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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혜령 Feb 14. 2021

<아이> 보호종료아동과 싱글맘의 따뜻한 동행

영화 <아이>는 보호종료아동과 미혼모를 통해 복지사각지대에 놓인 인물의 현실을 천천히 훑는다. 그동안 제대로 봐주지 않았던 이들의 삶을 자연스레 영화 속 캐릭터로 끌고 들어왔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가 다르다는 말처럼 <아이>를 보고 난 후 다시 본 포스터는 밝게 웃는 얼굴보다 팔과 얼굴의 상처가 깊고 아프게 체감된다. 이들이 살아갈 세상은 겉으로 보이는 찰과상이 다가 아닌, 마음속에 아물지 않는 상처처럼 쉽게 가늠하기 힘들다.     

'보호종료아동'은 부모가 없거나 양육능력이 없어 10년 이상 아동양육시설이나 위탁가정에서 자란 아이를 말한다. 아동복지법상 만 18세가 되어 보육 시설에서 퇴소해야 하며, 사회에 나와 자립할 수 있는 지원 혹은 후원자가 필요하다. 갑작스레 보육원에서 나와 사회에 적응해야 하는 보호종료아동의 어려움은 생각보다 크다. 국가가 일차원적인 울타리가 되어 주지만, 이마저도 한계가 있다. 영화 속 보호종료아동 아영(김향기)은 아르바이트로 생활비를 벌다 수급비가 끊겨 돈이 필요했다. 아동학과 졸업반으로 학교도 마쳐야 하고, 생계가 절실했기 때문. 그로 인해 생후 6개월 된 혁이를 홀로 키우는 워킹맘 영채(류현경)의 보모가 된다.     


하지만 아영보다 나이가 많은 영채의 삶도 그리 만만치 않다. 겉은 어른이지만 아영보다 아이 같은 면이 도드라진다. 십 대부터 시작한 유흥업소 생활은 말을 하지 않아도 굴곡진 인생을 가늠할 수 있다. 남편과 사별 후 아직 젖도 떼지 못한 아이를 두고 생활비를 벌러 일터로 나간다. 비록 배움은 짧지만 초보 엄마로서 아들을 향한 열정만은 뒤지지 않는다. 다만, 어떻게 해야 아이에게 좋은지 알지 못해 우왕좌왕하고, 버벅거려 위태롭지만 내 아이만은 자신보다 나은 삶을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당찬 싱글맘이다. 여기에 츤데레 유흥업소 사장 미자(염혜란)까지 가세하여 무겁고 진지한 분위기에서 숨통을 틔워 준다. 세심한 캐릭터의 사연이 내 주변에 있는 사람처럼 자연스럽게 다가온다.     

영화 <아이> 스틸컷

부모는 끊임없이 자식에게 해줄 수 있는 최선의 길이 무엇일까 죽을 때까지 생각한다. 그러나 도저히 넘을 수 없는 한계에 부딪히면 굳건하던 책임감마저도 무너지기 십상이다. 아영과 영채는 서로 힘을 합쳐 아이를 돌보지만 힘에 부친 영채는 혁이를 포기하려고 한다. 혁이를 위해서 차라리 좋은 집에 입양 보내는 게 나을 거란 판단에서다. 미혼모, 싱글맘의 딱지는 온 마을이 나서야 한다는 육아 전쟁에서 총알도 없이 홀로 툭하고 떨어진 병사나 다름없다.    


그래서 영화는 사회 약자인 두 여성 주인공의 동행을 통해 연대를 보여준다. 세상의 편견에서 벗어나지 못한 두 사람이 손을 잡고 흔들리지만 뚜벅뚜벅 걸어 나가려는 의지를 전한다. 어떻게 크는 게 좋은 것인지 고민하는 영채에게 좀 그렇게 크면 어떠냐고 말한 아영의 대답은 담담한 위로가 된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기보다, 누구나 처음일 수 밖에 없는 부모 역할의 부담감을 함께 짊어지자고 작은 어깨를 내어준다.    


당신은 혼자가 아니라는 연결된 마음을 확장하는 메시지는 영화를 관통하는 단 하나의 주제다. 인생이 무엇이냐 물어본다면 아마 유흥업소 사장 미자의 말로 답할 수 있을 것이다. "인생은 원래 고다. GO가 아니라, 쓸고(苦). 빌어먹을 고" 영화는 과연 '아이'라는 말은 몇 살까지를 지칭하는 것일까를 스스로 묻고 답한다. 여전히 어른이 되기를 두려워하는 어른 아이와 일찍부터 철이 들어버린 애어른. 사회적 약자의 만남은 황무지에서 피어난 새싹 같은 따뜻한 희망을 선보인다.     

영화 <아이> 스틸컷

한편, 영화의 히로인인 두 아역 출신 배우 김향기와 류현경의 연기를 말할 것도 없거니와 <동구 밖>으로 2018년 부산국제단편영화제 심사위원특별상을 받은 김현탁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다. 보호종료아동, 출산 후 겪게 되는 여성의 심리적 육체적 고충, 무연고자의 장례, 불법 입양의 현주소와 파양의 아픔, 분리불안증을 겪는 아이 등. 얼핏 들어 알고는 있지만 불편해 눈 감아 버렸던 일들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본 듯 세세히 다루고 있다. 또한 아영의 대학 수업과 실습으로 양육과 가족의 의미로 교육할 수 있게 구성되어 있어 고무적이다. 과연 정상과 비정상은 무엇인지 날카로운 질문도 서슴지 않으며, 편견에서 자유롭지 못한 여성의 자립을 심도 있게 그려냈다.  

   

덧) 초반 아영의 집에 세탁기가 말썽이라 실랑이를 벌이는 장면이 나온다. 인생이란 잘 돌아가다가도 멈추고 고장 나는 말썽 많은 세탁기 같다. 아영이 세탁기를 이리저리 흔들고 어르고 달래서 작동하게 되지만, 잦은 문제를 일으킨다. 나중에는 때려서도 안될 만큼 망가져 고치기 힘든 상황이 된다. 이 고물 세탁기처럼 아영과 영채는 이리저리 채이다 버림받았지만 또다시 달릴 수 있는 서로의 버팀목이 되어 주는 새로운 가족이 된다. 가족은 피를 나눈 사이, 법적인 관계가 아닌 서로의 빈자리를 채워 줄 수 있는 사이임을 직간접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평점: ★★★☆

한줄평: 우리가 잘 몰랐던 세계, 알면서도 눈 감았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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