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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혜령 Aug 13. 2020

<어서오시게스트하우스>'부부의세계'이학주의 다른얼굴

5학년 취준생에게도 볕들 날 있다!


계절학기 수강신청 전쟁에서 패배하고 기숙사에서도 밀려난 준근(이학주)은 트렁크 하나에 달랑 짐을 싸고 거리로 나왔다. 기숙사 생활, 공부, 취업 준비도 잘하고 있냐는 엄마의 연락에 차마 본가로 돌아갈 수 없었다. 정처 없이 양양 바다를 떠돌다 겨울 서핑을 즐기는 태우(신민재)를 만나 '어서오시게스트하우스'에 도착한다. 차마 빈방 때문에 온 게 아니라는 말을 잇지 못하고 우물쭈물하던 찰나, 숙식제공이 된다는 말에 준근은 알바를 자처한다. 


한편, 서핑 게스트하우스 알바가 서핑을 할 줄 모른다는 게 말이 되냐며 사장(김주헌)의 강습이 이어진다. 그것도 얼얼하기로 유명한 한 겨울 칼바람을 맞으면서 말이다. 그렇게 피나는 연습을 하던 중 서핑 매너가 나쁜 성민(김범진)과 시비가 붙어 버렸다. 하고많은 바다 중에 게스트하우스 앞에 캠핑카를 주차하는 것도 모자라 심기를 불편하게 만든다. 준근은 홧김에 양양 바다를 걸고 의기양양하게 서핑 배틀을 신청한다. 

영화 <어서오시게스트하우스> 스틸컷

하지만 현실은 보드에서 일어나지도 못하는 처지다. 때문에 대결은 한 달 후로 잡았다. 드디어 무기력한 준근에게도 한 달 후 대결이라는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 모든 게 안될 것 같아 자포자기하려던 찰나. 오기인지 객기인지 모를 한 달짜리 시한부 인생. 다시없을 버킷리스트처럼 서핑을 연마한다. 대결의 승자가 되기 위해서는 역시 좋은 스승이 있어야 되거늘. 양양 바다를 사랑하는 서퍼 태우, 유나(박선영), 원종(신재훈)이 합세해 스파르타식 개인 레슨이 시작된다. 과연 준근은 눈엣가시인 성민을 이기고 자존심을 회복할 수 있을까.


뭐든 열심히 해봤지만 잘 풀리지 않는 인생

영화 <어서오시게스트하우스> 스틸컷

영화는 내내 겨울 바다에서 고군분투하는 준근의 처량한 모습을 비추며 웃픈 현실을 보듬어 준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판에 박힌 말 한마디 보다 '파도 보는 눈이 있어야 괜한 체력 소진이 없다'라는 실질적인 조언이 필요하다. 그리고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와 함께 쓸어버리는 싶은 것은 자존심만이 아니라고 말한다. 근심도 슬픔도 막연한 미래도, 파도가 지나간 자리처럼 말끔히 새로 시작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전하는 유쾌한 위로의 선물 같다.


또한 네 캐릭터를 통해 각자의 고민들을 톺아보게 만든다. 준근을 통해서는 20대 취준생의 모습을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다. 스펙을 하나라도 더 쌓기 위해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무기한으로 미룬 채 공부나 자격증에 몰두하는 모습 말이다. 자소서를 쓰다 보면 어느새 자소설이되고, 취미와 특기는 누르면 나오는 자판기처럼 준비된 모범답안을 말해야 하는 정해진 인생이다. 행여나 면접이라도 볼 수 있다면 운이 좋은 거다. 면접은 고사하고 아예 지원서 자체가 통과되지 않는 경우도 수도 없이 많다. 취준생에게 스펙이란 반드시 쌓고 취업문을 뛰어넘어야 하는 인생 최대의 목표가 되어버렸다.


하기야 서핑만 해서는 살아갈 수 없는 현실은 이쪽도 마찬가지다. 그저 팔자 좋아 보이는 세 사람도 나름의 고충은 있다. 비수기에 모인 세 꼰대의 삶도 마냥 쉬운 건 아니었다. 한때 인터넷 쇼핑몰 사장이었던 유나, 대기업 마케팅팀 출신 원종, 사진과 영상으로 성공하고 싶은 태우도 치열하게 삶을 살아가다 양양으로 피난 온 사람들이다. 이리 치이고 저리 치여다 못해 바다로 도망 온 잉여자들이다. 


단지 일다운 일을 해보고 싶은 청춘

영화 <어서오시게스트하우스> 스틸컷

영화 속 준근은 수많은 알바를 전전했지만 일다운 일은 한 번도 해본 적 없다고 푸념한다. 때문에 비록 잘 풀리지 않았지만 일다운 일을 해본 세 사람이 부러운 건 당연하다. 시작도 못한 자신은 한없이 작아 보이기만 하고 인생의 실패자처럼 느껴진다. 그마저도 영영 기회가 오지 않을까 늘 초조하다. 


때문에 남들처럼 열심히 공부했는데 좋은 대학도 못 갔지, 대학가서도 열심히 학점관리했는데 성적은 잘 안 나오지, 서핑도 죽기 살기로 연습했는데 잘 못 타지라는 자격지심이 차오른다. 뭐든 죽도록 열심히 해도 좀처럼 늘지 않아 애가 타긴 마찬가지다. 맥 빠지고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 수밖에 없는 고난의 연속이다. 이 세상에서 나만 잘 안되는 것 같은 기분을 한 번이라도 경험해 봤다면 내 이야기처럼 느껴질 것이다. 


<어서오시게스트하우스>는 답답한 마음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한다. 좋아하는 일이 뭔지도 모르고 하고 싶을 찾지도 못한 청년 세대를 다독이는 유쾌한 시도다. 만화적이고 연극적인 컨셉과 재치 있는 캐릭터의 호연으로 즐겁게 볼 수 있는 영화다. 서퍼들의 천국이라 불리는 강원도 양양의 겨울 바다가 오랜 장마와 코로나로 인한 지친 마음을 시원하게 해주기 충분하다.

영화 <어서오시게스트하우스> 스틸컷

한편, 제23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관객상을 수상한 정도로 영화제에서 좋은 반응을 얻었다. 무엇보다 JTBC 드라마 [부부의 세계]에서 인상적인 악역 캐릭터를 연기한 이학주의 변신이 돋보이는 영화다. 지방 대학에서 취업을 미룬 채 학교를 떠돌던 5학년 준근으로 완벽히 변신했다. 한 번도 자신이 좋아하는 게 뭔지 생각해 보지 않았던 20대 취준생의 옷을 입었다. 어리바리한 모습과 취업과 서핑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태도까지. 그동안 보았던 이학주의 모습과는 다른 얼굴을 보여준다.




평점: ★★★

한 줄 평: 겨울 바다, 시원한 파도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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