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혜령 Jul 10. 2020

<밤쉘: 세상을 바꾼 폭탄선언> 이것은 시작에 불과하다

아직도 현재진행형인 이야기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


여성이 승진하기 위해 상사에게 잠자리를 제안받는 일은 알면서도 쉬쉬하는 업계 관행 중 하나였다. 부당하고 안 되는 줄 알면서도 많은 여성들이 커리어를 위해 기꺼이 수긍한다. 여기서 '기꺼이'란 말은 긍정이 아니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평생 원하는 목표에 도달할 수 없으니까 어쩔 수 없는 수락이다. 거절하면 안 되냐고? 거절하면 좌천당하거나 다시는 방송계 근처에도 발 들일 수 없을지도 모른다. 위험한 도박인 줄 알면서도 여성들은 선택권이 많지 않았다. 여성의 성공 야망 앞에서 불안감을 좀 먹고 자란 권력은 그동안 사회 중요 자리를 차지했다. 


영화의 의도를 함께 체험하다

영화 <밤쉘: 세상을 바꾼 폭탄선언> 스틸컷

영화 <밤쉘: 세상을 바꾼 폭탄선언> 은 폭스뉴스의 회장 로저 에일스(존 리스고)의 성적 농담과 섹스 스캔들을 폭로한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었다. "네 충성심을 증명해 봐"라는 로저의 말에 수많은 여성들을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이 투쟁은 당시 미디어계 최초의 직장 내 성희롱 사건이었다. 하비 와인스타인 사건보다 앞서 일어났다는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후 일어나는 미투(Me too) 운동의 트리거가 되기 때문이다. 영화 제목인 밤쉘의 다중적인 뜻처럼 다른 곳에 불씨를 불어 넣은 셈이다. 밤쉘은 폭탄선언, 놀랍고도 충격적인 이야기, 매력적인 금발 미녀를 지칭한다. 이는 1차 세계대전 당시 폭탄 겉면에 유명 배우의 그림이 그려져 있던 것에서 유래되었다. 


영화는 빠른 템포와 엄청난 지식의 향연, 수많은 인물들로 채워진 영화는 폭스뉴스의 분위기를 전달하는 데 성공한다. 특히 초반부 메긴 컬리가 방송을 진행하듯 폭스뉴스를 소개하는 장면은 <빅쇼트>에서 마고 로비가 서브 프라임 모기지를 설명하는 방식을 그대로 옮겨왔다. 


시청자를 향해 자극적으로 겁주는 폭스뉴스처럼 내내 줌인, 아웃하며 흔들리는 카메라 워킹이 의도적이다. 벽에도 귀가 있으므로 항상 조심해야 하는 방송국의 속성을 그대로 체험할 수 있다. 마치 카메라(관객의 눈)가 그들의 일상을 염탐하는 기분이 영화 내내 유지된다. 폭스뉴스의 감시체제 아래 여성들은 로저를 옹호하라는 강요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이해 가는 상황이다.


거기에 실존 인물과 가상의 인물을 조합해 실화의 무게감을 더한다. 세 여성의 존재는 폭스뉴스에서 떠올랐다 사라졌던 수많은 여성들을 대변한다. 메긴 켈리(샤를리즈 테론)는 높이 떠 있는 별, 그레천 칼슨(니콜 키드먼)은 지는 별, 케일라 포스피실(마고 로비)은 떠오르는 별이다. 


부당함을 느꼈다면 혼자서 끙끙대지 말 것


영화 <밤쉘: 세상을 바꾼 폭탄선언> 스틸컷

러닝타임 내내 세 여성이 느끼는 부당함을 온몸으로 보여준다. 먼저 대선후보 토론회에서 트럼프와 설전을 벌인 폭스뉴스 간판 앵커 메긴 켈리의 상황을 전한다. 그녀는 트럼프의 트위터 때문에 화제의 중심에 선다. 로저가 방패막이가 되어 줄 것 같았지만 어떻게든 자신을 이용하기 바빴고, 대선의 가십거리로 전락하며 신변의 위협을 느낀다.


한편, 한때 잘 나갔으나 지금은 좌천된 폭스 뉴스의 또 다른 앵커 그레천 칼슨은 조심스럽게 고소를 준비하고 있었다. 하지만 언론 권력의 제왕이라 불리는 로저를 상대로 한다는 건 계란으로 바위치기고, 무너트릴 수 있는 방법은 소리 소문 없이 자료를 모으는 것이라고 판단한다.


마지막으로 폭스 방송에 입사한지는 얼마 되지 않았으나 야망이 큰 젊은피 케일라 포스피실은 로저의 방에 들어갔다가 봉변을 당한다. "너는 TV 상품이야"라며 치마를 들어 올리게 해 수치심을 유발하는 장면은 권력의 추악함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렇게 세 여성의 폭탄은 언제 터져도 이상할 것 없이 계속해서 과열되고 있었다. 


영화는 세 여성이 폭스에서 겪은 부당한 처우를 다루고 이를 개선하기 위해 연대하는 모습을 다룬다. 건조한 방식으로 사건을 그대로 보여주며 감정에 호소하지 않는다. 방송판 <스포트라이트>, 영화계의 하비 와인스타인 사건에 버금갈만한 엄청난 성 스캔들을 폭로하고 있다. 


영화의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여성 앵커를 성 상품화해 시청률을 올리는 상황이었다. 뒤꿈치 피가 날 정도의 킬힐을 신고, 몸매 교정 속옷을 착용하고, 짧고 깊게 파인 의상으로 치장하는 앵커들의 대기실이었다. 바지는 절대 안 되며 금발이면 금상첨화였다.

영화 <밤쉘: 세상을 바꾼 폭탄선언> 스틸컷

폭스뉴스 여성들은 일하기 위해 자신을 잠시 잃어버려야 했다. 여성들은 신체 노출 강요에 심리적 압박을 받고 신체를 구속당한다. 마치 자신의 몸이 폭스뉴스의 재산인 것처럼 말이다. 정체성과 정치색도 숨겨야 했던 수많은 일화는 케이트 맥키넌이 맡은 제스를 통해 대변된다. 


때문에 현재진행형인 영화 속 이야기에 당신의 용기가 필요하다. 썩어 빠진 생선 머리를 바로 제거하지 않으면 몸 전체가 썩어 꼬리까지 쓸 수 없는 쓰레기로 전락하기 때문이다. 왜 내가 당하지 않았어도 연대하는지, 나와 가까운 지인, 딸, 언니, 친구, 그 누군가에게 부메랑처럼 돌아올 수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부당하다고 느꼈을 때 참지 않고, 혼자 하기 힘든 일은 함께 힘을 모으는 것이 필요하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에 이길 수 있는 방법이자 최소한의 예방법이다. 지금 당장은 힘들고 두려워 두 눈을 질끈 감을지 모른다. 하지만 당신의 침묵이 누군가의 상처가 되지 않기 위한 자성의 움직임은 필요하다. 그 날갯짓은 골리앗을 이길 수 있다.





평점: ★★★

한 줄 평: 아직도 현재진행형인 이야기


매거진의 이전글 <너와 파도를 탈 수 있다면> 대중성과 예술성을 잡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