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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혜령 Jul 24. 2020

<팬데믹> 지구상에 남은 마지막 여성의 이야기



사실 <팬데믹>이란 제목 때문에 코로나 사태와 연관 지어 생각한 사람이 많을 것이다. 원제는 Only. 개봉 시기와 맞물린 코로나 바이러스를 업고 변경한 이 영화는 재난 영화가 아닌, 로맨스 영화 혹은 여성 영화로 바라볼 수 있다. 재난에서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연인을 보여주면서 여성의 자립과 행복추구권을 획득하는 과정을 서스펜스 형식으로 담아냈다. 



여성만 걸리는 바이러스, 불편한 진실

영화 <팬데믹> 스틸컷


의문의 국가 재난으로 인해 전 세계는 현재 팬데믹(대유행) 상태다. 눈처럼 떨어지는 재를 맞은 여성은 치사율 100%로 결국 죽고 만다. 감염 시 출혈을 시작으로 발작, 경련으로 전이되 결국 사망에 이르게 된다. 원인도 밝히지 못한 채 속수무책으로 여성들만 죽어 나간다. 이에 자구책으로 배아 프로젝트가 진행된다. 인구 감소에 따른 여성의 희생을 강요하는 처사는 바이러스와 함께 또 다른 위협이 된다. 


백신도 없이 집에 갇힌 에바(프리다 핀토)는 남자친구 윌(레슬리 오덤 주니어) 덕분에 400여 일을 버텨내지만. 결국 바이러스에 걸리고 만다. 영화는 국가비상사태 선포 400일 이후와 바이러스 출몰 1일을 교차 편집해 서서히 변화되는 에바와 윌의 관계를 보여준다. 


영화 <팬데믹> 스틸컷



처음에는 윌이 시키는 대로 뭐든 따랐지만 점점 햇볕 한 줌 허락하지 않는 윌의 강압에 지쳐간다. 윌도 그럴진대. 식량과 생필품을 구하러 나갔다가 무증상 보균자가 되어 에바를 헤칠 수 있어 스스로 각별한 주의를 요한다. 여자 친구를 지키기 위해 사력을 다하는 윌의 모습이 숭고하게 느껴질 정도다. 돌아오면 자외선 살균과 철저한 격리 조치로 에바와 거리두기를 실시한다. 물을 끓여 먹고 인스턴트 음식으로 연명하는 철두철미한 지침을 지킨다. 그러나 한 집에 살지만 만질 수도, 같이 있을 수도 없는 기묘한 동거가 길어질수록 에바는 점차 지쳐간다.


에바는 사랑하는 사람의 온기가 그립다. 따스하던 손길과 따사로운 햇살, 포커스에 담아내는 표정이 고프다. 절망적인 격리 생활 동안 그나마 위안이 되었던 건 생존자 익명 채팅방이었다. 우울증과 무기력감을 크지만 대화를 나누며 혼자가 아님을 위로받았던 것이다. 하지만 상황이 장기화 되며 마지막 생존자가 된 에바는 결국 무너지게 된다.


영화 <팬데믹> 스틸컷


팬데믹 상황의 정부는 여성을 숨겨주는 사람을 엄격하게 처벌하고, 여성이 자진 신고할 것을 종용한다. 안전한 기관에서 보호받는다고 포장하나 실상은 실험용 쥐에 불과함이 밝혀진다. 이마저도 잘 안되자 개인게 포상금을 지급한다.  포상금 때문에 눈이 벌겋게 달아오른 여성 사냥꾼(주로 남성)들이 득실대는 아비규환은 또 다른 위협이 된다.


이런 폐허 속에서 에바는 스스로를 통제할 권리를 되찾고자 한다. 에바처럼 내 몸의 주도권을 쥔 여성을 지지하는 마음이 커진다. 여성만이 걸리는 병이란 공포가 뼛속까지 전해지는 영화였다. 또한 감염 확인이 되어서야 만질 수 있는 역설이 마음 아프게 느껴졌다.




재난 상황과 시의적절한 타이밍

영화 <팬데믹> 스틸컷



무엇보다도 코로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시기에 공감할 수 있는 주제다. 지침을 어긴다면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한순간에 잃을 수도 있는 절박함이 피부로 느껴지는 영화다. 집 안에만 갇혀 사랑하는 사람과 어떠한 일도 함께 할 수 없는 현실. 같이 있으나 혼자 있는 고립감이 생생하게 전해진다. 무엇보다도 변치 않는 인간이 이기심이 전 인류를 자멸로 치닫게 할 수 있음을 깨닫게 만드는 영화기도 했다. 그러나 <컨테이전> 이나 <감기>처럼 빠르고 스펙터클한 전개를 원한다면 실망할지 모르겠다.



인간은 생존보다 삶의 가치 즉, 어떻게 사느냐가 더 중요한 동물임을 다시금 깨달았다. 피할 수 없는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삶과 몸의 주도권과 선택을 책임질 주체성을 획득하는 과정을 밀도있게 다루고 있다. 사회가 생명을 잉태할 수 있는 여성의 몸을 그저 출산의 도구로 만들어버린 반쪽짜리 미래는 영화 속에서만 보았으면 한다.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하는 비극은 영화 속에서만 일어날 뿐, 현실에서 일어나지 말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평점: ★★★

한 줄 평: 마지막 셀카의 묵직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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