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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혜령 Feb 04. 2021

<세자매> 부모에게 사과를 요구하는 자식의 남모를 심정

세 배우의 사실적인 생활 연기에 웃음 터지다가 울었다가 정신없이 흘러가는 워맨스가 빛난다. 가족이란 인연으로 맺어진 여성 주인공의 이야기가 이제는 낯설지 않은 풍경이다. 세 자매가 겪어온 상처와 고통, 인내는 함께 자랐으나 이제는 독립해 각자의 생활영역에 익숙해진 형제자매를 한데 모으기에 충분 했다.    


세 배우의 연기 궁합뿐만 아닌 이승원 감독의 전작에서 보여준 거친 상황과 캐릭터의 보편적 정서로 불릴 수 있겠다. <소통과 거짓말>에서 상실의 고통을 그대로를 보여준 캐릭터 '여자'와 <해피 뻐스데이>의 범상치 않았던 온갖 캐릭터가 <세자매>를 만나 내가 아는 그 누군가가 떠올릴 캐릭터로 순화되었다. 아내이자 배우 김선영과 세 번째로 함께하며 부부 호흡을 과시했다.    


한국 사회에서 여성이 결혼하면 딸린 식구들을 제치고 원 가족의 생일상에 매번 얼굴을 비추기 어려운 사정들이 생긴다. 그것도 지방이라면 몇 시간씩 걸려 가족을 이끌고 가는 것도 일이요, 하는 일이 바쁘거나 가족들 뒤치다꺼리하느냐 내 부모 행사를 따로 챙기기 버거워진다. 그래서 간편한 전화로 대신하거나, "다음에 갈게요"란 말이 입에 붙는다. 그렇지 않은 가정도 있겠지만 영화 속 세 자매는 그것보다 근본적인 이유가 있어 보인다. 그다지 유쾌한 기억은 아닌 것 같다. 서로 자주 연락하고 만나지 않는 사이지만 오랜만에 아버지 생일을 이유 삼아 완전체가 얼굴을 마주하게 된다.    

영화 <세자매> 스틸

영화 <세자매>는 세 자매가 살아가는 우여곡절을 통해 가족의 의미를 되짚는다. 어디에 있을 법한 가족의 이야기를 담아 공감을 사는 부분이 많다. '괜찮다 미안하다'를 달고 사는 소심한 첫째 희숙(김선영)과 겉으로는 완벽하지만 가식으로 똘똘 뭉친 둘째 미연(문소리), 맨날 술을 끼고 사는 슬럼프 온 작가 미옥(장윤주)까지. 어디서 본 것 같아 친근하면서도 마주치고 싶지 않은 독보적인 캐릭터가 돋보인다.     


가족이란 이름으로 불리는 유기체도 저마다의 사연을 갖는다. 동기간이라도 각자의 방식으로 삶을 꾸려낸다. 그래서 가족이란, 피를 나누고 함께 살며 밥을 먹는 혈연집단이자 식구라는 편안함에 더욱 상처를 주고받는 집단이기도 하다. 잘 안다고 생각했던 가족의 이해되지 않는 모습, 행동은 구성원 간의 갈등을 유발하고 아예 외면하게 만드는 이유기도 하다.    


흔히 "우리 애(남편, 아내, 엄마, 아빠)가 이럴 사람이 아닌데"라는 말은 그 당황스러운 순간에 뱉어내는 고해성사 같다. 내가 알던 사람이 아니라는 실망감을 감출 새도 없이 싫든 좋은 포용해야 하는 애증의 관계가 가족이다. 영화는 그 순간을 처음부터 보여주지 않고 조금씩 일상 속 흑백 플래시백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어떤 일이 구체적으로 있었는지 시시콜콜 말하지 않음으로써 궁금증을 유발하도록 구성했다.    


클라이맥스에 터질 충격에 대비할 수 있도록 했지만, 미리 상황에 적응해왔다고 해서 충격이 완화되는 것은 아니다. 한 번 받은 상처는 마음 한구석의 티끌로 남아 나약하고 힘든 마음에 기생해 크기를 키워나간다. 희숙, 미연, 미옥은 한 뿌리에서 나왔지만 이내 웃자란 가지처럼 다른 환경에서 트라우마를 극복했었다.

영화 <세자매> 스틸

따라서 미연이 부모에게 사과하라고 했던 말은 이번 기회를 딛고 앞으로 나아가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부모에게 지난날의 과오를 인정하고 사과하라는 자식. 부모와 자식 간에도 지켜야 하는 예절은 위아래가 존재하지 않는다. 자식이라고 해서 부모의 무조건적인 상처를 받기만 하는 입장은 안 된다. 아이는 부모와 절대적인 애착 관계를 형성해야 한다. 배고픔을 알려 생존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가 없다. 하지만 울타리가 되어주어야 할 부모가 부재하거나 폭력으로 일관한다면 자신의 내면과도 마주하지 못하게 된다. 성년이 되어서도 이는 마음의 병으로 남는다.    


오랜만에 한자리에 모이게 된 남매는 유년 시절 부모에게 받은 학대가 제대로 아물지 않고 성년이 된 케이스다. 폭력의 역사는 막내 진섭(김성민)이 가장 컸던 것으로 보인다. 세 자매는 출가했지만 막내는 아직 부모와 한집에 살며 부대낀다. 상처가 아물 시간조차 없다. 때문에 아버지의 생일날 조금씩 곪아 있다가 이내 터지고야 만 상황은 어쩌면 예견된 결과였다. 겨우 잊으려 했던 기억과 마주하게 되는 힘든 상황을 피할 수 없어 온몸으로 받아 낸 것이다.     


아마 영화에서 가장 많이 나온 단어는 "괜찮아"였을거다. 서로의 상처를 걱정할까 애써 괜찮다는 말로 무마하려 한다. 물론 가족 간 사이가 좋다면야 이루 말할 것 없지만 그렇지 못한 가정, 매일 투덕거리고 싸우기 일쑤인 가정에서 무방비 상태로 크는 아이가 여전히 존재한다. 이런 아이는 자신이 상처받았는지도 모른 채 아물지 않은 딱지를 마음에 품고 어른이 되고, 자신도 모르는 채 폭력의 대물림이 반복된다. 문득, 부모님, 형제자매, 자식이 괜찮다고 했던 말속에서 한 번 더 살펴볼 걸 그랬다는 생각을 했다. 어쩌면 괜찮다는 말은 "난 (안) 괜찮아"라는, 살려 달라는, 봐 달라는 신호일 수 있다는 것을.. 그때는 왜 몰랐을까.


평점: ★★★★

한 줄 평: 세 배우의 연기, 자매애가 빛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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