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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혜령 Feb 01. 2021

<북스마트> 세상은 책으로 배우는 게 아니야


북스마트(booksmart)란 학교에서 배운 지식은 많지만, 실전 경험이 없어 일상생활이 힘든 사람을 지칭하는 말이다. 배우 올리비아 와일드의 감독 데뷔작으로 우리나라에는 미드 [하우스], 영화 <라자루스>로 알려져 있다. 에밀리 역의 케이틀린 디버는 드라마 [믿을 수 없는 이야기]에서 성폭력을 겪은 여성을 맡이 내면 연기를 보여주었고, 비니 펠드스타인은 영화 <레이디 버드>에서 주인공 친구로 나와 인상적인 눈도장을 찍었다. 두 배우는 끈끈한 우정을 선보이는 것은 물론 귀여운 케미와 연기까지 다재다능함으로 중무장했다. 앞으로의 연기가 기대되는 두 배우가 만나 요즘 십 대들의 고민을 낱낱이 보여준다.    


영화는 고등학교 졸업식을 앞두고 망가질 대로 망가지고 싶은 아이들의 대환장파티를 주제로 하는 하이틴 무비지만 LGBT와 트리플 F 등급의 요소들을 가미해 근사한 매력을 뽐낸다. 배우 출신의 감독인 만큼 다양한 캐릭터를 다룬 인간 시장이자, 여성의 우정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에피소드가 공감대를 형성한다.    


영화는 둘도 없는 단짝이자 학교 모범생 에이미(케이틀린 디버)와 몰리(비니 펠드스타인)의 졸업식 하루 전부터 시작한다. 몰리는 세상이 자기 계획대로 되어야 직성이 풀리는 이기적인 리더형이며 예일대 입학을 앞두고 있다. 반면 에이미는 2년 전 커밍아웃을 했지만 아무도 고백하지 않아 키스도 못 해본 내향적인 공붓벌레이자 콜럼비아대 입학 전 아프리카로 봉사활동을 갈 계획을 세워 두었다.    

영화 <북스마트> 스틸

그렇게 죽어라 공부만 했던 고등학생 신분의 마지막 날. 이제는 아이비리그에서 꽃길만 걷게 될 거라 예상했던 것도 잠시,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된다. 학교에서 제일 성공한 인생이라 자부했던 것은 사실 엄청난 착각이었다. 둘은 열심히 공부만 했던 바보 개미였고, 한심한 루저라고 생각했던 애들은 놀면서도 명문대에 합격한 인싸 베짱이였음을 확인한다. 몰리와 에이미는 자기만의 세상에 빠진 인기 없고 재미없는 헛똑똑이였던 것이다.   

 

학기 내내 놀기만 하고, 낙제에 행실도 바르지 않았는데 어떻게 된 일일까. 우린 대체 왜 공부만 죽어라 했던 것일까. 졸업식을 앞두고 밀려드는 현타와 허탈함에 어지럽다. 하지만 이대로 고등학교 생활을 마무리할 수 없던 둘은 공부와 놀기 두 마리 토끼를 마지막으로 잡을 기회를 잡는다. 바로 4년 동안 못 해본 일탈을 닉의 파티에서 해소하고자 했던 것. 친구들이 4년을 놀았던 것을 단 하루 만에 따라잡자며, 공부만큼이나 잘 논다는 것을 보여주자고 다짐한다.     


그런데 아무도 닉의 파티가 열리는 장소를 알려주지 않았다는 것이 문제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방황하던 몰리와 에이미는 친구들의 개인 SNS를 털어 추측한다. 저녁 내내 파티 장소를 찾아서 엉뚱한 파티에서 우여곡절을 겪고 그로 인해 몰랐던 사실을 깨닫는다. 바로 '인생'이란 책 속에서 가르쳐 주지 않을뿐더러 직접 겪어야만 알 수 있는 흥미로운 세계라는 것이다.    

영화 <북스마트> 스틸


몰리는 다른 학우들을 실패한 인생이라며 은근한 무시로 진가를 몰라봤었다. 원리원칙을 철저히 하고 책과 공부만 파면되었던 안전한 학교의 울타리에서 나와보니 세상의 확연한 차이를 실감했다. 교장선생님은 교사 수입으로는 부족해 심야 콜택시를 몰아야 했고, 학교 퀸카 호프(다이애나 실버스)는 사실 레즈비언이었으며, 소문난 돌아이로 통했던 지지(빌리 로드)는 의리로 똘똘 뭉친 속 깊은 아이였다. 그리고 돈으로 친구를 사귀려고 했던 제러드(스카일러 거손도)는 비행기를 만들고 싶어 하는 멋진 꿈을 가진 친구였다.     


이 둘에게 학교 친구란 정확히 말하자면 대화를 제대로 해본 적도 없고, 토론이나 수업 같은 목적이 없으면 사적으로 연락하거나 만나지도 않았던 사이였던 거다. 같은 반 친구들과는 수준이 맞지 않는다는 오만한 생각을 가진 탓에 제대로 어울릴 줄도 몰랐었다. 자연스럽게 뜬소문이나 선입견으로 반 친구를 대할 수밖에 없었고 잘 알지도 못하면서 험담이나 오해는 커져만 갔다. 하지만 두 사람은 최종적으로 닉의 파티에 참석하며 겉모습으로만 사람을 판단하고 재단했다는 사실을 절실히 깨닫게 된다. 공부보다 중요한 것은 진실로 상대방을 알아가고 마음을 쌓아가는 과정 그 자체였음을 말이다.     


이 영화가 십 대를 다룬 영화들과의 차별점이라면 황석희 번역가의 재능이 유감없이 발휘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정서상 받아들이기 어려운 문화, 언어적 차이를 웃고 떠들 수 있는 코미디로 승화하는데 큰 몫을 했다. 어린 십 대들의 성장통을 다루며 하이틴 무비로의 풋풋함을 유지하고 있다.    


시종일관 유쾌하고 발랄한 여성 버디 코미디 영화 <북스마트>는 젠더, LGBT 감수성도 놓치지 않고 보여준다. 몰리와 에이미가 환각제에 취해 마론 인형이라 생각하는 장면에서 젠더 감수성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인형의 몸이 되어보니 큰 가슴 때문에 허리가 아픈 고통과 콜라병 같은 매끈한 몸매가 여성의 아름다움이라 배운 잘못된 성(性)의식도 고찰한다.    


요즘 미국 청소년은 무엇을 고민하고 좋아하는지 영화에 담긴 이야기는 지금 트렌드를 반영하고 있다. 거기에 탄소발자국, LGBT, 보디 포지티브(자기 몸 긍정주의), 윤리 소비 등 다양한 이슈를 인터넷으로 배우며 어느 세대보다 깨어 있는 세대를 보여준다. 십 대란 명문대 진학만이 성공이 아닌 더 많은 것을 경험하기 위한 발판임을 알려준다. 어느 때보다 진지하게 나를 찾아가고, 타인을 알아가며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갈 준비를 시작하는 때임을 잊지 않는다.    


그때는 왜 몰랐을까. 내 마음대로 되지 않아 답답했던 때 지나고 나면 소중한 경험 중 하나다. 돌아보면 별것도 아닌 일로 세상이 끝날 것처럼 힘들었고, 완벽하지 않아 어설프던 과거.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찬란했던 그때 그 시절을 소환하는 유쾌한 코미디 영화다.


평점: ★★★★

한 줄 평: 반짝이는 십 대의 멋진 순간, 그땐 그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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