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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혜령 Feb 02. 2021

<살아남은 사람들>홀로코스트 생존자 이후의 이야기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일까 그 숭고한 의미를 탐색하게 만드는 영화


코로나19도 벌써 1년째다. 전 세계인들은 오늘도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사람들은 어려울수록 서로 힘을 모았고 만나지 않았지만 여러 방법으로 만나고 함께 했었다. 최근 현재 팬데믹의 상황과 비교되는 영화를 만났다. 전쟁에서 가족을 잃어버리고 홀로 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 비극적인 시대를 겪은 홀로코스트 생존자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어떤 영화보다 따뜻하고 밝다. 전쟁, 상처, 고난을 겪고도 삶의 지속성에 대한 찬사라고까지 생각된다.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일까 그 숭고한 의미를 탐색하게 만든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가족과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남겨진 사람들이 서로 가족이 되어가는 과정을 잔잔하게 보여준다. 'F. 바르코니 주자'의 소설을 영화화했다. 영화는 오프닝의 출산 장면으로 시작해 '시작과 출발'을 축복한다. 엔딩 또한 예사롭지 않다. 봉준호 감독이 가장 아름다운 엔딩이라고 칭한 잉마르 베르히만 감독의 <화니와 알렉산더>의 엔딩이 떠오른다. 관람 작 중 제2차 세계대전을 소재로 가장 사랑스러운 영화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 헝가리는 혼란스러웠다. 소련의 스탈린 치하로 서슬 퍼런 공산정권이 장악하고 있었고, 홀로코스트 희생자들의 행방불명 소식이 해결되지 않았던 때다. 가까스로 수용소에서 살아 돌아온 사람들은 겉으로는 회복된 듯했지만 보이지 않는 그늘진 구석을 간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사람들은 남은 삶을 묵묵히 이어나갔다. 삶이란 참 질기고 집요해서 쉽게 끊어 낼 수 없는 어쩌면 태어난 사람의 숙명과도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영화 <살아남은 사람들> 스틸

한 소녀가 산부인과 의사 앞에서 섰다. 같이 온 할머니는 2년째 무월경 상태라며 걱정을 늘어놓는다. 의사 알도는 어머니도 생리가 늦었냐고 물었고, 소녀는 불같이 화를 내며 엄마는 아직 살아있다고 응수한다. 이 연관성 없어 보이는 질문과 답에서 유추할 수 있다. 소녀는 지금 굉장히 걱정스러워 누군가를 붙잡고 싶은 상태라는 것을 말이다. 소녀의 이름은 클라라(아비겔 소크). 부모님이 모두 포로수용소에 갔고 아직도 돌아오지 못한 상태다. 클라라는 부모님이 죽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때문에 부치지도 못할 긴 편지를 쓰는 여린 소녀다.     


의사 알도(카롤리 하이덕) 또한 홀로코스트 생존자로 가족 모두를 잃었지만 자신이 할 일을 수행한다. 병원과 집밖에 모르는 그는 고독하게 홀로 슬픔을 아끼는 과묵한 의사다. 그는 시종일관 궁금함을 참지 못하는 클라라를 진료하며 이렇게 말한다. "살아 있는 동안 배는 채워야 한다"라고 말이다. 떠난 사람보다 잘살아야 한다는 말이 어느 때보다 절실하게 느껴진다. 세상을 떠난 사람은 남겨진 사람들이 자기 몫까지 이어주길 간절히 바랐을 것이다.    


클라라는 극심한 불안 증세를 겪고 있었다. 악몽을 꾸다 깨어나거나, 늘 부정적으로만 바라보고 학교 공부도 멀리하며 친구들을 무시하고 반항을 이어갔다. 같이 사는 고모할머니(마리 나기)와 매일 같이 투덕거리는 것은 물론. 애정결핍도 커 무척 다루기 힘든 아이였다. 똑똑하지만 유별난 성격이라 학교에서 적응도 어려웠다. 하지만 유독 알도에게만은 마음을 열었고, 할머니는 며칠씩 알도의 집에 머물다 오길 허락하게 된다. 세 사람은 서로의 집에 클라라를 들이며 안정을 찾아간다. 삶은 자신도 모르는 채 또 다른 인연을 만들어 가는 기쁨이 되어간다.    

두 사람은 아버지와 딸이 되어주며 결핍을 채워 간다. 주변의 따가운 시선이 버겁지만 그보다 더 서로의 존재 자체만으로 힘이 되는 경험을 공유한다. 부모를 잃은 아이, 아이를 잃은 어른. 전쟁 직후 혼자가 되어버린 사람들이 서로 짝이 되어주는 경우가 흔했고, 클라라는 알도의 수양딸이 되어 행복한 나날을 보낸다.     

영화 <살아남은 사람들> 스틸

영화는 홀로코스트라는 겪은 사람들이 서로의 상처를 보듬고 회복하는 과정을 따스하게 그렸다. 독특하게도 나이 많은 남성과 소녀가 나오는 영화의 전형적인 클리셰를 비틀어 버린다. 부녀 사이라고 해도 될만한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우정, 사랑을 넘어 그 무엇을 공유한다. 아마 전쟁을 통해 만들어진 이루 말할 수 없는 상처를 공유했기 때문일 텐데, 순수하고 담백한 소울메이트로 그려진다. 고쳐 말하면 아슬아슬했던 순간도 있었지만 선을 넘지 않기 위해 절제하고 지켜주는 마음이 엿보였다. 때문에 시종일관 온기가 느껴지는 명도와 밝기는 알도와 클라라의 마음에 핀 꽃 한 송이처럼 순수하고 수줍게 다가왔다.     


따라서 생존했다는 것이 미안함과 수치심이 되지 않기 위해 최소한의 방법으로 애도한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살아남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그 몫까지 살아가야 할 무게를 지니고 살아갈 뿐이다. 그래서 직접 홀로코스트를 경험하지 않았더라도 최근 극심한 고통과 트라우마를 입었다면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요소가 넘친다. 마치 영화는 상처 하나하나를 살갑게 쓰다듬어주는 우리네 어머니의 마음처럼 치유력을 갖는다.


<살아남은 사람들>이 좋았다면 파리 테러로 가족을 잃은 삼촌과 조카가 가족이 되어가는 영화 <쁘띠 아만다>를 추천한다. 오늘도 행복을 찾아가는 아만다의 일상 회복을 주제로 아름다운 파리의 배경이 위로를 선사하는 힐링 영화다.


평점: ★★★★

한 줄 평: 따스한 치유력 힘들 때 보면 좋은 힐링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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