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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혜령 Jul 13. 2020

<스왈로우> 이식증에 걸린 여성의 충격적인 과거

그리고 치명적인 아름다움

<스왈로우>는 타나토스가 추구하는 파괴 본능을 신체로 가져와 바디 호러의 심리적 공포를 보여주는 영화다. 프로이트는 죽음의 본능을 타나토스(Thanatos)로 의인화해 파괴 본능을 설명하기도 했다. 그는 생물체가 무생물체로 환원하려는 본능이며 공격적인 행동을 통해 삶과 죽음이 중화되거나 대체된다고 봤다. 따라서 삶은 죽음의 순환을 통해 실존함을 깨닫는다.


젠틀한 남편 리치(오스틴 스토웰)와 그림 같은 집에서 사는 사랑스러운 아내 헌터(헤일리 베넷)는 무엇 하나 모자랄 것 없는 행복감에 젖어 있다. 최근 남편의 승진과 더불어 시부모가 사준 집에서 새의 지저귐을 듣고, 화단을 가꾸는게 마냥 좋은 가정주부다.

영화 <스왈로우> 스틸컷

완벽한 결혼 생활을 꾸리고 있던 어느 날, 헌터의 임신을 하게 된다. 그 후 시부모는 관심을 넘어 과도한 참견으로 헌터를 불안하게 만든다. 산모의 건강보다 더 중요한 것들이 있다며 통제하려 들자 내심 불편하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욕실용품 판매원이었던 헌터는 결혼으로 신분 상승했다고 믿었으나 안정감은 그리 오래가지 않는다. 알 수 없는 불안감은 물건을 목구멍으로 넘기며 해소되고 있었다. 


시작은 작고 예쁜 구슬이었다. 구슬이 식토를 타고 몸속을 여행하는 이물감이 은근한 쾌감을 부른다. 그 후부터 바늘, 돌, 압정, 배터리 등 먹어서는 안 되는 것들을 삼키며 스스로 존재를 증명하려는 욕망이 커진다. 결국 병원 신세를 지게 되고, 임신 중인 아이까지 위태로워진다.


하지만 남편과 시부모는 자신보다 아이를 걱정하는 태도를 보인다. 남편은 겉으로는 사랑한다고 말하나 헌터를 수치스럽게 생각한다. 결국 아내마저도 진열하기 좋은 수집품에 불과할 뿐이라는 남편의 속내를 알아차리고 실망과 공포 그 자체다. 강이 내려다보이고 채광이 집은 한순간에 벗어날 수 없는 유리 감옥으로 전락한다. 


때문에 헌터는 은근한 무시로 일관하는 남편과 시부모 사이에서 오로지 통제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의 몸일 뿐임을 깨닫는다. 자신을 하나의 인격체로 대해주지 않고 대를 잇기 위한 도구로만 보는 사람들에게서 벗어나고 싶은 충동에 휩싸인다. 

영화 <스왈로우> 스틸컷

그렇게 영화는 여성의 전형적인 모습과 관습을 파괴함으로써 존재감을 확인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완벽한 아내, 며느리, 엄마, 자식이어야만 했던 여성의 잠재된 트라우마를 세상 밖으로 끄집어낸다. 여성으로 태어나 임신과 출산을 강요당하고 이에 불안을 느끼는 속내를 들여다본다. 관습화된 가부장제를 벗어나려는 시도를 위험천만한 목 넘김으로 보여준다.


이는 감독 카를로 미라벨라 데이비스의 가족사에 영감을 받았는데, 1950년대 불행한 결혼생활을 버티던 할머니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때 할머니가 얻은 손빨래 집착 증세로 정신 병원 신세를 지게 되었다고 털어놓았다.


때문에 사회가 용납하지 못하는 기형적 태생의 헌터가 어머니가 아닌 아버지를 찾아가는 장면은 뚜렷한 성장 기재로 보인다. 그동안 헌터는 소리만 요란할 뿐 깡통처럼 텅 비어 있었다. 텅 빈속을 물건들로 채우려고 했다. 실제로 삼키다라는 뜻의 스왈로우(swallow)의 대상은 음식, 먹지 못하는 물건, 그리고 감정일 수도 있다. 대한민국 어머니들이 오래도록 앓아온 화병(火病)도 헌터의 병리적 증세와 닮아있다. 감정을 밖으로 토해내지 못하고 안으로 꾹꾹 눌러온 결과는 마음의 병으로 이어지고 만다.

영화 <스왈로우> 스틸컷

헌터는 작은 것에서 시작해 점차 날카롭고 큰 것을 삼키며 중독되어 간다. 이런 행동을 이식증(異食症)이라고 하는데 만 1 세, 2 세 사이에 나타나며 아동기 상태에서 스스로 완화된다. 하지만 헌터의 이식증은 감정의 변화로 생긴 노이로제 해석된다. 혼자서 비극적인 가정사를 행복한 결혼 생활로 극복하려 했지만 우여곡절 끝에 스스로 극복하려 한다. 그 결심을 행동에 옮겼던 화장실을 나와 유유히 군중 속으로 섞이는 마지막 장면은 자존감을 획득한 여성의 자립과 희망을 조심스럽게 다독인다. 너의 탓이 아니라고,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냐고 말이다.





평점: ★★★

한 줄 평: 헤일리 베넷의 치명적인 아름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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