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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혜령 Feb 16. 2021

야망, 솔직과 거짓의 한끗차 경계

wavve 오리지널 드라마 <러브씬넘버#> 35세 편

러브씬넘버#: 여성의 일과 사랑을 다룬 옴니버스 드라마


최근 봇물처럼 쏟아지는 OTT 콘텐츠 중에서 웨이브(wavve) 오리지널 X MBC 드라마 <러브씬넘버#>를 흥미롭게 봤던 이유는 20대부터 40대까지 4명의 여성을 필두로 일과 사랑을 다룬 옴니버스 형식이 와닿았기 때문이다. 편수가 많으면 늘어지는 느낌을 받아 나 역시 쉽게 이입할 수 없었는데, <러브씬넘버#>는 이를 완전히 깨버렸다. 


평소 좋아하는 OTT 드라마도 일과 사랑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소재를 선택한다. 일과 사랑, 야망과 사랑 사이에서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현대 여성의 임파워링을 느낄 수 있는 드라마를 선택하고 있다. 최근 [에밀리 파리에 가다],[킬링 이브], [미세스 아메리카]같은 여성 서사를 배경한 전문직의 이야기를 공감 있게 봤다. 고로 트리플F 등급, 여성중심서사, 벡델 테스트를 통과한 콘텐츠를 원한다. 시대가 변하고 있는 만큼 실제 삶도 변화를 맞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wavve 오리지널 드라마 <러브씬넘버#>

<러브씬넘버#>는 폴리아모리(다자간 사랑), 메리지블루(결혼 전 우울증), 성공에 대한 야망, 배우자의 배신 등 현대 여성사의 다양한 변곡점을 다루고 있다. 현대 여성들이 관심사와 처한 현실을 적절히 다룬 참신한 주제가 인상적이다.


드라마는 세대를 대표하는 4명의 배우 김보라(23세), 심은우(29세), 류화영(35세), 박진희(42세)로 이루어져 있다. 세대를 대표하는 네 주인공이 연애, 사랑, 가치관에 혼란을 느끼는 복합적이고 세밀한 심리를 표현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35살 류화영의 에피소드가 무척 궁금했다. 과연 어떤 이야기가 담겨 있을까? 


러브씬넘버#:35세 편(5-6회)


35세 편 윤반야(류화영)는 성공에 목마른 여성이다. 반야는 탐욕을 죄라 여기지 않는다. 행복하기 위한 척도일 뿐이다. 


반야는 자신의 상처를 후벼서 글감으로 만들고 그걸로 영화를 찍는다. 상도 여러 번 탔고 평가도 좋았다. 하지만 최근 내 살 팔아 만든 창작물의 입김이 슬슬 떨어지자 초조감을 감출 길 없다. 좀 더 자극적이고 매력적인 경험을 만들어 대박을 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고 있다.


스무 살부터 오직 목표를 좇아 달려왔지만 인생의 코너에 몰린 35세. 지금은 방향키를 잃어버려 갈피를 잡을 수 없다. 기대주 영화감독 '반야'는 잊히고 돈 없어 내쫓기게 생긴 백수만 남아 있다. 어떻게든 일어서 보려고 안간힘을 쓰지만 탐욕의 대가는 생각보다 컸고, 술이나 마시려 들린 모임에서 한성문(김승수) 감독을 만난다.


wavve 오리지널 드라마 <러브씬넘버#>


반야는 성문을 만날수록 깊은 상처를 제때 치료받지 못한 소년을 품고 있음을, 그 상처는 나와 다르지만 비슷한 무언가를 공유하고 있음을 느낀다. 잠자리가 성공으로 가는 티켓임을 인지하면서도 어쩐지 서서히 흔들린다. 불안한 30대. 거부할 수 없는 유혹에 빠져 기대 이상의 것을 얻은 반야는 인생의 중대한 결정을 내려야 할 위기에 처한다.


가식으로 똘똘 뭉친 나를 온전히 발가벗고 민낯을 드러낼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행운이다. 반야에게 성문은 그런 행운이자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성공을 보장받을 수 있는 발판을 만들어 줄 동아줄이었다. 비록 썩은 동아줄이라 할지라도 반야는 이 사람을 잡아야만 했다. 절박한 내면의 목소리가 계속해서 부추기고 있었다.

wavve 오리지널 드라마 <러브씬넘버#>

<러브씬넘버#> 35세 편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서른 중반 여성의 ‘일과 사랑’을 녹여 냈다. '비밀'이라는 위험하고 깨지기 쉬운 것을 공유한 남녀가 줄타기를 하듯 엎치락뒤치락. 섬세한 심리 변화를 보여준다. 누구나 품고 있는 욕망을 드라마 캐릭터로 치환해 짜릿한 쾌감을 선사한다. 마치 아바타를 만들어 게임을 즐기거나 부캐를 갖고 죄의식을 떨치는 일종의 ‘길티플레져(guility pleasure)’를 실현하는 것과 비슷하다. 


드라마는 그동안 성공과 성(性)이란 주제를 당당히 여성의 것으로 만들어 쾌감을 증폭해왔다. 얻고 싶은 것을 위해 사력을 다하고, 그것을 뺏고 싶고, 망가트리고 싶은 마음을 솔직히 드러낸다. <러브씬넘버#>에서 보여준 욕망의 실체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본능으로 치환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장 필요한 돈과 명예, 욕망을 가지려는 자를 절박함에서 평범함으로 끌어낸다.


드라마를 보다 문득 소위 팔리는 글을 얻기 위해 속물적인 지칭도 마다해야 했던 때가 떠올랐다. 제목과 문구로 사람들의 클릭을 유도하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날들 말이다. 제목 맛집이라는 곳은 두루 찾아다녔고, 제목 잘 짓는 학원이 있다면 다니고 싶을 정도로 낚시성 제목에 혈안이 되었었다. 빨간맛, 마라맛 일수록 댓글의 심한 언성과 화난 민심은 난장판을 만들어 냈다. 그때야 상처받고 반야처럼 불면증에 시달렸지만, 곧 통장에 쌓인 두둑한 보상이 따라오자 일을 마다할 수 없었다. 


최고가 되고 싶은 마음에 해서는 안 될 일, 금기를 실행에 옮겼다가 화를 면하지 못하는 상황도 문득 생각났다. 얼마 전 봤던 영화 <제이티 르로이>에서는 얼굴 없는 작가로 알려진 ‘제이티 르로이’가 자신의 존재를 세상에 드러내는 과정에서 물의를 일으킨 사건을 소재로 했다. 2001년 미국 문학계를 속인 일종의 사기극, 가상 인물 제이티 르로이를 두 명의 여성이 합심해 진짜 존재하는 사람으로 만들었었다.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캐릭터와 반야가 겹쳐 보였다.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물불 가리지 않다가 큰일을 당할 뻔한 위기가 닮았다. 


반야의 행동은 물론 박수 받을 만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는 것 자체가 매력적으로 느껴졌다면 과분한 생각일까? 지구상에 30만년 전 나타나 다른 인류를 제친 '호모 사피엔스'가 욕망이 없었다면 과연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오늘도 오늘보다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해 앞으로 나가는 수많은 이들의 일과 사랑을 응원하며, 오늘도 나는 쓴다. 부디 세상의 분투하는, 그 중에서도 여성들에게 심심한 위로를 전하면서…



'웨이브(wavve)'로부터 소정의 원고료를 받고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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