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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혜령 Feb 08. 2021

<페어웰> 아픈 할머니를 향한 진심을 담은 거짓말

'실제 거짓말에 기반했다'      


영화 <페어웰>의 오프닝 문구는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들며 시선을 사로잡는다. <페어웰>은 폐암으로 3개월 시한부를 선고받은 할머니의 행복한 마지막을 지키기 위한 가족들의 하얀 거짓말에서 출발한다.      


뉴욕에 사는 손녀 빌리(아콰피나)와 할머니(자우 슈젠)는 각별한 사이다. 미국으로 어릴 적 이민가 서양의 정체성이 형성된 빌리. 멀리 타국에서 할머니의 따뜻하고 너른 품은 부모와는 또 다른 위안을 준다. 최근 슬럼프를 겪고 있는 빌리는 지원금 혜택도 받지 못했고, 월세도 밀리는 등 독립해 살아가기 벅찬 상태다. 서른이 넘었는데 아직 제 앞가림도 못하고 있다는 자괴감 앞에서 할머니는 항상 힘과 용기를 북돋아 주는 안정제다. 

    

할머니와의 전화 통화에서 빌리는 제일 먼저 착한 거짓말을 한다. 추운 날씨에는 머리를 따뜻하게 해야 한다는 손녀 걱정에 모자를 썼다고 말하고, 뉴욕에서는 귀걸이를 훔쳐 간다더라는 말에 귀걸이를 안 했다고 둘러댄다. 앞서 말한 오프닝의 의미를 조금은 알 것 같다. 영화는 할머니를 안심시키기 위해 가족 모두가 동원된 거짓말에 관한 이야기다.      

영화 <페어웰> 스틸

그러던 어느 날, 사촌 결혼식에 가려는 부모에게 충격적인 소식을 듣는다. 사촌 결혼식은 핑계고 할머니의 병환으로 마지막 인사차 다녀오겠다는 것. 문제는 남은 날이 얼마 없음을 본인에게 알리지 않을 거란 가족의 입장이다. 빌리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 '왜 죽음까지도 타인이 결정하는 거지?' 반감을 품은 빌리에게 부모님은 사람을 죽이는 것은 암이 아니라 공포라며 명분을 쌓았고, 본 죽음을 모르는 시한부가 말이 되냐고 말다툼을 벌이다 일단락되었는 듯 싶었다. 하지만 빌리는 어쩌면 이번이 할머니를 뵙는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해 전 재산을 털어 뒤따랐고, 자연스럽게 가족 모임에 합류하게 된다.      


지금부터 가족들은 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계획을 시작한다. 결혼식을 가장 했지만 할머니 앞에서 어느 때보다 행복한 시간을 만들어 주자는 것이다. 하지만 빌리 걱정을 하던 부모님과 친척들도 숨길 수 없는 슬픔이 하나둘씩 차오르고 상황은 위태로운 방향으로 흘러간다.      


무엇보다 독립적이고 개인적인 서구 문화가 익숙한 빌리는 하루빨리 할머니에게 알려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설상가상으로 의료진까지 동참한 연극은 중국에서 좋은 의도로 받아들여진다고 덧붙인다. 개인, 가족, 사회, 국가가 온전히 연결되어 있다고 믿는 동서양의 문화 차이로 빌리의 의견은 휘발되어 버린다.      


가족들은 구성원의 죽음은 가족 모두의 일이며, 연대 책임이라 강조하는 식을 이해할 수 없는 빌리. 어찌 되었든, 할머니가 끝까지 몰라야 한다고 가족들은 당부한다. 할머니의 남은 행복을 위한 일이라고 밀어붙이는 가족, 작별의 시간을 만들어 주고 싶은 손녀의 대립이 계속되며 시간을 빠르게 결혼식을 향해 달려간다.     

영화 <페어웰> 스틸

정신없는 상황 속에서도 빌리는 할머니와 어느 때보다 많은 시간을 보내며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중국에서 태어났지만 미국에서 자란 정체성은 가족들과 계속해서 충돌을 빚는다. 사실 할머니가 떠난 세상에서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살아갈 수 있을지 두려웠던 게 진심일지도 모른다. 자신의 삶도 일방적으로 가족이 정한 결과였고, 아무것도 모른 채 이민으로 낯선 생활에 적응하기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항상 개인의 삶이 남에게 휘둘리는 것 같아 힘들었기에 사랑하는 할머니의 마지막은 주체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빌리도 배우지 못한 고국의 문화를 체험하며 세상을 한 뼘 더 알아간다. 때로는 선의의 거짓말이 삶을 조금 더 아름답게 만든다는 것을 말이다. 결국 정신적인 지주였던 할머니는 빌리에게 큰 이변이자 성장의 밑거름이 되어준다. 부모 세대가 자식 세대에서 물려주는 것은 유전자뿐만이 아닌, 인생을 살아가는 방식이기도 한 것이다. 더불어 동서양의 확연한 문화 차이를 옮다 그르다는 이분법으로 나눌 수 없음도 인정하게 된다. 무조건 싸우기보다 서로 차이를 인정하고 이해하며 보완해 수용할 수 있는 태도가 필요하다는 것도 깨닫는다.     

<페어웰>은 비슷한 문화를 공유하고 있는 유교적 풍습이 낯설지 않게 그려진다. 다 같이 둘러앉아 밥 먹는 장면, 연장자가 가족의 대소사를 진두지휘하는 장면, 가족이 다 함께 성묘하는 장면 등 익숙한 상황이 연출되어 편안하게 흘러간다. 하지만 죽음을 감춘 채 거짓말로 둘러대는 게 진정한 행복이라 믿는 중국 문화는 다소 생경하기까지 하다. 과연 본인 죽음을 알 권리는 누구에게 있는 건지 내내 물음표를 던지다가 마지막이 되서야 속 시원히 해소된다. 그것은 바로 '사랑'이었다.      


영화는 감독 룰루 왕의 자전적인 이야기이자 착한 거짓말을 바탕으로 해 따뜻하고 선하다. 여성 감독과 배우, 캐릭터 등 여성 영화인의 활약이 인상적이다. 한편 제77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뮤지컬. 코미디 부문 여우주연상에 아콰피나가 선정돼 전 세계인의 이목을 끌었다. 우리에게는 낯설지 않은 배경이지만 서양 문화권에서 받아들이기엔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평점: ★★★

한줄평: 왜 내 죽음의 순간을 타인이 결정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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