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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혜령 Jul 03. 2020

<인헤리턴스> 남겨주지 말아야 할 유산

들춘다고 해결되는 건 아님

요즘 극장가는 공포, 스릴러 봇물이다. 몇 해 부터 계절과 무관하게 장르 영화가 각광을 받기 시작했고 그 틈을타 소리소문 없이 한 편의 가족 스릴러가 개봉했다. 릴리 콜린스와 사이먼 페그의 이름값으로 일단 호기심을 끈다. 유쾌하고 긍정적인 이미지로 우리나라에 알려진 사이먼 페그는 긴 머리와 덥수룩한 수염과 깡마른 체구로 30년 동안 감금된 미스터리한 남성을 연기했다. 또한 백설 공주의 이미지로 친숙한 릴리 콜린스가 책임감 강한 아처 가문의 맏딸로 분했다. 


그러나 릴리 콜린스와 사이먼 페그의 호연에도 불구하고 진실이 밝혀지는 과정이 섬세한 심리 갈등보다 무성의한 대사로 제시되어 기대감을 무너트린다. 제목이 유산인 만큼 상속에 관한 가족 간의 치열한 싸움을 예상했는데 미국 상류층의 추악한 과거와 마주한 진실이었다. 


아버지의 죽음, 그리고 유산의 비밀

영화 <인헤리턴스> 스틸컷

지방검사로 잘나가는 로렌(릴리 콜린스)과 재선을 노리는 남동생 윌리엄(체이스 크로포드)에게 갑자기 날아온 비보로 혼란스럽다. 아버지(패트릭 워버턴)가 심장마비로 사망한 후 유산을 남겼다는 것. 하지만 아버지의 친구이자 변호사 헤롤드(마이클 비치)는 장녀 로렌을 불러 따로 유산을 제공한다. 그 유산은 의문의 상자였고  USB를 통해 그 실체를 알게 된다. 영상 속 아버지는 로렌이 어릴 적 놀던 아지트에 비밀이 묻혀 있다며 미안하다는 말로 의문만을 남긴다.


그곳에 가보니 실제 지하 벙커가 있었고, 그 안에는 신원불명의 남자가 쇠사슬로 감금되어 있었다. 죽은 줄 알았던 남자는 놀랍게도 살아 있었다. 자신을 모건 워너(사이먼 페크)라고 소개하며 빛 한 줌도 들어오지 않는 공간에서 30 년을 살았다고 고백한다. 믿을 수 없는 로렌은 확실한 증거를 가져오라며 추궁하고 모건은 바로 어제 일처럼 30년 묵은 이야기하기 털어 놓기 시작한다. 


말인즉슨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사람을 죽인 후 은폐했다는 충격적인 말을 듣는다. 그리고 목격자인 자신을 믿지 못해 지하벙커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는 고백이다. 충격적인 과거는 이게 끝이 아니었다. 아버지는 어머니(코니 닐슨)니 말고 다른 여성과도 사랑에 빠졌는데 이복동생까지 있다는 소리를 듣는다. 이게 무슨 마른하늘에 날벼락이란 말인가.


자식들에게 엄격했지만 늘 품행이 바르고 존경스러웠던 아버지의 믿을 수 없는 과거가 드러났다. 이런 혼란스러움도 잠시, 장녀로서 가족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앞서자 모건의 요구 사항대로 따르기 시작한다. 검사 출신이기에 단서를 능수능란하게 모았고, 모건의 고백의 사실여부를 확인하고 조금씩 믿기 시작한다. 그 과정에서 몇 번의 크고 작은 다툼이 있었지만 자신은 정의를 위해 싸우는 것이라며 자위했다. 올바른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니 죄책감 같은 것은 떨쳐버려도 좋다고 말이다.


차라리 알기 전으로 되돌아가고 싶다

영화 <인헤리턴스> 스틸컷

하지만 모든 사실을 숨긴 채 살아온 아버지의 치부를 직접 들추고 인정하기란 쉽지 않았다. 사람을 치어 죽이고 시체까지 묻어 사건을 은폐하려 했던 아버지, 그 친구이자 목격자를 감금하고 폭행한 아버지, 가족들 몰래 배다른 형제까지 낳은 아버지를 떠올리며 로렌은 분노한다. 하지만 검사라는 직업윤리에 따라 정의를 밝히는 좋은 사람이 될 것인가, 가족을 지키기 위해 모든 것을 덮을 것인가를 두고 첨예한 갈등을 벌인다.


결국 로렌은 모건의 설득에 넘어가 비밀을 누설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풀어주려 했지만 그 사이 동생과 어머니가 위험에 처하며 또 한 번의 국면을 맞이한다. 과연 아버지의 오랜 비밀인 유산을 지켜낼 수 있을까. 사회의 명망과 개인의 양심이 한순간에 무너진 찰나 걷잡을 수 없는 진실은 연타로 몰려온다.


영화는 자연스럽게 <양들의 침묵>의 렉터와 스탈링을 떠올릴법하다. 여성과 남성, 청년과 노년의 대결구도로 느껴지게 한 시도가 엿보인다. 하지만 두 사람의 심리 대결은 긴장된 분위기나 스릴이 느껴지지 않는 연극적인 형식으로 진행된다. 한정된 공간에서 벌어짐에 따라 대사로만 유추해야 하는 한계를 잘 살리지 못해 아쉽다.


로렌은 혼자서 이 모든 비밀을 감내 해야 했다. 유일한 조력자는 본이 아니게 지하 벙커에 쇠사슬로 묶인 모건이었다. 적과의 동침으로  진실을 쫓아야만 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믿어야 할지 모르겠으나 엄청난 비밀을 혼자 감당해달라고 당부했기에 끝까지 외로운 싸움을 이어간다. 장녀의 무거운 짐이 유산의 비밀보다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따라서 <인헤리턴스>의 진실은 계속 묻혀있어야만 했다. 어떤 진실은 파내지 않았을 때라야 모두에게 이로울 때도 있는 법이다. 성공한 미국 상류층의 민낯을 들추었다. 자신이 세운 가치관에 맞는다면 부도덕한 일도 기꺼이 옳은 일이라 믿어버리는 이중성을 지적한다. 좋은 사람이란 때와 장소, 관계에 따라 달라지며 누구도 좋다 나쁘다 단정 지을 수 없는 자질이다. 하지만 스스로 그렇게 믿음으로써 좋은 사람이라 착각에 빠지게 된다.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은 그저 한 끗 차이일 뿐이다. 좋은 영화와 나쁜 영화도 이와 다르지 않다. 


평점: ★★

한 줄 평: 아부지 이런 유산을 물려주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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