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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혜령 Jul 24. 2020

<카오산 탱고> 태국 카오산 로드로 떠나는 스크린 여행


영화 <카오산 탱고>는 배낭여행족의 성지라 불리는 태국 카오산 로드를 아름답게 담아냈다. 김범삼 감독의 장편 데뷔작인 영화는 10여 년 전 박준 작가의 《온 더 로드, 카오산 로드에서 만난 사람들》을 읽고 취재차 떠난 경험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또한 다양한 영화와 책, 음악에서 영감받아 탄생하기도 했다. 먼저 <비포 선라이즈>를 연상케하는 아름다운 석양 풍경을 롱테이크로 담아 매직 아워를 그대로 저장했다. 태국의 연간 축제 중 하나인 송끄란 옮겨 시원한 물줄기에 그간 힘들었던 상념을 씻어 버릴 시간을 제공한다.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은 바로 음악이다. 누에보 탱고의 아버지인 아스트로 피아졸라의 음악들로 관객의 눈과 귀를 사로잡는다. 열대 새소리, 풀벌레 소리, 강물 소리 등 자연의 소리도 힘을 보탠다. 카오산 탱고라는 제목처럼 배낭여행객들의 천국 카오산 로드와 이국적인 정서의 탱고가 만나 황홀한 태국의 여름을 선사한다.


스크린으로 떠나는 대리만족감 높아

영화 <카오산 탱고> 스틸컷

영화 시나리오 작업 차 방콕에 처음 방문한 감독 지망생 지하(홍완표). 벌써 며칠째 있을지 모를 여행자 괴담을 쫓았으나 일말의 소득이 없다. 특별한 영감뿐만 아니라 마음속 풀지 못한 숙제를 해결하려는 것도 한몫하기 때문일까. 사실 현지 조사차 왔다는 것은 핑계일지도 모른다. 세상을 떠난 형과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형수의 첫 해외여행 장소라는 것도 무시할 수 없다. 지하는 여행 온 커플만 보면 눈에 밟힌다. 하물며 혼자 여행 온 할머니에게서도 형과 형수를 떠올리는 소년 같은 남자다.


한편, 겨울 동안은 태국에서 살다가 계절이 바뀌면 한국으로 돌아가는 하영(현리)은 게스트 하우스에서 본 지하를 또다시 만나게 된다. 노천카페에서 여권이 든 가방을 잃어버린 충격에 넋이 나간 지하를 진정시키며 자신을 도와 포터가 되어 줄 것을 부탁한다. 하영은 게스트하우스 일 말고도 정성스럽게 만든 부채를 내다 판 수익으로 보육원의 아이들을 돕고 있었다. 무슨 사연인지 모르겠지만 궁금증을 자아내는 하영에게 지하는 서서히 끌리게 된다

영화 <카오산 탱고> 스틸컷

두 사람은 태국 구석구석을 함께 다니며 가까워짐을 느낀다. 하영은 프로 여행러답게 관광객의 발길이 닿지 않는 숨은 명소로 안내한다. 그 정점은 암파와 수산 시장의 운하 보트였다. 해질녘의 노을이 만들어 낸 환상적인 장관, 고스란히 물에 비친 분위기. 그리고 완벽한 땅거미가 지고 반딧불이가 나타날 때까지의 찬란한 시간을 함께 한다. 


그러나 두 사람의 좋았던 관계는 하루아침에 어긋나게 된다. 그림 같은 석양을 바라보다 지하는 실언을 하게 되고 하영은 크게 상처받는다.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하는 지하와 거리를 두는 하영의 냉담함. 해명할 기회도 주지 않고 그저 피하기만 하는 하영을 붙잡아 이유라도 알고 싶었던 지하는 마침내 태국에 온 진짜 이유를 털어놓는다.


과거를 여행하는 남자 현재를 여행하는 여자

영화<카오산 탱고> 스틸컷

하영과 지하는 심연의 상처가 아물지 않아 아픔에 머물러 있는 사람들이다. 둘은 지극히 다른 방법으로 극복했기에 자칫 큰 오해를 불렀지만 한편으로는 상대방을 이해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 때문인지 하영은 여러 번 지하에게 의미심장한 말을 건넨다. 그중 가장 인상적인 것은 태어나 가장 먼저 분리되는 경험에 대한 말이다. 열 달 동안 아늑한 엄마 뱃속에서 나와 탯줄이 잘리는 분리 경험을 자전적인 상실의 아픔으로 에둘러 말한다. 훌훌 털고 극복하는 것 같지만 어딘지 어두워 보이는 하영의 캐릭터가 이해 가는 장면이었다. 


반면 지하는 아픈 과거를 언제든 꺼낼 수 있게 가장 가까이에 두고 고통으로 극복하는 유형이다. 형과 형수와 행복했던 순간 속에 갇혀 있으며 자주 눈물을 흘리는 모습으로 대변된다. 지하의 어둡던 표정처럼 상처를 완전히 드러내지 않을 뿐 누구나 트라우마를 간직한 채 살아간다. 


영화는 과거를 여행하는 남자와 현재를 여행하는 여자를 통해 깊은 감정의 터널 속으로 초대한다. 깊은 상처를 가진 인물의 극복 과정을 공감하며 삶의 긍정성을 되짚어 보길 기대한다. 한군데 정착하지 못해 떠도는 여자와 과거에 발목 잡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남자의 사연을 로드무비 형식으로 연출했다. 비극과 희극은 종이 한 장 차이인 것처럼. 지나간 과거보다 현재가 중요하다는 메시지는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는 깊은 절망 앞에 굴복하지 않기로 한 희망의 약속처럼 읽힌다. 

영화 <카오산 탱고> 스틸컷

태국 방콕 현지 분위기와 이국적인 감성,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여행족들의 메카 카오산 로드를 인상적인 음악과 함께 스크린에 소환했다. 지난 6개월 동안 예상하지 못한 전염병의 출연으로 나라 간 이동이 자유롭지 못한 시대 쌓여 있는 답답함을 잠시나마 해소할 수 있을 영화다.


몸과 마음이 지친 여행자를 위로하는 영화 <카오산 탱고>로 대리만족할 수 있는 기쁨이 크다. 일찍이 이병헌 감독의 페르소나로 이름을 알린 <힘내세요, 병헌씨>의 홍완표 배우와 재일 동포이자 <씨 오브 트리스>의 현리 배우의 케미가 돋보인다. 거기에 트라우마를 가진 두 남녀의 감정을 중심으로 상처를 극복하고 성장하는 모습까지 소소한 기쁨을 가져다준다. 삶과 죽음, 만남과 이별은 선택할 수 없는 우연의 산물임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평점: ★★★

한 줄 평: 삶과 죽음, 만남과 이별은 선택할 수 없는 우연의 산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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