실과 결혼할 것인가를 갈등하던 루시는 파혼 선언 후 이유를 알리지 않은 채 그리스 여행을 추진한다. 아무래도 파혼이 알려져서 좋을 것 없어 재빠르게 그리스로 도피성 여행을 계획하게 된 것. 하지만 우여곡절 끝에 조지와 마음을 확인한 후 두 사람은 신혼여행으로 처음 만났던 호텔로 돌아온다.



영화 <전망 좋은 방> 스틸컷


영화 <전망 좋은 방>은 르네상스의 진원지인 피렌체에서 맛본 자유와 19세기에서 20세기로 넘어가는 과도기의  영국 사이을 루시에게 투영했다. 영국 상류층의 모순된 권위의식에 우아한 일침을 가한 주제의식은 신뢰, 진실, 아름다움, 사랑보다 더 값진 자유라는 인간 본성의 깊은 이해를 그려냈다. 나에게 꼭 맞는 사람을 찾는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100년이 지났지만 공감하게 만드는 위트가 있다.


한 폭의 명화를 감상하는 듯한 아날로그 감성, E. M 포스터 특유의 수채화 같은 문체를 풍부한 미장센으로 옮겨왔다. OST도 빼놓을 수 없는데 베토벤과 슈베르트는 물론 푸치니의 오페라 [잔니 스키키]의  '오, 나의 사랑하는 아버지'가 주제곡으로 쓰였다. 단, 클래식한 로맨스 영화의 고전미가 인상적이지만 화려하고 빠른 전환이 대세인 요즘 영화에 길들여졌다면 다소 평이하게 느껴질 수 있겠다.




평점: ★★★★

한 줄 평: 헬레나 본햄 카터의 충격적인 청초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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